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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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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술도, 나의 영혼도 절룩거리네

영화·음악·미술계의 ‘비정규직 예술 노동자’ 3인이

문화예술인들의 현실과 사회적 대안을 말하다
등록 2011-02-24 16:45 수정 2020-05-03 04:26

“예술을 가장 완벽하고도 광범위하게 정의할 경우 그것은 생활의 필요불가결한 한 부분이고 또한 한 부분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해당 정부가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조장시켜주는 분위기뿐만 아니라 이러한 창조적 재능의 표출을 용이하게 해주는 물리적 요건을 조성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필요하고도 적절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예술가가 자신이 원할 경우에는 문화활동에 적극적으로 종사하는 인간으로서 고려되고 따라서 그의 예술가적 직업의 특수한 여건을 고려하여 노동자의 지위에 관계되는 일체의 법적·사회적·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확인하고….”

나의 예술도, 나의 영혼도 절룩거리네. 한겨레21 류우종

나의 예술도, 나의 영혼도 절룩거리네. 한겨레21 류우종

2011년, ‘예술인의 지위’는 없다

1980년 10월27일 제2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예술인의 지위에 관한 권고’의 일부다. 30년이 지난 문장인데도 한줄 한줄이 새롭고도 아프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석 달 사이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씨와 시나리오작가 최고은씨 등 두 명의 젊은 예술가가 작은 방에서 홀로 인생을 마감했다.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여야 하는 예술가는 거꾸로 세상이 원하지 않는 존재(“나의 노래도 나의 영혼도 나의 모든 게 다 절룩거리네,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나를 원하겠어”-)이자, 삶의 딜레마에 빠진 존재(“누군가 그랬습니다. 공부가 안 돼서 우울할 땐 공부를 하면 된다고.”- 연출 의도)로 세상을 떠났다.

뇌출혈과 갑상선기능항진증, 췌장염이라는 질병이 이들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라면, 어려운 생계로 건강관리를 하지 못하면서도 계속해나갔던 예술은 이들 죽음의 간접적 원인이다. 예술가들이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개인의 삶이 벼랑 끝에서 미끄러지기 전에 잡아주는 손이 복지다. 이들에게도 복지는 필요하다. 예술인의 삶은 ‘예술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술인에 대한 복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고달프다.

‘현장’이 현실인 젊은 문화예술인들은 이진원·최고은씨 사태와 예술인 사회복지 관련 논의를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 미술과 음악, 영화 등 세 분야에서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대담을 준비했다. 5년차 ‘비정규직 예술가’인 공공미술 작가 권은비씨와 인디밴드 ‘플라스틱 피플’ 멤버이자 인디레이블 ‘일렉트릭 뮤즈’ 대표인 김민규씨, 독립영화 촬영부로 시작해 최근 장편영화 촬영감독을 맡은 백문수씨가 대담에 나섰다.

버팀의 ‘악순환’
권은비(공공미술 작가).한겨레21 윤운식

권은비(공공미술 작가).한겨레21 윤운식

<font color="#C21A8D">권은비(이하 권)</font> 스스로를 의식적으로 ‘비정규직 예술가’라고 소개한다. 예술도 노동이다. 예술 작업을 하는 것은 재화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노동인데, 예술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모든 예술가는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다. 나처럼 독립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은 더욱이나 영원한 비정규직이다. 최고은 작가의 작품을 본 적이 있어서인지 최 작가의 죽음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죽음을 둘러싼 반응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인 표현으로 ‘짜증’이 났다. 예술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존재하고, 그것에 대한 비판과 옹호가 오가는 상황이더라.

<font color="#C21A8D">백문수(이하 백</font>) 모든 문화계가 마찬가지겠지만 영화계는 시스템의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시점이라고 본다. 영화와 관련된 제안이 오면 거절하지 않는 이상 최소한 한 달에서 6개월, 1년을 오로지 거기에만 매달려야 한다. 일정은 늘어나는데 추가 계약은 제대로 되지 않고 결제일도 미뤄지면, 편의점 아르바이트 말고는 어떤 일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안정된 수입을 가질 수 있는 ‘투잡’은 꿈도 못 꾼다. 최 작가의 사망을 다룬 기사의 선정성은 비판할 만하지만, 어쨌든 최 작가 사건이나 흥행이 꽤 성공적이었던 영화의 조감독이 생활고 때문에 목숨을 끊는 사건을 보면 ‘이래도 되나’ 싶다.

