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시멘트 벽돌담 울퉁불퉁한 벽에는 붉은색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었다. 함부로 쓴 세 글자는 사람 키높이의 담벼락을 가득 채웠다. 그 옆에는 검은색 작은 글씨로 ‘○○천막사’ ‘××설비’ 같은 광고 문구가 얌전하게 쓰여 있었다. 경기 파주시 파평면의 한 마을에서는 초입부터 가축 전염병을 시각적으로 큼지막하게 광고하고 있었다.
상수원 옆 짐승들의 ‘묘지’아니나 다를까, 담 바로 뒤편으로 돌아 들어간 축사는 텅 비어 있었다. 몇 달 전까지 축사를 가득 채우고 여물을 먹던 소들은 지난해 12월29일 하루 사이 모두 사라졌다. 들에서 마른 가지를 태우던 마을 주민 임종만(75)씨는 “하룻밤 사이에 소들이 모조리 감쪽같이 묻혔어”라고 말했다. 짐승들은 축사에서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공터에 묻혔다. 가로 8m, 세로 30여m의 비슷한 크기로 만들어진 구덩이 두 곳에 젖소 95마리와 한우 19마리는 차곡차곡 쌓였다. 지난 3월10일 찾아간 현장에서 짐승들의 ‘묘지’에는 푸른색 방수포가 덮여 있었다. 저마다의 소리로 울던 짐승들은 그 안에 흙을 덮고 소리 없이 묻혔다. 그 앞에는 관리책임자의 이름과 연락처, 농장주의 이름 등을 담은 ‘발굴 금지’ 표지판이 비스듬히 서 있었다.
언뜻 보면 흠 잡을 것 없는 처리였다. 문제는 입지였다. 매몰지에서 불과 여덟 발짝 떨어진 곳에 배수로가 있었다. 마을 주민인 이아무개(54)씨는 “평상시에는 마른 물길이지만, 날씨에 따라 물이 많이 흐른다”고 말했다. 펌프를 써서 지하수를 먹는다는 그는 “침출수 때무에 지하수가 오염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배수로를 따라간 끝에는 임진강 지류인 문산천이 있었다. 문산천이 10km 정도 흐르면 다시 금파취수장에 이르게 된다. 금파취수장은 교화 새도시와 금촌 택지지구 등 일부 지역을 뺀 파주 전역에 수돗물을 공급한다. 파주 시민 35만여 명 중 21만여 명이 이곳에서 나온 물로 밥을 짓고 몸을 씻는 등 생활용수를 쓴다. 파주시 관계자는 “지난 연말에는 쏟아지는 살처분 두수를 미처 처리할 만한 여력이 없어서 일일이 매몰지의 조건을 따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동물 무덤의 풍경은 곳곳에서 아슬아슬했다. 문산천변 상류를 따라오르다 보면, 하천 둔치에서 30m가 채 안 되는 곳에서 매몰지가 눈에 띄었다. 하천의 물이 불면 바로 덮일 듯이 매몰지는 가까웠다(사진 참조). 동화 속 ‘청개구리 엄마 무덤’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비가 쏟아질 때, 많은 지역 주민들은 청개구리처럼 걱정에 휩싸일지 모른다.
구제역 피해 큰 경기·경북, 오염 위험도도 높아환경부는 지하수·하천·수원지·집단가옥에서부터 30m 이상 떨어진 곳에 매몰지를 두도록 기준을 정해두고 있다. 매몰지의 위치를 두고 시민단체의 반발이 일자, 파주시는 황급히 매몰지 주변에 범람을 막기 위한 철근 콘크리트 옹벽을 두르고 방수포로 덮었다. 파주시 관계자는 “소가 7마리만 묻힌 곳이고, 옹벽을 쌓아서 오염의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이현숙 파주환경운동연합 의장은 “임진강 유역에 부실하게 만들어진 매몰지가 많아서 상수원 오염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 파평면의 매몰지만 이런 우려를 낳는 것일까? 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실이 각 지자체를 통해 구한 전국 4234곳의 매몰지 위치 정보 가운데 현황카드의 주소가 불분명한 445곳을 제외한 3789곳을 분석했다. 매몰지의 침출수가 번져나가는 정도를 가늠하려면 매몰지의 토양 상태, 경사, 지형, 매립지 바닥의 지하수위, 우물이나 하천으로부터의 거리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은 이 가운데 토양 상태와 하천과의 거리, 과거 침수 빈도, 지하수위 등을 중심으로 매몰지의 위험도를 측정했다. 그 죽음의 매몰지 지도에는 총 3789곳 가운데 1583곳(41.8%)이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몰지 10곳 가운데 4곳 이상이 하천이나 지하수와 가깝든지 과거 폭우나 홍수에 침수된 적이 있는 취약지였다.
