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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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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하나 사이에 둔 비극의 땅

아자드가 쇼컷에게…

고향 그리며 평화를 열망하는 카슈미르 난민들과 분단의 아픔을 공감하다
등록 2011-01-27 14:59 수정 2020-05-03 04:26
분쟁지역 평화활동 단체인 ‘개척자’ 소속 자원봉사자 이지형씨가 2008년 1년간 영어 등을 가르쳤던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 난민촌 마낙파이얀의 친구 쇼컷에게 보내는 편지다. _편집자

앗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를), 쇼컷!

카슈미르에서 헤어진 지도 어느덧 1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흘렀구나. 그곳도 지금은 아주 추운 겨울이겠지? 유례없이 춥다던데 너와 네 가족은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난방도 없는 곳에서 담요로 몸을 둘둘 감고 초를 켜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단다.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추억이지만, 그때는 왜 그리 혹독하다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힘들고 외로웠을 때 친구로서 함께해준 네가 많이 생각나는 겨울이다.

학교에서 너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참 많이 웃었다. 아이들이 참 순진하고 맑고 큰 눈망울로 수업에 들어와서는 말은 어찌나 안 듣던지! 소리를 질러봐도 겁을 주려 해봐도 통하지 않던 아이들에게 지쳐갈 때면, 네가 나타나 분위기를 잡아주곤 했던 것 기억나지? 그 말썽쟁이 녀석들도 네 말은 잘도 듣더구나. 역시 동네 형이 다르기는 다르구나 싶었지. 동네 사람들이 모두 친척이니 친척 형이라는 것도 한몫했겠지?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체벌 없이 평화주의를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네 덕분이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렇게 힘들게 가르쳤지만 아이들의 영어가 늘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우르두어(파키스탄어)가 발전한 것은 확실한데, 아이들의 영어는 1년간 그저 그랬던 것 같아. 지금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지형씨가 2008년 자원봉사 당시 쇼컷(가운데)과 다른 외국인 자원봉사자와 함께 웃고 있다.이지형 제공

이지형씨가 2008년 자원봉사 당시 쇼컷(가운데)과 다른 외국인 자원봉사자와 함께 웃고 있다.이지형 제공

짧은 생각으로 사람들을 돕겠다고 그곳에서 지냈지만, 오히려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단다. 마을 사람들이 인도에서의 탄압을 피해 정든 집과 고향, 가족을 뒤로하고 파키스탄에 정착하고, 난민촌에서 지내면서 지척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사는 모습은 내게 많은 것을 깨우쳐줬단다. 비슷한 상황의 분단국가에 살고 있지만, 정작 나는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분단의 아픔을 너희 마을 사람들의 슬픔을 보고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너희 어머니가 저편(인도령 카슈미르)에 남겨진 오빠의 죽음을 전해듣고 오열하던 모습은 잊혀지지 않아. 이산가족의 아픔, 전쟁의 상처, 분단의 고통을 우리나라가 아닌 그 땅에서 볼 수 있었고, 세상에 평화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지. 그리 깊지도 않은 강 하나만 건너면 되는 곳인데, 건너편에 소리 지르면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인데, 저편에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데, 그런 곳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아픔이 있는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열망은 내가 가진 것과 비교할 수 없겠지. 전혀 양보할 기세가 보이지 않는 두 나라가 하루빨리 합의해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고 고향을 방문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마을에서 한 가지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있어. 많은 아이들이 장래 희망을 말하면서 군인이 돼 인도인에게 복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참 가슴이 아프더구나. 당사자가 아닌 내가 평화를 선택하라, 그들을 용서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넘는 짓이겠지. 하지만 언젠가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폭력보다는 평화를 선택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으면 한단다. 내가 만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너무나도 평화롭고 친절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런 선택은 어렵지 않으리라 믿어. 네가 내게 보여준 모습들은 이미 내게 희망을 갖게 한단다. 언젠가 들릴 평화의 소식을 기대하며 이만 줄인다.

한국에서, 아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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