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숨어 있다. 가난한 노인의 경우는 더 그렇다. 대형병원의 장례식장과 응급실은 죽음을 일상의 삶에서 선 긋는다. 죽음은 인간관계 사이에서도 숨는다. 깊은 상처는 열어 보이는 일 자체가 고통이다. 가까운 지인이라도 죽음의 가족사는 쉽게 털어놓지 않는다. 인간관계 자체가 뜸해지기도 한다. 관계에서 기억되지 않는 것, 남은 인간관계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가난한 노인은 두 가지 어려움을 동시에 겪어야 한다. 이숙희(사망 당시 59살·가명)씨 자살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심리적 부검’ 결과도 이를 보여줬다.
노원구 자살자 74% 무직자·일용직
이씨는 2009년 9월 새벽 목을 맸다. 유서는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알릴 장례식 명단과 영정사진으로 사용할 사진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 술이나 약물 복용 흔적은 없었다. 경제적 문제가 암처럼 그의 일상을 파먹었다. 초기엔 증상이 없거나 버틸 만했지만, 어느 순간 사는 일 자체가 고통이 됐다.
서울 노원구의 전체 자살자 가운데 아파트 거주자 비율은 71%였고, 일반주택 거주자는 29%였다. 아파트 거주자의 자살이 높게 나왔다. 임대아파트의 구성비는 전체 가구의 12.5%인데, 자살률은 14%였다. 지난 5월4칠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사는 한 할머니가 늦은 아침을 들고 있다.
이씨는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육남매 중 막내였지만 특별히 사랑을 더 받지는 못했다. 딸들은 배우고 진학하기보다 집안일을 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부모는 가르쳤다. 그 탓에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죽기 직전까지 연락을 주고받은 건 막내오빠가 유일했다. 함께 사는 둘째딸과 정서적으로 밀착해 있었다. 둘째딸이 낳은 손자도 직접 보살폈다.
자살은 충동적으로 오지 않는다. 높은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오듯, 자살자들은 조금씩 삶을 내려놨다. 이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학을 나왔고 부유해 보여서 결혼한 남편은 잇달아 직장 생활에서 실패했다. 남편은 도박빚을 얻어왔다. 생활비가 빚에 덧붙여졌다. 이씨는 시댁에서 돈을 빌리는 것과 생활비가 없어 카드빚을 지게 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채를 빌려썼고 채권 추심 ‘전문가’들이 자살하기 며칠 전 집에 들이닥쳤다. 큰딸, 작은딸, 작은아들 가운데 함께 사는 작은딸 외에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평소 둘째딸이 다른 형제들과 부모 사이에서 중재자 구실을 했다. 둘째딸을 제외한 자식들은 부모의 경제적 무능에 절망했고, 관계의 끈을 조금씩 놨다. 큰딸과 막내아들 모두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사채업자가 거실에서 밥상을 뒤엎은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작은딸은 채권 추심당한 사실을 언니와 남동생에게 알리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하고 사교적 성격이 아닌” 큰언니나 부모에게 불만이 많은 남동생과 “의절할 것이 두려웠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단어는 이씨에게 너무 멀었다. 국가가 남은 둘째딸에게 상담의 손을 건넨 것은 이씨가 숨진 뒤였다.
이씨 같은 가난한 노인에게 한국은 버티기 힘든 나라다. 노원구청은 지난해 6·2 지방선거로 김성환 구청장이 당선된 뒤, 자살률을 낮추려고 노력 중이다. 노원구는 2011년 11월 ‘행복하게 잘사는 노원-생명존중사업 기본계획’을 내어 2017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만 명당 11.2명으로 자살자를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노원구청이 이 사업을 준비하며 파악해 공개한 노원구의 자살 현황 통계는 가난한 노인 자살의 여러 면모를 드러냈다.
일단 절대적 수가 많았다. 노원경찰서 통계를 보면, 노원구에서 2007년부터 2010년 7월까지 남성 319명, 여성 199명 등 모두 51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18명 중 60~64살 자살자가 40명(8%), 65살 이상이 152명(29%)이었다. 60살 이상 자살자가 37%를 차지했다.
노원구는 자살 이유 조사를 근거로 경제적 빈곤과 노인 자살 사이에 연관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노원경찰서는 유가족 조사 등을 통해 자살 이유를 추적했다. 1위는 ‘신병 비관’이고 ‘생계 곤란’이 뒤를 이었다. 특히 ‘생계 곤란’이 원인인 자살자 비율이 30~50대에서 10% 안팎으로 고르게 나왔는데, 65살 이상 노인층에서 31.6%(48명)로 크게 상승했다. 밥을 먹고, 차를 타고, 겨울에 실온의 방에서 잠을 자는 최소한의 물리적 생활에 어려움을 느껴 삶을 내려놓는 사람이 노인층에서 급격히 증가한다는 게 통계의 의미다. 69명이 ‘우울증’으로 자살해 세 번째로 중요한 원인으로 밝혀졌다. 60살 이상 우울증 자살자가 25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모든 연령대에 고루 분포했다. 노원구는 “지난 3년간 우리 구의 65살 이상 노인 자살은 전체 자살의 29%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 노인 자살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대책이 요구된다”고 결론지었다.
