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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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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빵과 장미를 원한다

해고의 불안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가진 시민에게 최루액을 ‘발포’한 공권력… 1천만의 마음을 가진 100만 명이 광화문에 모이기 전에 대통령, 민주당은 해결에 나서라
등록 2011-07-21 18:06 수정 2020-05-03 04:26
7월10일, 제2차 희망의 버스에 참여한 시민이 부산 영도에서 최루액 물대포를 맞아 쓰린 얼굴을 물로 씻어내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7월10일, 제2차 희망의 버스에 참여한 시민이 부산 영도에서 최루액 물대포를 맞아 쓰린 얼굴을 물로 씻어내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그 밤, 이 땅에 사는 한 시민으로서 저는 절망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자평하는 이 땅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자꾸 일어납니다. 시민을 향한 발포. 고작 색소와 최루액 섞인 물대포일 뿐인데 ‘발포’라는 말을 쓰는 건 과한 거 아니냐고요?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1987년 이후 한 발짝도 진화하지 못한 구시대 정치인이니 스스로의 구시대성을 반성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아 먹고살 자격이 있는지 통렬히 자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이 몸으로 익히는 민주의 감각은 섬세하게 분화하며 진보하는데 그것을 감각할 능력이 없는 분들이 정치를 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래서야 어찌 ‘소통’이 되겠어요.

진화하는 시민에 정치도 발맞춰야

시민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린 경찰 수뇌부의 죄를 철저히 따져물어야 할 것입니다. 경찰이 보호해야 할 것은 이 땅 대다수 노동하는 서민들의 안전과 권익이지요. 대체 누가 대다수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자본가의 안위를 지키는 용병 노릇을 하라고 시켰습니까.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해 불신을 갖게 만든 경찰 수뇌부는 사과해주십시오.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고 자랑스럽게 배웠을 어린 학생들에게 특히 사과해주십시오. 내가 낸 세금이 ‘4대강 죽이기’나 ‘시민 탄압’에 직간접적으로 단 한 푼이라도 쓰인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세금을 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잖아도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바닥인 때에 ‘세금 거부 시민운동’까지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국민의 세금이 밥줄인 분들, 제발 정신 차려주십시오.

지금 이 땅의 시민들은 그날 벌어진 공권력의 폭력과 야만을 눈뜨고 멍하니 지켜보며 한탄만 하는 낡은 시민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요구하는 시민입니다. 그 밤, 비윤리적인 뻔뻔한 자본과 정권과 주류 언론에 절망해야 했지만, 시민들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 재잘거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의 소통 방식에 무릎을 치며 감탄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눈과 입을 가졌습니다. 풍자와 해학, 웃음과 함께 우리의 무기는 유쾌하게 몸 바꾸며 세상으로 퍼져갑니다.

그 밤, 그 폭우 속, 이 땅에 사는 한 시민으로서 자랑스러웠습니다. 700명으로 시작한 희망 버스는 한 달 새 1만여 명으로 불어나 부산역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희망 버스를 탈 때 주변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함께 못 가 미안하다는 것이었으니, 그날의 1만 명은 최소한 10만 명 이상의 존재감으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700명이 한 달 새 1만 명이 되는 일. 그것은 무슨 대의명분 이전에 우리가 이웃의 아픔에 나누어 흘릴 눈물을 지닌 존재들임을 증명하는 일이었으므로 아름다웠습니다.

한 보수 언론은 이렇게 적고 있더군요. 비정규직, 정리해고 대상자가 될지 모르는 불안한 시민들이 부산에 모였다. 그건 ‘착한 시민’들로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거기에 왜 외부 세력인 정치인이 끼느냐, 라고 말이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이 땅에서 노동하며 사는 대다수 사람들이 언제든 비정규직에 정리해고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불안한 현실에 처해 있는 것, 맞습니다. 그러니 평생 성실하게 일하다 헌신짝처럼 버려져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한진중공업의 해고노동자 문제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진중공업이라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에 시민들의 전국적 연대가 일어나는 것은 이런 생존권,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이 불안하다는 자각에 기인합니다.

