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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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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고백 풍경 가상 시나리오


고백산업이 출판·방송 업계 잠식한다는 상상… 신정환, MC몽 등 2011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들이 고백록에 나선다면?
등록 2011-04-15 11:26 수정 2020-05-03 04:26

‘딩동.’ 우편함에 막 도착한 전자우편을 알려주는 알람이 아이콘과 함께 반짝인다. ‘수신자: 알라25/ 제목: [보도자료]3월 4주 베스트셀러 순위/ 날짜 2012-04-01 오전 11:47’ 한 인터넷 서점 홍보실에서 보낸 베스트셀러 관련 보도자료다. 전자우편을 열었다. 베스트셀러 순위표에 낯익은 저자 이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신정환과 변양균. 신정환의 신간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2위로 첫 진입했고, 변양균의 책은 지난주 7위에서 9위로 떨어졌다.

고백서,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등극

» 가상으로 제작해본 고백록 표지들. 이명박 <나는 대통령이다>, 변양균 <나의 1004>, 신정환 <세상은 넓고 카지노는 많다>

» 가상으로 제작해본 고백록 표지들. 이명박 <나는 대통령이다>, 변양균 <나의 1004>, 신정환 <세상은 넓고 카지노는 많다>

지난주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군 기사는 신정환의 책 출간 관련 기사였다. 필리핀 세부의 호텔 등지에서 1억원이 넘는 판돈을 걸고 바카라 도박을 한 혐의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신정환은 도박 혐의에 관한 죗값을 치르자마자 책을 출간한다고 발표했다. 책 제목은 . 신정환의 책은 ‘고백여행서’라는 독특한 장르의 책으로 눈길을 끌었다. 도박으로 몇 차례 입길에 오른 그간의 사정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여행기에 빗대 써내려간 형식으로, 책에는 세계 각국의 카지노와 관련된 생생한 정보와 여행지·맛집 소개, 여행지·공항 패션 제안까지 실려 있다. 물론 이 책의 보도자료에는 신정환이 함께 카지노에 간 연예인들을 실명으로 언급했다는 사실 역시 나와 있어 눈길을 끈다. 고백과 폭로, 정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욕심이 엿보인다. 신정환이 한때 최고의 연예인이었고 도박 파문도 꽤 컸던 만큼 출판업계에서는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선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정환의 책 열풍 때문인지 출간된 지 한 달이 넘어가는 변양균의 고백록 는 한동안 독자들의 눈길을 끌다가 점차 주춤하는 추세다. 는 신정아의 책 제목 을 거꾸로 한, ‘천사’를 의미하는 듯한 제목으로 눈길을 끌었다. 책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 고위직을 맡았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고뇌가 녹아 있다. 신정아와 스캔들이 터지기 직전부터 여론의 뭇매를 맞던 시절, 계속된 재판까지의 과정을 그의 시점에서 풀어낸 내용도 제법 솔직한 문체로 적어 내려갔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자 지난해 한 차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의 책까지 마치 세트처럼 함께 팔려나갔다. 변양균의 책에 대해 언론은 신정아의 책이 출간될 때 그랬던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드디어 ‘사건의 또 다른 주인공이 입을 연다’는 식의 기사부터 ‘또 하나의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비판 기사, 책 내용을 자세하게 옮겨놓은 기사까지 다양했다.

지난해 3월 신정아가 을 출간한 이후 ‘신정아 효과’나 다름없을 만큼 온갖 고백록과 자서전 형식의 책이 쏟아졌다. 책들 중에는 기업이나 정부의 이면을 폭로하는 책도 있었고, 연예계의 뒷거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도 있었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이들이 가장 먼저 받는 전화는 출판사의 책 출간 요청 전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식의 책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책 표지에는 꼭 저자 사진이 들어간다. 제목은 짧지만 눈길을 끌기에 충분할 만큼 자극적이다. 책 띠지에는 ‘○○○가 털어놓는 △△사건의 진실’이라든지 하는 문구가 꼭 따라붙는다. 몇몇 책은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고, 대부분은 2주 정도 급속도로 팔려나가고는 사라졌다. 그래도 ‘웬만한 다른 책보다 수익 면에서 낫다’는 출판사들 때문인지 이런 책은 꾸준히 나온다. 서점에는 에세이 코너에 ‘고백록·자서전’이라는 판매대도 따로 생겨났다. 이 앞에서 20대부터 40대까지 독자들이 서서 책을 들춰보는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내용이 ‘센’ 책들은 거들떠보지 못하도록 비닐로 꽁꽁 싸매놓기도 한다.

대통령 임기 후일담, MB의

» 문화방송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가수 MC몽.

» 문화방송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가수 MC몽.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이번주에 방영될 문화방송 에 관한 내용으로 시끄럽다. 병역면제 의혹으로 세상의 따가운 눈길을 한 몸에 받았던 가수 MC몽이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심경을 밝힌다는 예고편 때문이다. 공판이 진행되는 내내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외쳤던 MC몽은 에 함께 출연했던 강호동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 앞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의 의견은 찬성과 반대로 극렬히 나뉘었다. 그러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이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심경을 고백하고 다시 방송을 시작하는 모습을 수차례 봐온 시청자는 이런 논란마저 “뻔하다” “흥미 없다”는 식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외교관들의 ‘상하이 스캔들’이 한창 모자이크 사진과 함께 신문 1면을 장식한 이후 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해 파장을 일으킨 중국인 덩신밍은 최근 국내 TV 프로그램에 종종 얼굴을 내비친다. 책을 통해 한국 언론이 자신을 얼마나 ‘막’ 다루었는지에 대한 분노와 기사 속에 등장한 남자들과의 실제 이야기를 털어놓은 덩씨 특유의 솔직한 화법이 시청자에게 호응을 얻어 이후 몇 차례 케이블TV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틀 전에는 아침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해 중국에서 자신의 모습과 주변인들의 모습을 공개했다. 덩씨는 어느새 ‘크리스티나’를 잇는 외국인 방송인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출판계와 방송계에 떠다니는 얘기가 있다. 대선을 몇 달 앞둔 지금, 벌써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이후 자서전을 출간하고 토크쇼에 출연한다는 ‘설’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미 자서전 제목은 정해졌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의 자의식을 듬뿍 실은 . 이 대통령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 이후 출간해 150만 부를 팔아치운 자서전 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해 3월 부시 전 대통령이 책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대통령과 만났다. 이 책에는 국정 운영 기간에 틈틈이 써내려간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4대강 살리기사업’,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원전 수주,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등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뒷이야기가 실릴 예정이다. 무엇보다 임기 내내 자신을 괴롭히거나 놀린 이들에 대한 비난이 실명으로 나올 것으로 알려져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방송계에서는 이 대통령이 퇴임 이후 토크쇼 출연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전언이다. ‘나도 한때’ 시리즈로 유명한 이명박 대통령이 토크쇼에 나오면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해 어느 정도의 시청률은 보장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고백과 폭로의 폭풍에 우리는 지쳐간다

그 누구보다 ‘고백’과 ‘폭로’에 민감한 직업인 기자도 이제 점점 지쳐간다.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도 지루한 유행처럼 빙빙 돌고 있는 고백과 폭로전에 다들 피로감을 호소한다. 눈을 돌리는 모든 곳에 의혹이 있고, 그 의혹에 대한 고백이 있고, 고백에 대한 폭로가 있다. 그중에서 남겨둘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기 무섭게 또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이야기를 터뜨리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신도 모르게 책을 들춰보거나 관련 뉴스를 ‘클릭’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단 하루라도 조용한 세상에 살고 싶다”고. 2012년의 풍경이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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