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은 모두 옳은가? ‘국정원 절도 미수 사건’이 시민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이번 사안이 자꾸 신문에 크게 나는 게 과연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기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는 지난 2월22일 “(언론사들이) 한번 생각하고 협조해주시면 좋지 않나 해서 (기자실로) 내려왔다”며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언론에서 생각하는 국익과 정부의 국익이 다를 수 있겠지만 같은 부분도 많이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국정원 스스로 부여한 ‘제6의 직무’
거듭 질문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보기관의 모든 활동은 국익인가? 민주사회는 그 모든 국익에 합의했는가?
배종윤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의 말부터 들어본다. “(국가 정보기관의 행위 자체보다) 기관이 지향하는 이익에 대한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 정권 안보를 위한 것인지, 국가 안보적 이익인지, 사기업을 위한 건지, 진짜 국익인지, 누가 판단하고 기준을 정할 것이냐는 거다.”
국가정보원법이 있긴 하다. 기관의 직무를 규정하고 있다. △국외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 업무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암호부정사용죄,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 △국정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에 대한 수사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 등 다섯 가지다.
그런데 국정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법이 정한 직무 너머 하나를 더 추가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이라는 소명의식을 갖고 국익과 직결된 환경·산업·해외정보의 수집, 분석 등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보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국정원이 시도했던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상대 절도건이 딱 해당될 직무다.
법조계 일부는 “(이번 활동이) 국정원법상 ‘국외정보’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 반면 참여연대 시민감시팀은 “직무 범위 어디에도 국내 기업의 수출을 돕기 위한 정보활동이 포함돼 있지 않다”며 “사법적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두루뭉술하니 갈등이 생긴다.
실상 국정원법상 다섯 가지의 직무는 1963년 12월 중앙정보부법을 처음 개정하며 삽입했다. 내용을 보면 놀랍다. △국외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 및 대정부 전복)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 및 시설과 지역에 대한 보안 업무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이적의 죄, 군사기밀누설죄, 암호부정사용죄,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에 규정된 범죄의 수사 △정보부 직원의 범죄에 대한 수사 ▷정보 및 보안 업무의 조정·감독.
반세기 동안 ‘원형’ 그대로다. “국익”이라 말하며 갖가지 불법을 저질렀던 과거의 법적 토대로부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한 논문에서 “(과거 정보기관에서) 애매모호했던 법률적 내용들이 정보기관의 정치화, 초법적·탈법적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근거로서 적극 활용되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11년 국정원이 웹상 표명한 ‘제6의 직무’는 그런 비판에 대한 불안 내지 욕구불만인 셈이다.
톡톡한 댓가 부르는 경제정보 오·남용정보기관의 역할에 대한 요구는 물론 빠르게 바뀌어왔다. 냉전 종식 뒤 경제정보 활동이 특히 부각됐다. 미국은 1991년 정보기관의 역할과 임무, 최우선 사항을 점검하도록 지시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2005년까지 정보활동이 필요한 영역을 새로 분석했다. 경제정보, 국제 환경문제, 천연자원 부족문제, 세계보건 등이 꼽혔다. 1993년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며 새 논쟁이 불붙었다. ‘정보기관이 수집·분석한 경제정보를 어떻게 공평하게 배분할 것인가’였다. 수사에 불과할지언정, 당시 로버트 게이츠 CIA 국장은 “경제정보는 경제와 경영, 무역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것이며 정책 결정자들에게만 배분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1970년대 전후부터 경제정보 활동에 선도적이었다. 과거 국영기업이 많아 국익에 대한 합의가 전통적으로 강하게 이뤄져온 탓이다.
