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는 학습하는 사회였다. 남녀노소 모든 시민이 학교를 넘나들며 교양을 쌓았다. 아테네에서 가장 즐겨 사용한 말이 교양 혹은 교육을 뜻하는 ‘파이데이아’(Paideia)였다.
발 디딜 틈 없던 개강 기념 강연
아테네에서 능동적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마련한 파이데이아가 서울에도 나타났다. 1998년 폐쇄적인 제도권 강단(서강대 철학과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2000년 철학아카데미를 만드는 등 줄곧 제도권 밖에서 시민철학운동을 펼친 철학자 이정우 박사가 파이데이아의 학장이다. 그는 최근 무려 840쪽 분량의 을 펴내기도 했다.
파이데이아는 얼마 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문을 연 ‘대안연구공동체’(CAS·Community for Alternative Studies)의 한쪽 기둥이다. 이정우 박사 등이 이끄는 파134이데이아가 사상과 철학, 문화 강좌를 중심으로 꾸려진다면, 대안연구공동체의 또 다른 기둥 ‘에콜 에라스무스’에서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터키어 등 유럽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 강좌를 준비하고 있다. ‘에콜’은 학교를 뜻하는 프랑스어, ‘에라스무스’는 16세기 네덜란드의 인문학자다. 그렇지만 에콜 에라스무스는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보다 유럽연합(EU) 각국이 통합을 다지자는 목표 아래 마련한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에서 이름을 빌렸다.
파이데이아와 에콜 에라스무스가 처음 문을 연 것은 지난 3월2일이었다. 봄학기 시민강좌에 앞서 3월2∼4일 사흘에 걸쳐 김세균·우희종 서울대 교수, 김종철 발행인,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등이 나서 ‘대학의 위기와 대안교육의 모색’ ‘무너지는 생태환경, 어떻게 일으켜세울 것인가’ ‘신자유주의의 문제와 그 대안’을 주제로 개강 기념 강연을 열었다.
시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흘 내내 50명 정원의 강의실에는 발 디딜 틈이 거의 없었다. 이정우 박사는 “인문학적 교양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크게 느는 데 반해, 대학 너머의 공간에서 사유하고 토론하고 독서할 공간은 여전히 부족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19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사상적 흐름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고 경우에 따라 배척하기까지 했습니다. 푸코와 데리다, 들뢰즈 등으로 대변되는 후기 구조주의가 들어온 지 벌써 20~30년이 됐는데 이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상적 분열과 단절인 것이죠. 1990년대에 대학 바깥에 철학아카데미와 ‘수유+너머’ 등 연구 공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강단철학으로 메우지 못하는 빈 공간 때문이었습니다.”
3월17일 정식으로 개강한 파이데이아 강좌에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이정우) 같은 철학 입문 강좌부터 ‘동서 철학의 회통’(김상일 전 한신대 교수, 철학자 김영범·임상훈), ‘중앙아시아 유목미학 입문’(미술평론가 김숙경), ‘논어원전 강독’(철학자 이현구) 등 중급 강좌, ‘생명과학과 인지과학’(이정우), ‘현대철학과 현대미술’(철학자 김연숙) 등 학제 간 장벽을 허무는 크로스오버 강좌도 포함돼 있다.
스웨덴·세르비아·헝가리어 등으로 확대 예정불문학자 이상빈 박사가 교장을 맡은 에콜 에라스무스에서도 영어와 중국어 등 패권 언어에 눌려 국내에서는 배울 곳이 적거나 아예 없는 유럽 각국의 언어, 즉 프랑스어·독일어·포르투갈어·터키어와 함께 앞으로 스웨덴어·세르비아어·폴란드어·체코어·헝가리어 등 강좌를 열어 언어 교육의 폭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안연구공동체 홈페이지(paideia21.org) 또는 전화(02-777-0616)로 문의하면 된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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