7월10일 2차 희망버스에 참여한 참가자중 연행되어 부상당한 참여자를 법률지원 권영국 변호사가 접견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7월10일 2차 희망버스에 참여한 참가자중 연행되어 부상당한 참여자를 법률지원 권영국 변호사가 접견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픈 이웃과 연대하려는 사랑의 마음, 이웃이 처한 부당한 일에 함께 저항할 줄 아는 정의의 마음이 그곳으로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김진숙 그녀가 크레인에 오른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듯이. 동료를 잃고 8년간 따뜻한 방에서 잠들 수 없었다는 그녀를 거기, 그 높은 곳에,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고 크레인에 오르게 한 것이 사랑의 힘이었듯이. 우리는 밥만 충족되면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착한 시민’이 아닙니다. 지배 권력이 선호하는 민중은 착하다고 표현되는 우매한 민중이겠으나, 우리는 ‘진짜 착한 것’이 무엇인지 각성해가는 영민한 시민입니다. 우리는 빵과 장미를 동시에 원합니다. 1987년 이후 2008년 촛불집회를 거치며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손학규 대표께

사랑이 우리를 들어올립니다. 전태일 이후 한국 노동 문제의 뜨거운 상징이 된 김진숙 그녀가 온몸으로 사랑의 시를 쓰고 있는 허공의 집으로. 그녀의 시는 투쟁적이며 동시에 서정적입니다. 진실되므로 심금을 울립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못 배운 이 사람, 못 배웠으나 많이 배운 그 누구보다 지혜로워진 한 여성노동자가 온몸으로 쓰는 서정의 역사에 감동하여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서정적 주체들인 우리! 마음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서정의 핵심이니 한 사람의 문학인으로서 저는 지금 이 땅에서 쓰이는 눈물나게 아름다운 서정시의 현현에 날마다 감동하는 중입니다. 이 서정의 울림에 연대하는 광범위한 시민적 움직임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를 넘어 벼랑에 몰린 이웃의 밥그릇을 챙겨주고픈 헌신에서 촉발한 사랑의 투쟁. 그러니 감동과 함께 성장하고 싸울수록 자존감이 충만해지는 이 현장을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시민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은 김진숙에게 배우십시오. 시민의 심금을 울리십시오. 김진숙의 ‘사랑의 능력’과 ‘윤리적 감성’을 벤치마킹하십시오. 시민이 있는 곳에 정치인이 있는 게 당연합니다. 더 많은 정치인이 이 희망의 행진에 동참하길 바랍니다. 이것은 정치인의 밥줄인 표심과도 연결된 일이니, 지금 시민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서 간파하시길. 그리고 진심을 내어 움직이시길.

먼저 대통령께 호소합니다. 그동안 타인을 통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도록 반면교사 역할을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마음의 덫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훌륭한 반면교사이신 대통령께서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 당장 대통령께서 해결해주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고공 크레인 위에서 190일 넘게 지내온 저 사람,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에 온몸으로 이 시대의 가장 절절한 서정시를 쓰고 있는 저 김진숙을, 사랑이 많아서 강인해진 영혼을 가진 한 노동자를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너무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강제 진압이라도 당하게 되어 김진숙 그녀에게 털끝만치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희망 버스 1만 명의 시민은 하루아침에 100만 명의 시민으로 광화문을 점거하게 될 겁니다. 1천만 명의 마음을 가진 100만 명이 광화문에 모이게 되면 어찌될지 상상해보세요. 이 정부가 민생보다 기업을 비호하고 자본에 휘둘리는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부디 증명해주십시오.

마찬가지로, 손학규 민주당 대표께 호소합니다. 제1야당으로서 민주당이 지금 유지하고 있는 위치가 참으로 어정쩡한 것임을 대표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그 어정쩡함을 돌파하려면 더 적극적인 진심이 필요합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를 정치적 생명을 걸고 해결해주길 바랍니다.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은 결코 대다수 시민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겁니다. 지금의 행보가 의례적인 정치인의 행보로 비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민심과 민의를 더 적극적으로 읽으시길. 진심을 다해 싸우고 있음을 보여주십시오. 대통령과 면담해 이 문제를 해결해주십시오. 시민의 표를 얻어 국회에 한 좌석을 가지기 원하는 모든 정치인들께 요구합니다. 한진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청문회를 속히 재개해주십시오. 부디 기억하시길.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귀와 눈과 입으로 무장한 SNS 시대의 시민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감염된 사랑과 서정

동료들에 대한 사랑이 소금꽃 김진숙을 단련시켜 사랑의 전사로, 이 시대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서정은 죽지 않습니다. 그녀가 간직한 사랑의 힘이 감동과 함께 시민들 속에서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중입니다. 비윤리적인 불의한 자본이 무법천지로 득세하는 것을 이 시대의 시민들은 더 이상 묵과하지 않을 겁니다. 자본과 정부와 정치인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의 연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김선우 시인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target="_top">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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