우선 전국 지적도와 매몰지 현황카드의 주소지를 비교분석한 결과, 하천과 50m 이내의 거리에 있는 매몰지는 155곳(4.6%)이었다. 환경부는 매몰지와 하천의 거리를 30m 이상 떨어뜨리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외국에서는 50m 이상이 기준이다. 서울시립대가 2008년 작성한 ‘가축 매몰에 따른 환경오염 관리방안’ 보고서를 보면, 미국 환경청은 100m, 뉴질랜드는 50m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역별로는 구제역 피해가 가장 큰 경기도와 경북이 침출수 오염 위험도가 가장 컸다. 경기도에서는 75곳이, 경북은 59곳이 하천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뒤를 이어 강원(8곳), 충북(6곳), 경남(5곳), 충남(2곳) 등이었으며 대구, 부산, 인천, 전북 등에는 없었다.
그 죽음의 매몰지 지도에는 총 3789곳 가운데 1583곳(41.8%)이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몰지 10곳 가운데 4곳 이상이 하천이나 지하수와 가깝든지 과거 폭우나 홍수에 침수된 적이 있는 취약지였다.과거 1984년부터 2000년까지 침수된 적이 있는 매몰지는 217곳이었다. 한국수자원공사 국가수자원관리종합정보 사이트의 침수실적도를 기준으로 매몰지를 분석한 결과, 경기도가 185군데로 가장 많았다. 이어 강원·충남(각 12곳), 충북(6곳), 경북(2곳) 등이었다. 특히 경기 파주시와 연천군은 임진강과 한탄강과 임진강이 흐르고 있어 각각 51곳과 44곳의 매몰지가 침수된 적이 있는 지역이었다. 물에 잠기는 매몰지는 단순히 침출수가 새어나가는 것을 넘어 매몰지 자체가 휩쓸려 동물 사체까지도 하천으로 흘러나갈 우려까지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개인 재산 침해를 이유로 2001년 이후 침수 사실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마저 포함할 경우 침수된 적이 있는 매몰지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부 상수도원 오염 우려
지하수와 가깝거나 지하에서 물의 이동이 빠른 곳에 위치한 매몰지는 1423곳이었다. 국가수자원관리종합정보 사이트의 정밀토양도를 보면, 토양배수 정도를 ‘매우 양호’ ‘매우 양호 내지 양호’ ‘양호’ ‘약간 양호’ ‘불량’ ‘매우 불량’ 등 6등급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불량’ ‘매우 불량’ 등은 지하수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거나 지하의 물 흐름이 빨라 비가 올 경우 매몰지의 침출수가 지하수나 하천 오염으로 이어질 위험이 큰 곳이다. 매몰지 중 ‘불량’ 지역은 1404곳이고, ‘매우 불량’ 지역은 19곳이다. 이들의 지역별 분포는 경기도가 798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북(205곳), 강원(134곳), 충북(128곳), 충남(109곳), 인천(36곳), 경남(12곳), 대구(1곳) 등이었다. 이들 지역은 빗물이 매몰지를 거쳐 지하수로 바로 스며들어 인근 하천이나 취수장, 상수도 미보급 지역의 가정에 전달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206곳의 매몰지는 이런 몇가지 위험이 중첩된 곳이었다. 특히 6곳은 3가지 위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었으며, 나머지 200곳은 침수된 경험이 있으면서 바로 아래에서 지하수가 흐르는 등 복수의 위험 요소를 안고 있었다.
지역별로 하천과의 거리, 과거 침수 빈도, 지하수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면, 가장 취약한 지역은 경기 북부다. 이 지역 매몰지의 상당수가 과거 침수 경험이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흐르는 경기 파주시·양주시·동두천시·포천시·연천군과 강원 철원군의 매몰지 1009곳을 분석한 결과, 과거에 침수된 적이 있는 곳은 155곳에 달했다. 여기에 하천으로부터 거리가 채 50m가 안 되는 매몰지까지 추가할 경우 위험 우려 매몰지는 192곳(19%)에 이른다. 특히 상류의 오염이 하류에 축적되는 하천의 특성을 감안하면 한탄강과 임진강의 물이 모이는 경기 파주시 금파취수장의 상황은 심각한 것으로 판단됐다. 또 토양 분석치까지 포함하면 우려는 전체 매몰지의 절반이 넘는 511곳(50.6%)까지 확대된다.
