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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루스코니라는 악재

과도한 복지비용,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무능… 재정위기 악화 이탈리아
등록 2011-10-13 10:38 수정 2020-05-03 04:26

유로존 위기로 떠들썩한 요즘 이탈리아의 주요 광장과 거리는 연일 성난 시위자들과 확성기 소리로 뒤덮이고 있다. 시민들은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유로존 위기를 가져왔으면서도 그 책임을 시민들에게만 떠넘기려는 정부를 향해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주고받는’ 정치인과 시민
이탈리아 재정위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일부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의 경제적 어려움은 경제적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복지비용을 지출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이탈리아는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관대한 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해왔다. 고령화 사회로 복지비용이 점점 더 증가해 재정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메우려고 과도한 국채를 발행해왔다. 1980년대 이후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낮은 성장률 때문에 부채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재정위기를 복지비용의 증가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최근 영국 일간 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무능력과 경박한 행실을 이탈리아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꼬집었다.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며 경제성장 전망의 불투명성, 연약한 연립정부, 집권 정당들 간 정책의 불일치를 원인으로 들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비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미디어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뒤 정치를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더니 탈세와 뇌물 공여로 법정에 서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미성년 댄서와의 성매매 문제로 나라 전체를 시끄럽게 했다. 국민의 신뢰가 생길 리 만무하다.
재정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역시 실망스러운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올해 초 재무장관이 재정긴축안을 추진했는데, 베를루스코니는 자기 소유의 기업에 대한 특혜 조항과 법인세 감축을 포함시켜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 했다. 재무장관이 거부하자 그를 비난하며 갈등을 빚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재무장관의 제안을 무시하더니 급기야 세금 인상 등을 통한 재정긴축안을 들고 나왔다. 이로써 자신이 2001년 총선 당시 약속한 세금 감면과 연금 지원 확대라는 공약을 스스로 파기했다.
리더십 부재와 현재의 재정위기는 밀접히 연관돼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책임자가 있다. 그동안 이탈리아 정치계급에게 국민은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였다. 정치인과 시민의 관계는 때때로 ‘주고받는’ 관계다. 즉, 정치인은 국민에게 많은 혜택을 베풀고 국민은 투표에서 표를 통해 답례해왔다. 복지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좌파든 우파든 그동안 재정적자의 주범인 복지 문제를 건드린 적이 없다. 1994년 연금제도를 개혁하려다가 반대에 부딪혀 사임한 베를루스코니가 2001년에 세금 인하와 연금 확대라는 공약으로 당선된 것은 이런 교환관계를 잘 보여준다.

‘유럽의 병자’는 나을까
이탈리아의 정치제도 또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연정을 통해 정부를 구성하는데, 이런 연정은 연약한 고리로 연결돼 있다. 현 정부도 연약한 연정 구조를 갖고 있어 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추진된 재정긴축안에 포함된 부유세 신설이나 세금 인상 문제는 부유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연정의 구성원인 ‘북부동맹’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이탈리아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이런 정치계급의 무능과 당파싸움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경제에 희망은 있는가? 제도, 경제환경, 정치문화의 근본적 변화 없이 세금 인상이나 공무원 축소 같은 단기적 전략만으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탈리아는 주변국들이 왜 자신을 ‘유럽의 병자’라고 부르는지 먼저 깨달아야 한다.
이선필 한국외국어대-현대경제연구원 EU Centre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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