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판매하는 빗물 '구름 주스'(Cloud Juice). 킹아일랜드 홈페이지 갈무리
“어, 그냥 물맛인데요?”
물을 마셨으니 물맛이 나는 건 당연한데, 물맛이라고 놀라는 게 이상하다. 지난 8월3일 서울대 공대 지하에 설치된 빗물저장탱크를 둘러봤다. 4.5m 깊이의 탱크엔 빗물 250t이 저장돼 있었다. 빗물을 모아뒀다니 어쩐지 냄새가 나고 깨끗하지 않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인 한무영 교수(건설환경공학부)가 비커에 담아준 빗물은 예상과 달리 먹을 만했다.
한무영 교수는 지난해 10월 학교에서 물맛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 수돗물, 빗물, 병에 담아 파는 생수를 학생들에게 맛보게 했다. 실험에 참가한 36명 가운데 빗물을 ‘가장 맛있다’고 꼽은 학생이 23명으로 가장 많았다. 60%가 넘는 수치다. 병물과 수돗물은 각각 7표와 6표를 얻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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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은 태양이 증발시킨 순수 증류수나 다름없다. 정확히는 비가 온 지 약 20분 뒤부터 그렇다. 대기에 있던 오염물질이 20분 동안 씻겨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마실 수 있는 물의 총용존고형물(TDS·물속에 녹아 있는 이물질의 양) 기준은 500mg/L인데, 이 빗물은 총용존고형물이 거의 없다. 분진이나 황사가 섞인 빗물도 10~20mg/L다. 수돗물과 생수는 대체로 50~250mg/L다. 그래서 빗물은 관리하는 데 조금만 신경 쓰면 5~6개월은 보관해두고 먹을 수 있다.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선 빗물을 판매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수를 판매한다고 했을 때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논란이 인 적이 있다. 그런데 빗물 판매라니, 김선달도 무릎을 칠 아이디어 아닌가. 이름도 홍보문구도 화려하다. ‘구름 주스’(Cloud Juice)는 킹아일랜드라는 작고 깨끗한 섬에서 받은 빗물이다. ‘태즈메이니아의 비’(Tasmania Rain)는 세계기상기구(WMO)가 청정지역으로 선정했다는 태즈메이니아 북서부 해안에 내린 빗물을 병에 담아 파는 것이다. 남극의 수증기가 바다 건너 1만 마일 넘게 이동해 비로 내리는 걸 땅에 닿기 전에 모았다는 게 제조사의 설명이다.
우리가 먹는 생수나 수돗물은 모두 빗물에서 비롯된다. 빗물에서 멀어질수록 물은 더러워져 많은 돈을 들여 정수 처리를 해야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왜 빗물을 그냥 내다버리는 것일까? “현재의 중앙집중형 물관리 시스템은 로마에서 비롯된 겁니다. 이 시스템이 문명의 상징처럼 된 거죠. 이후 유럽과 미국, 이들이 지배한 나라에도 중앙집중형 상하수도를 들이게 되는데, 여기엔 토건족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요. 중앙집중형 시스템을 건설하고 유지해야 돈을 벌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빗물은 집집마다 간단한 시설로 받아 쓸 수 있으니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죠.” 한 교수의 설명이다.
산성비 공포, 빗물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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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수는 과도한 산성비 공포도 빗물을 ‘위험 물질’로 왜곡한다고 본다. 대기 중의 빗물은 ph5.6으로 산성이 아닌 비는 거의 없다. 그런데 지붕면을 통과하는 짧은 시간 동안 빗물은 알칼리성으로 변한다. 2~3일 모아둔 뒤엔 중화돼 중성으로 변한다. 황사비도 마찬가지로 침전시키면 이물질을 분리해낼 수 있다.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물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정 안심이 안 되면 끓여서 마시면 된다. 참고로 매일 사용하는 샴푸·린스의 산성도는 3.5이고 콜라는 2.5로, 대기 중 빗물보다 수십 배 산도가 강하다.
귀가 솔깃해지시는가? 돈 안 들고, 토건족에게 물도 먹일 수 있는 물이라니, 다시 비가 내리면 시험 삼아 받아뒀다 물맛 한번 보고 싶지 않으신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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