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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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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검색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

스스로 조심하고 대처하는 게 최선, 정보 공개 범위 꼼꼼히 따지고 신상털기 프로그램 역이용할 것
등록 2011-05-04 16:09 수정 2020-05-03 04:26

‘농협과 현대캐피탈은 이지아에게서 보안을 배워라.’ 서태지-이지아 소송 보도가 나간 뒤 14년 동안의 결혼 사실은 물론 데뷔 이후 자신의 신상정보를 꽁꽁 숨겨온 이지아의 보안 능력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지아는 본명을 개명하고 다시 가명을 썼으며 태어난 연도도 바꿨다. 이지아는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탓에 그에 관한 정보가 유독 없기도 했지만,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네티즌 수사대마저 포기한 유일한 사람이 바로 이지아다.
자신을 숨겨온 이지아를 질타할 이유는 없다. 숨기고 산 사람의 마음이 편했겠느냐만, 그렇다고 모든 걸 드러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지난 몇 년 동안 대중은 이지아의 진짜 이름과 나이를 알지 못했지만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그를 만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누군지 주민등록번호부터 전화번호까지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거나 커뮤니티에 가입해 활동하는 데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지아에게서 무한 검색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개인정보 스스로 보호하라

언제 어떻게 자신의 신상정보가 다른 네티즌이나 정부, 또는 기업에 의해 유출되거나 노출될지 모르는데 이렇게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의 개인정보를 막아주지 못한다면 스스로 똑똑하게 대처하는 수밖에. 그렇다면 ‘신상털기’의 위협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한국인터넷진흥원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는 ‘개인정보 오·남용 피해 방지를 위한 10계명’을 만들었다. △회원 가입이나 개인정보 제공시 개인정보 취급방침 및 약관 확인 △비밀번호 영문·숫자 8자리 이상 설정 △주민등록번호 대신 인터넷 개인식별번호인 아이핀(i-PIN) 사용 △주기적인 비밀번호 교체 △명의도용 확인 서비스 사이트를 통해 주기적으로 확인 △금융거래시 신용카드 번호 등 암호화해 저장 △개인정보 유출시 해당 사이트 관리자에게 삭제 요청 및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118, www.118.or.kr)에 신고 등이다.

신상털기 사이트인 '코글링'(왼쪽)과 소셜네트워킹 사이트인 '페이스북' 화면.

신상털기 사이트인 '코글링'(왼쪽)과 소셜네트워킹 사이트인 '페이스북' 화면.

정부의 홍보에도 몇몇 방법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먼저 아이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정부에서 아이핀이 안전하다고 홍보했음에도 지난해 6월 아이핀 부정 발급 사태가 벌어졌다. 타인 명의의 아이핀을 발급받아 판매한 이들이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검거됐다. 또 아이핀을 발급하는 정부 지정 5개 기관에 아이핀 관련 정보가 집중되는데, 이 기관들도 안전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활동가는 “온라인에서 사용되는 가상 주민등록번호 제도나 다름없는 아이핀 역시 실제 사용자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유출되면 마찬가지”라며 “회원 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나 아이폰 모두 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명의도용 확인 서비스 사이트를 이용할 것을 당부하지만 명의도용 확인 서비스는 대부분 유료다. 자신의 명의가 도용됐는지 확인하려고 자신이 누군지 세세히 밝히고 돈을 내야 한다는 건 모순이다.

