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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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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도 반대도 못하는 딜레마

그리스 구제금융 반대 75%, 신자유주의 자민당 지지율은 떨어지고…독일의 복잡한 사정
등록 2011-10-13 10:50 수정 2020-05-03 04:26

독일인 대부분은 그리스 구제금융에 대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반대한다. 지난 9월23일 실시한 공영방송 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75%가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확대에 부정적 의견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언론 대부분은 그리스 채무불이행(디폴트)이 가져올 위험부담이 디폴트를 막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클 것이라며 구제금융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어떤 선택도 엄청난 돈이 들어가”
국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출판사 직원 라트(39)는 “그리스에 대한 지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디폴트를 당장 막지 않으면 상황은 더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선은 다음 조처를 위해 시간을 버는 게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는 그리스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의 가능성을 비췄던 자민당의 지지율 하락으로도 잘 알 수 있다. 2009년 총선에서 14.6%의 득표율로 기세를 올리며 연정에 참여했던 자민당 지지율은 현재 3%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는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은, 그리스 구제금융 확대에 반대하는 정책도 지지할 수 없는 독일인들의 복잡한 심경을 반영한다.
9월29일 독일 연방의회에서 유럽재정안정기구(EFSF)의 대출 여력 확대를 승인했다. 현재 유로존 국가 중 경제 상황이 양호한 독일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이 승인을 앞두고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다. 현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대한 정치적 신임 문제와 엮여 긴장이 감돌았다. 특히 집권 기민련 안에서 연방의회 원내총무가 반대표를 던질 의원들에게 당 기조를 따르라는 강압이 있었음이 드러나 독일 의회 정치가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인가라는 논쟁도 뒤따랐다.
이 승인을 전후로 방송사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는 ‘그리스 디폴트’ 주제의 토론이 끊이지 않았다. 반대와 찬성 모두 나름의 논거를 갖는다. 반대 진영의 논리는 간단하다. 상환 능력을 잃은 부채국가들을 유로존에서 탈퇴시키는 것이 당장은 힘들어도 모두를 위한 최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부채를 안고 가야 한다는 쪽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같은 도미노 현상에 따른 후환을 막으려면 부채국가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후버르트 르네 슐링어 담당관은 “어떤 선택을 해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며 “전문가들이 더 많은 대화를 나눠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보고 가장 적게 손해를 보는 차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납세자, 연금생활자 피해”
최근까지 독일 경제는 나쁘지 않았다. 2011년 경제성장률 전망은 3.1%로 탄탄대로를 달렸고, 실업률은 7.2%로 이례적으로 낮은 편이다. 잘 팔리는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 제품 덕분에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몰려올 먹구름에 수심이 가득하다. 미국, 그리스, 스페인 등 세계 각국으로 번져가는 시위 소식에 독일인들은 더욱 불안하다. 곧 비슷한 처지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포(IFO) 연구소 한스 베르너 진 소장은 “EFSF에 계속 자금이 흘러 들어가게 되면 독일도 상환 능력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인은 연금과 실업수당, 증세에 대해 우려해야 한다. 독일이 보증하는 대상은 수년간 상환 능력이 없는 국가들이다. 독일 국민은 이번 구제기금 확대를 통해 수많은 재산을 잃어버릴 것이다. 납세자, 연금수령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간 은 지난 10월4일치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으니 ‘냉정을 잃지 말자’는 제목의 사설로 독자들의 불안을 달랬다.
베를린(독일)= 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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