백문수( 촬영감독). 한겨레21 윤운식

백문수( 촬영감독). 한겨레21 윤운식

<font color="#C21A8D">김민규(이하 김)</font> 창작으로 생계가 유지된 적은 없다. 음악만으로 건장한 청년 넷이 있는 밴드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건 이른바 주류나 인디나 다를 바 없다. 뜨지 못한 주류 아이돌 가수도 인디 뮤지션들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전업 뮤지션은 소수나 가능하다. 그러나 투잡을 시작하면 생계 걱정은 덜 수 있을지 몰라도 음악에 매달리지 못하니까 투자 대비 작업 능률이나 성과가 그만큼 높을 수 없다. 딜레마다. 음악계에 들어오는 이들은 대부분 돈을 벌지 못한다는 전제를 깔고 음악을 시작한다. 돈 버는 것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데, 그게 오히려 악순환을 부른다.

<font color="#C21A8D"></font> ‘가난해야 예술을 한다’고 여기는 예술가들이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이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돈을 못 벌어도 되는 거 아니냐’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도 서로 악영향을 끼친다. 가난은 사회적 제도 안에서 극복돼야 하고, 문화예술을 즐길 때는 창작자에게 작업한 만큼의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미술계는 노동과 복지의 사각지대다. 시각예술은 작업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도 음원이나 영화와 달리 다운받을 때 도토리 하나 주지 않는다. 나는 생계 유지를 위해 전략적으로 지원금 공모 신청, 인테리어 등 예술노동의 범위에 있는 모든 일을 한다. 그러나 나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작가가 많다.

<font color="#C21A8D"></font> 영화 스태프 조수급 중 상당수가 어려운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젊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는 프로덕션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일이 없을 때는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부양가족이 없으니까 자기 용돈벌이 정도만 하면 된다. 나는 얼마 전에 결혼을 했다. 결혼 전과 후는 상황이 다르다. 30대 중반이 넘는 나이에 내 먹을 걸 내가 책임지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새삼 느낀다. 생계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많다. 늦게 빠져나가면 뭘 해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 결국 오래 버텨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술노동에도 공정거래가 필요하다

<font color="#C21A8D"></font> 시스템 문제와 예술인들의 사회보장은 구분해야 한다. 시스템은 각각 장르별 특수성을 고려해 수정하면 된다.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장은 다른 문제다. 밥을 먹여달라는 게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리지 않도록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출도 받지 못하고 주변에 의료보험료가 밀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친구가 많다. 이빨이 빠져도 치과에 못 간다. 제도 하나 만들어주고 ‘됐지?’ 하는 식은 안 된다. 문화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왜 깊이 들어가지 않나.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실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한다고 해도 구조상 실업 상태인 거다. 충분히 고민하고 오랫동안 조사해 튼튼한 안전망을 만들어달라.

<font color="#C21A8D"></font> 동의한다. ‘예술하니까 제도 만들어달라’가 아니다. 예술을 말하기 이전에, 일을 하는데도 생계가 힘든 사람들을 위해 사회적 보장을 해줘야 한다는 거다. 시각예술 분야는 노동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할 때 결산서에 인건비 항목은 없다. 재료비가 전부다. 창작공간을 지원해주고 ‘로고 디자인 만들어볼래?’ 그런다. 이건 착취다. 디자인 회사에 맡기면 예산을 들이면서 예술가에게 맡길 때는 재료비만 준다. ‘혼을 담아 만들어달라’는 식이다. 예술가라고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게 아니라 예술노동을 인정해달라는 거다. 커피 마실 때는 공정거래 얘기하면서 예술에는 왜 공정거래를 적용하지 않나.