남한강이 흐르는 경기 남부 지역은 경기 북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었다. 경기 이천시·안성시·여주군·양평군 등의 매몰지 574개 중 과거 침수 경험이 있거나 하천으로부터 50m 안에 있는 매몰지는 29곳이었다. 지하수와 가까운 곳까지 합하면 총 230곳으로 늘어난다. 이곳의 물은 서울 시민의 수돗물인 팔당상수원보호구역과 직결돼 각별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매몰지의 위험은 어느 정도일까? 우선 흙 속에 짐승의 사체가 미치는 오염 정도를 살펴보면, 1993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은 75kg 돼지 한 마리의 사체가 3만6천ℓ의 물을 200mg/ℓ 정도로 오염시킨다고 밝혔다. 1.5ℓ짜리 페트병 2만4천 개 분량의 맑은 물을 일반 가정용 세탁물(150mg/ℓ)보다 더 혼탁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미국 농무부 동식물검역청의 2004년 보고서를 보면, 소 한 마리는 두 달에 걸쳐 평균 160ℓ의 침출수를 내놓고, 돼지 한 마리는 같은 기간 동안 12ℓ를 침출수로 흘려보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홍영표 의원(민주당)은 최근 구제역 매몰지 침출수 발생 예상량을 총 6156만ℓ로 추정했다.
부실한 매뉴얼마저 따르지 않았다이런 침출수에 병원균이 여럿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영국 환경청은 2001년에 공개한 자료에서 침출수에는 다수의 병원성 세균이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로 든 병원균으로는 식중독의 원인이 되는 살모넬라, 산모가 유산에 이르도록 하는 리스테리아, 설사 등을 동반하는 지아르디아증의 원인이 되는 지아르디아균 등이 있었다. 2008년 서울시립대에서 내놓은 ‘가축 매몰에 따른 환경오염 관리방안’ 보고서는 “감염된 동물 사체의 매몰지에서 병원성 요인들(세균, 바이러스, 프리온)이 오랜 기간 잔존할 수 있으며 매몰지에서 유출되는 침출수에 의해서 병원성 요인들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매몰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은 정부가 마련한 매뉴얼이 부실한데다 그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3월7일 전국 구제역 매몰지 4476곳 가운데 매몰이 진행 중인 304곳을 제외한 4172곳을 조사한 결과 정비 및 보완이 필요한 지역이 전체의 9.8%인 412곳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환경운동단체는 정부 발표를 믿지 않고 있다. 경남환경운동연합은 경남 김해시 주촌면 매몰지 12곳을 조사한 결과 모두 매몰지 매뉴얼을 위반했고 침출수 유출 등 2차 환경오염도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정부는 12곳 중 4곳만 정비 및 보완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매몰지 주변 지하수 수질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 발표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워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유원일 의원(창조한국당)은 3월7일 “경기도가 매몰지 주변 지하수 수질을 검사한 결과 1637곳 중 24.7%인 405곳에서 매몰지역 오염지표인 암모니아성 질소, 질산성질소 등이 기준치를 초과했다”며 “침출수에 의한 지하수 오염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매몰지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증언이 실제로 매몰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경북 안동에서 매몰 작업에 참여한 한 수의사는 “매몰 현장은 정해진 시간 안에 살처분하라는 지시에 따라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며 “매몰 부지 확보가 어려운데다 시간도 촉박해 매뉴얼을 고려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 역시 “지난해 10월 구제역과 관련해 땅을 판 뒤 특수비닐을 씌우고 1m의 흙을 쌓고 가축을 매몰한 뒤 생석회를 뿌리고 흙을 덮도록 하는 매뉴얼을 마련했다”며 “하지만 매뉴얼대로 된 데가 하나도 없고, 땅을 판 뒤 일반 비닐을 깔고 바로 묻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재산권 앞세워 매몰지 정보 공개 안 해이처럼 매몰지에 대한 우려가 높은데도 정부는 매몰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홈페이지(www.구제역.kr)에서는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있지만, 매몰지와 관련된 정보는 찾을 수 없다. 민주당·민주노동당 등 야당이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농림수산식품부는 재산권 침해 우려를 이유로 정보 공개를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강기갑 의원은 “네티즌들이 얼마나 답답하면 매몰지 지도를 직접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겠느냐”라며 “매몰지에 대한 정보 공개는 침출수로 인한 상수원이나 지하수 오염 등을 막기 위한 첫 단계이자 국민의 알 권리”라고 말했다. 또 “이번 분석 결과로 구제역 매몰지 상당수가 오염 위험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정부는 구체적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의 불신과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파주=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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