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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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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동결 외치자 민주주의 꽃 피네

서강대·우석대·고려대 등 길게는 20여 년 만에 비상학생총회 성사…
동맹휴업 이어가며 등록금 결정권 가진 등록금산정위원회 요구
등록 2011-04-06 17:34 수정 2020-05-03 04:26

대학 캠퍼스에 봄이 왔다. 파릇한 잔디를 가로질러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묵은 더께를 털어내 ‘직접민주주의’라는 간판을 드러낸다. 지금 봄 캠퍼스는 정치의 계절이다. 서울, 인천, 전주 등 대학의 광장에는 ‘비상학생총회’라는 간판이 내걸린다. 내걸린 간판 아래로 ‘민중’ ‘민주’ ‘민족’ 등 낯선 어휘의 깃발들이 모여든다. “등록금을 인하하라.” 거칠고 성마른 학생들의 성토는 뜨겁다. 비상학생총회는 학교 쪽과의 불통을, 학생들끼리의 소통을 의미한다. 학교마다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재적 학생의 7분의 1이든 8분의 1이든 대체로 1천여 명 이상이 모여야 총회가 성사된다. 적게는 5년, 길게는 22년을 돌고 돌아 그들은 다시 정치의 광장을 만들었다. 이들은 등록금을 넘어서고 있다. 청소노동자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배우 김여진에 공감하고 등록금을 기꺼이 나누거나, 총회 광장의 한켠에 청소노동자를 초대해 등록금 인하와 임금 인상을 동시에 외친다. 자신을 가르치는 강사가 자신보다 더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멘 보따리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공분한다. 이렇게 대학 캠퍼스에는 봄이 오고 있다.

지난 3월31일 서울 고려대에서 열린 비상학생총회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를 외치는 모습. 재적 학생의 10분의 1이 넘는 22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총회가 성사됐다.

지난 3월31일 서울 고려대에서 열린 비상학생총회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를 외치는 모습. 재적 학생의 10분의 1이 넘는 22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총회가 성사됐다.

본관 문을 잠근 학교

지난 3월31일 고려대 중앙광장에도 개나리꽃 대신 노란 풍선 2200여 개가 피어올랐다. 1650명(재적 학생 8분의 1)이 넘으면 성사되는 총회지만 총회에 참석하려는 학생들의 줄은 총회 성사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총회 성사는 쉽지 않았다. 2005년 총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경험이 있지만 당시는 1월부터 총회 참석 요구 홍보물 등을 발송하며 3개월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 이번에는 3월 들어 준비를 시작했다. 학교 쪽과의 사실상 대화 단절 또한 총회의 성과를 예견하기 어렵게 했다.

“일방적인 통보와 고압적인 자세로 학생 대표들을 짓누르는 모습만 있었어요. 편의에 따라 아예 대화를 거부하기도 했고요.”

지난 3월29일 총회를 앞두고 학생회 대표들은 학교 본관을 방문했지만 학교 쪽은 본관의 모든 문을 잠그는 것으로 대답했다. 지난 1월에는 5%가 넘는 등록금 인상안 반대와 등록금을 계열별로 달리 매기는 차등책정 폐지 등을 담은 수십 쪽의 제안서를 학교 쪽에 보냈지만 돌아온 건 두 쪽짜리 답변이었다. 유지영 고려대 부총학생회장은 “요약하면 노력하겠다는 말뿐이었다”며 “더 노력하겠다거나 추후 노력해보겠다 정도 이상의 말을 찾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광장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노란 풍선을 들고 단상에 올랐다. “등록금 때문에 밥값을 줄여야 한다”는 말에 새내기, 복학생 할 것없이 박수를 쳤다. 총회의 성사에 기뻐하는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하루 전부터 4320원의 시급을 180원 올려 달라며 파업에 들어간 고려대 안의 청소·경비 노동자 200여 명도 광장에 함께 모였다. 김경순 고려대 지회장은 “등록금은 내리고 임금은 올리자”고 외쳤다. 이 구호는 곧 하나가 됐다. 고려대 학생들은 지난 3월4일 고려대 청소노동자 파업 당시 1만6천 명이 넘는 지지 서명을 했다. 이는 고려대의 학생 서명운동 사상 최대 숫자였다.