<font color="#C21A8D"></font> 실업부조제 등이 도입되면 지금보다 나아지겠지만, 거기에서 또 배제되는 독립영화인도 있을 거다. 강우석 감독이 최 작가 죽음과 관련해 열악한 영화 환경의 원인으로 인력 포화를 꼽았더라. 맞다. 연극영화과가 많아지면서 일자리가 줄었다. 그런데 영화에 눈먼 돈이 쏟아졌을 때부터 거품이 사라질 때까지 그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지 않나. 인력이 넘쳐나 영화인 생계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는 씁쓸하더라. 영화계에서 일하면서 부자가 될 거라는 욕심 없다. 정당한 대우를 받고 먹고살았으면 하는 정도다. 전국영화산업노조가 생겨나 표준계약서 채택이나 개별 계약 등에서 사정이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고 노조가 가진 힘이 크지 않다. 표준계약서를 채택해달라고 하면 ‘다른 팀과 일하면 된다’는 업체들도 있다. 여전히 노조보다 나와 일하는 선배가 더 중요한 구조다.

권 미술계에 단체나 협회가 있긴 하지만 하는 일은 명예를 지키는 정도인 경우가 많다. 미술계에도 실질적으로 작가들의 권리를 대변해주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이들이 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뭔가를 해보자는 얘기는 한다. 단체가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조직되는 게 예술인의 특성상 쉽지 않다. 나는 시각예술노조가 필요하다고 보고, 만들려는 의지도 있다. 협의체라기보다 자립적인 공동체, 생태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상주의자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돈을 벌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창작을 하겠다’는 생각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싶지 않다.

김민규(‘일렉트릭 뮤즈’ 대표).한겨레21 윤운식

김민규(‘일렉트릭 뮤즈’ 대표).한겨레21 윤운식

<font color="#C21A8D"></font> 음악계의 가수협회나 실연자협회는 그런 논의가 가능한 단체이긴 하지만 좀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는 고민은 있다. 그런데 음악인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정부 돈 따먹기로 전락한, 나쁜 선례를 남긴 단체들이 있어서인지 조직에 주저하는 이가 많다. 지금은 누군가 나서기를 기대하며 서로 쳐다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예술 분야별로 개별적인 움직임이 먼저 있고 그걸 취합하면서 예술노동자를 대변하는 게 맞는 건지, 더 큰 틀에서 시작해야 하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정부기관이나 국회의원이 채널 확보를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채널이라는 건 문턱이다. 문턱을 낮춰야 한다. 공무원 편의 위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지 않아서 얘기를 듣기 힘들다고 ‘단체를 만들어 오라’고 한다. 그들의 편의를 위해 억지 단체를 만들기보다 그들이 직접 흩어져 있는 예술가들을 찾아다니면 되지 않나.

예술의 필요성 증명할 기회조차 없어

<font color="#C21A8D"></font> 예술이 왜 필요한지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미적 부분을 추가하면 경쟁력이 된다는 ‘한강 르네상스’ 식의 예술 인식과 예술 자체만으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인식, 동전의 양면과 같은 논리만 존재한다. ‘왜 예술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예술은 경계를 지우고 예술 자체가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대답하겠다. 일본의 경우 지자체에서 마을 공동체를 만들 때 예술가를 투입한다. 예술가가 들어가면 또 다른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10년 동안 예술가가 한 마을에서 활동하며 예술이 필요한 이유를 증명해 보인다. 우리는 예술가에게 1년은커녕 한 달도 주지 않는다. 긴 호흡으로 예술을 지켜보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사례가 단 하나라도 만들어진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font color="#C21A8D"></font> 영화를 시작할 때 지겹도록 들은 얘기는 ‘하지 마라’였다. 주변에서 그러는 게 아니라 영화계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했다. 그때는 야심은 없었지만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요즘 들어 흔들린다. 주변에 지인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하면 내가 ‘절대 하지 마라’고 말한다. ‘영화 안 해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아서’라는 이유로 희생해야 하는 게 이렇게 크다면 ‘덜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안 되나’ 생각하게 되는 시점에 왔다. 생계가 어려워서 재능 있는 사람들이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먹고사는 게 걱정돼서 포기하는 건 얼마나 아까운가.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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