자료제공 : 노원경찰서
자살자의 직업별 분석 결과는 빈곤이 세대를 가리지 않는 ‘죽음에 이르는 병’임을 보여준다. 특히 무직으로 인한 빈곤이 도드라졌다. 전체 자살자 518명 중 무직자·일용직이 382명으로 74%를 차지했다. 60살 이상은 181명이었다. 그러나 청장년층에서도 수는 적지 않았다. 무직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사람은 20대 31명, 30대 53명, 40대 62명, 50대 55명이었다. 한서대 대학원 노인복지학과의 임미영씨는 ‘노인 자살 시도 경험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동료 지지 집단(Peer Support Group)은 생명의 줄(Life Line)이라고 불릴 만큼 사회·정서적 지지를 제공한다”고 썼다. 직업이 없다는 것은 고정적 수입이 없음은 물론, ‘생명의 줄’이 낡아감을 의미했다.
‘빈곤 자살’은 주거지 분포에서 다시 윤곽을 드러냈다. 통계청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현황을 노원구가 별도로 분석한 결과, 자살률(10만명당 자살자)에서도 강남북이 갈렸다. 서초구·송파구의 자살률이 매우 낮았다. 2009년 전국에서 1만5413명이 자살했다. 10만명 당 자살률은 31명이었다. 서울시 평균 자살률은 26.1명이었고, 금천구·중랑구는 30명을 넘었다. 송파구에선 21.8명, 서초구는 15.4명으로 더 낮았다.
노원구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이런 모양새가 드러났다. 노원구 전체 19만4360가구 가운데 아파트 거주 가구가 81%, 일반주택 거주 가구가 19%를 차지했다. 임대아파트는 12.5%였다. 그러나 자살자 비율은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더 높게 나왔다. 전체 자살자 가운데 아파트 거주자 비율은 71%(518명 중 369명)였고, 일반주택 거주자는 29%였다. 아파트 거주자의 자살이 높게 나왔고 특히 임대아파트의 구성비는 전체 가구의 12.5%(전체 19만4360가구 중 2만4324가구)지만, 임대아파트 거주자의 자살률은 14%(518명 중 75명)였다. “전체적으로 저소득 취약계층 자살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고 노원구는 분석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자살률도 높았다. 전체 인구의 3.6%에 해당했지만 자살률은 8%로 매우 높았다.
자살 방법은 목맴(50%)과 투신(40%)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노원구는 “자살 방법으로 목을 매거나 투신한 경우가 90%로 가장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며, “공동주택 옥상에 공원을 조성하고, 생명존중 표어를 부착하며, 아울러 자살 방지를 위한 물리적 안전시설의 설치가 요구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빈곤=자살’이라는 등식은 지나치게 투박하다. ‘빈곤=( )=자살’이라는 등식이 맞다는 지적이 많다. 괄호에 들어갈 빈 고리는 뭘까? 노원구는 “자살자를 분류하면, 질병에 의한 신병비관자, 무직이나 일용직인 고용불안자, 생계곤란자, 우울증 환자, 고령 노인층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며 “이 계층들에 각각 부합하는 사회적·의료적 측면이 포함된 통합적인 생명존중 사업계획을 수립해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노원구는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외에 정보 격차 해소 등 ‘정서적 지원’도 요구된다”고 밝혔다.
임미영씨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려고 자살을 시도했다 살아난 노인 4명을 인터뷰했다. 그중 3명이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고, 그것이 자살 시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임씨는 빈곤이 ‘무시당함’과 같은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그는 논문에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 배우자로부터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며 창피한 존재로 여겨짐”이라고 분석했다. 임씨는 동료지지집단의 사회적·정서적 지지를 ‘생명의 줄’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가난하다는 것, 특히 직업이 없어 가난하다는 것은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비를 맞지 못한 적도의 땅처럼, 정서가 메말라간다는 취지다.
보건복지부도 심리적 부검 결과를 토대로 ‘정서적 지지’를 강조했다. 복지부는 2009년 “자살시도자는 자살의 위험이 매우 높은 집단이므로 상담 등 특별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제적 지지뿐 아니라 상담을 통해 어려움을 듣고 나누는 정서적 지원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이숙희씨는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다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가는 뒤늦게 손을 내밀었다. 유가족 심리지원은 상담을 신청한 둘째딸에게 제공됐다. 둘째딸은 인터넷 게시판에 처음 글을 적어 상담했다. 전화 상담을 포함해 모두 7차례 상담을 받았다. 둘째딸과 이씨의 자식들은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겪고 있는 이 일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부담스럽고 어렵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에 가득한 감정들을 표현”하길 원했다. 가난한 노인을 자살로 내몬 건 채권추심업자들만이 아니었다. ‘생명의 줄’이 그를 놨다. 남은 가족은 ‘생명의 줄’을 다시 잡길 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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