비상학생총회 뒤 학생 1천여 명이 본관에 항의방문을 갔지만 당장 해결된 것은 없다. 하지만 일부 재학생들에게는 2002~2005년 비상학생총회를 통해 신입생 등록금차등책정제 폐지와 김정배 총장 퇴진이라는 성과를 거둔 기억이 있다.

“총회 성사는 감동”

하루 전인 3월30일 서강대에서도 비상학생총회가 열렸다. 22년 만이었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운 1980년대 말 이후 한 번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서만도 총회는 수차례 무산된 바 있어 1천 명을 넘어선 순간 광장에 모인 학생들의 환호는 더 컸다. 이 날 학생들은 자신의 손으로 학교 쪽에서 제시한 2.9% 인상에 장학금과 학생지원금 비중을 높이는 안을 부결시켰다. 학생회장단은 이날 수업 거부를 의미하는 동맹휴업을 실시할 것을 선언했다.

지난 3월29일 전북 우석대 총학생회는 재적 8천 명의 8분의 1인 1천 명이 넘는 수가 중앙광장에 모여 총회 성사를 알렸다. 이곳도 19년 만이었다. 숫자는 점점 늘어 등록금 인상안 반대 의결에 1300명이 직접 참여했다. 이혜민 총학생회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지방에 있는 조그만 사립대이고, 총회 경험이 없어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기 어려웠다”며 “총회 성사만으로도 우리에게는 감동”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등록금이 얼마나 학생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있는지를 총회 성사가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년 전에는 600명 정도가 모여 총회 성사가 실패하기도 했다.

비상학생총회를 연 곳은 3월24일 경희대를 시작으로, 29일 우석대, 30일 인하대·세종대·서강대·덕성여대, 31일 고려대·이화여대 등이다. 경희대는 지난 3월24일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에서 각 2천여 명이 모여 총회를 성사시켰고, 3% 등록금 인상 철회라는 성과를 냈다. 비상학생총회를 앞둔 대학 구성원들에게 이런 성과는 자극제가 됐다. 다만 경희대를 제외한 다른 대학 당국은 학생 총회가 성사됐는데도 학생들의 결의안에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2010년 초 통과된 법안에 따라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가 대학별로 의무적으로 설치됐다. 등심위는 학교본부, 학생대표, 전문가 등이 모여 등록금 인상안을 심의하는 기구다. 비상학생총회,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 등 대규모 집회를 연 10여 개 학교 모두 등심위가 있다. 등심위는 무엇을 한 것인가. 고려대, 우석대 등 학교의 대표자들은 “등심위는 학교가 결정한 등록금안을 결정하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못박는다. 학교 쪽과 동수 참여가 보장되지 않을뿐만 아니라 의결권이 없어 학교 쪽 의견을 전달하는 정도의 기능을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학내 언론조차 참가가 거부될 만큼 비공개가 당연시되기도 한다.

“정부와 국회도 책임져야”

등록금넷, 참여연대, 한국대학생연합 등에서 등심위가 아닌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가진 등록금산정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학생들이 광장으로 모여든 데는 등심위를 형식적인 기구로 전락하게 만든 정부와 국회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은 학생들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다. 4월2일 ‘반값 등록금 시민·대학생 대회’에 수만 명의 대학생이 참가해 근래 최대의 대학생 집회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교는 광장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고 이제 학생들은 학교 담장을 넘어 거리로 나선다.

경찰은 이날 행사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애초 서울시청 앞 광장 집회를 불허했다가 서울 대학로로 자리를 옮기자 이번에는 행진 방향을 문제 삼았다. 행진 방향을 두 번 바꾸는 우여곡절 끝에 대회는 성사됐다. 학교 밖도 불통이기는 마찬가지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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