정부가 제안한 몇 가지 방법 외에도 기억해야 할 것은 많다. “인터넷 초창기부터 내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올라오는 것에 유독 민감했다”는 20대 회사원 김민석(가명)씨는 되도록 새로운 인터넷 사이트에는 회원 가입을 하지 않는다. 전화번호나 휴대전화번호는 연락이 와야 할 필요가 없다면 ‘0000’으로 적거나 다른 것으로 기재한다. 자신이 매일 사용하는 전자우편 주소 말고 열람만 하는 전자우편 주소를 여러 개 만들어 필요할 때는 그 전자우편 주소를 사용한다. 같은 아이디를 여러 포털 사이트에서 사용하지 않기, 아이디에 생년월일이나 이름 등 개인정보를 넣지 않기, 기업이나 업체 문의 게시판 등을 이용할 때 ‘비밀글’로 설정하거나 전자우편 주소를 포함한 개인정보 적지 않기, 인터넷 카페 등은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면 바로 탈퇴하고 올린 글과 댓글 삭제하기,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단어나 사람 검색하지 않기 등도 버릇처럼 익힌 인터넷 사용법이다. 외국 사이트에 가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주민등록번호가 필요 없는 대신 전자우편을 주로 사용하는데, 사이트의 성격에 따라 전자우편 주소를 다르게 기재한다. 자신의 영문 이름도 믿을 만한 사이트가 아닐 때에는 실제 영문 철자에서 한두 개를 다르게 적거나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

자신의 신상을 털어보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로 접어들자 자기정보 관리는 더욱 복잡해진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가 생겨난 뒤론 이용자는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얻게 되는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기에 바쁘다. ‘넷피아’ 마케팅센터 연구소장이자 정보기술(IT) 칼럼니스트인 최규문씨는 “페이스북은 자신의 정보 공개 범위를 조정하는 영역이 세분화돼 있다”며 “가입한 다음 기본 설정을 유지하기보다, 설정 페이지에 들어가 스스로 정보 공개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또 ”최근 애플리케이션과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가 연동되면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때 개인정보를 긁어가는 업체가 있으니,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때는 정보 공개 허가 여부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페이스북뿐 아니라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에 대부분 적용할 수 있는 조언이다.

비밀번호를 바꾸고 여러 개의 전자우편을 사용하며 공개 설정 범위를 조정한다고 해서 안전지대로 들어갔다고는 볼 수 없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터넷에 올라온 자신의 정보가 재조합돼 사용되는 것은 막지 못한다. 이때는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국을 따라 눈길을 거꾸로 걸어가보는 것이 한 방법이다. 다시 말해, 인터넷에서 자신의 신상을 털어보면 자기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코글링’(neve.co1.cc)이라는 사이트가 화제가 됐다. 신상털기에 앞장서온 디시인사이드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이하 코갤)에서 활동하는 누리꾼들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이트는 ‘코갤’과 ‘구글링’의 조어다.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와 언론사 댓글, 인터넷 프로토콜(IP) 추적 사이트, 사기 기록 등 수십 가지 항목을 검색할 수 있게 모아놓은 신상털기 전용 검색엔진이다. 최근에는 아예 코글링 등과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된 신상털기 프로그램이 배포된다.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원하는 검색어를 넣으면 75개가 넘는 항목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코글링이나 신상털기 프로그램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씁쓸하지만 털리는 사람 처지에서 보면 오히려 속 시원한 측면도 있다. 신상털기의 영업비밀이 공개된 셈이 아닌가. 적어도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검색되는지를 알 수 있다. 이제 코글링이나 신상털기 프로그램 등에 자신의 이름과 전자우편, 아이디 등을 넣고 검색하면 자신이 지워야 하는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정보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다 보면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곳을 찾을 수 있고, 타인이 올려놓은 정보도 찾아낼 수 있다. 그다음은 간단하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흔적은 삭제하거나 삭제를 요청하면 된다.

공개 무방한 정보만 인터넷에 올릴 것

자신을 둘러싼 모든 정보에 벽을 쌓고 늘 조심한다고 해도 눈앞에 보이지 않는 권력기관이나 기업이 행하는 신상털기에는 개인이 당해내기 어렵다. 신상털기에서 살아남는 진짜 방법은 없는 걸까. 최규문씨는 “만인에게 공개돼도 무방한 정보가 아니면 올리지 말라”며 “올린 정보에 대해서는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소셜 네트워킹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도덕률”이라고 조언한다. 결국 털려도 문제가 되지 않을 삶을 자신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나? 장여경 활동가는 “어떤 사이트에도 가입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으면 그런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는 있겠지만, 저항적으로 권력을 역감시하는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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