한국도 1993~94년 큰 변화를 겪는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안기부법 개정 등을 앞두고 “탈냉전·경제전쟁 시대에 맞추어 과학기술 정보 및 산업정보 활동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의회에서조차 정보기관의 직무나 방식에 대한 새 논의나 합의는 전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역대 CIA 국장 9명 가운데 7명이 민주적 감시와 통제를 받는 게 정보기관의 부담을 덜어주고, 오히려 더 편하게 (활동하도록) 해준다는 데 동의한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1994년 법 개정으로 안기부에 대한 국회의 감시와 예산 심의가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국정원의 패악적 정치 개입이 줄어드는 대신 경제정보의 오·남용 내지 사유화 현상이 나타났다. 김대중 정권 후반기의 ‘3대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진승현 게이트’(주가조작·정치권 로비)에 김은성 국정원 차장이 연루됐다. ‘이용호 게이트’에선 주가조작의 밑천이었던 보물선 발굴 사업의 검토 작업을 국정원이 벌였다는 의혹도 샀다. 수지 김 살해, 주가조작, 로비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윤태식씨를 국정원이 사건을 조작·은폐해가며 비호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원이 국익일 리 없는 경제정보 활동에 깊이 관여돼 있던 셈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 정보기관이 ‘방첩’ 활동을 할 수는 있지만 초법적·불법적인 방식을 통한 정보 수집활동은 이해할 수 없다”며 “결국 정경유착을 야기하고, 국가를 사적 이익의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 절도 미수 사건도 민간 방위산업체의 T-50 수출건이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 국정원이 무리수를 뒀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의 경우, 국가기관의 불법적 정보 수집활동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국정원 출신)은 “일본은 불법적 수집활동이 발각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보아 기업들이 (불법적 경제정보 활동을) 담당케 하고 이에 관한 정보나 여건만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 논문에서 분석한 바 있다. 대신 민간기업의 산업정보 활동은 왕성해 매수·절취 등 불법적 방법도 자주 노출된다고 설명한다. 정보기관이 대놓고 ‘활동’하고 어이없이 ‘발각’되는 우리와는 대조된다.
의회도 방치한 모호한 직무국정원은 1995년 안기부 시절부터 ‘해외산업경제정보’라는 자료를 만들어 기업과 민간 연구소 등에 배포해왔다. 2003년 산업기밀보호센터를 만들어 “우리 첨단기술을 보호하고 안전한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등 산업보안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고 대외적으로 밝히고 있다. 동시에 시민단체와 관계 맺는 민간기업까지 불법 사찰한 의혹(박원순 변호사의 폭로)도 사고 있다. 이명박 정부 아래 국정원이다.
문정인 교수는 “독점적 권력을 자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기에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필수적”이라며 “민주적 감시와 통제를 거쳐 정보기관의 투명성·정통성을 구축할 때, 정보기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상승하고, 정보기관의 존속과 확장이 가능해진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역대 CIA 국장 9명 가운데 7명이 민주적 감시와 통제를 받는 게 정보기관의 부담을 덜어주고, 오히려 더 편하게 (활동하도록) 해준다는 데 동의한다”는 것이다.
민주적 통제가 쉬울 리 없다. 미국은 대표적으로 1980년 ‘정보감시법’을 만들어 비밀공작 내용을 상하원 정보위 위원장 등 8명에게 통고하도록 시도했고, 1991년 다시 이 법을 개정해 의회 보고를 서면보고로 명문화시켰다. 견제와 일탈의 지난한 싸움이 되풀이된 셈이다. 실상 유일한 견제장치를 의회가 쥐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배종윤 교수는 “한국의 경우, 의회조차 정파적 이익을 기대하며 정보기관의 애매모호한 법적 직무를 인정하고 있다”며 한계를 짚는다. 당위는 “그럼에도 국익의 기준을 국정원이 자체 판단하도록 해선 안 된다”이다. 이 모순이 국정원 절도 논란의 본질일 것이다.
국정원은 1961년 6월 중앙정보부로 태동했다. 창설 오십 해를 곧 맞는다.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지위를 “대통령 소속하에 두며, 대통령의 지시·감독을 받는다”고 규정한다. 결국 원세훈 원장이 아닌, 의회와 이명박 대통령을 바라보는 까닭이다.
참고 문헌: (문정인 등 지음·박영사·2002), 〈경제전쟁과 미국 CIA〉(필립 차일즈 지음·고려원·1994), 〈미군과 CIA의 잊혀진 역사〉(윌리엄 브럼 지음·녹두·2003), (김민웅 지음·한겨레신문사·2003)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