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드,
당신이 보내주시는 새해 축하로 한 해를 시작하고 한 해를 매듭짓는 일이 어느새 여덟 번째 해를 헤아립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8년이라는 시간의 강이 흐르는 사이 당신의 아름다운 딸들은 어느새 엄마가 되었고, 당신은 할머니가 되셨네요.
전쟁을 앞둔 이라크를 향해 평화를 위한 여행을 떠나던 2003년 3월, 이라크행 비행기에 오르던 저를 향해 “엄마, 친구들을 도와주는 건 괜찮지만 죽으면 안 돼. 폭탄이나 총알이 오면 잘 보고 빨리 피해야 해”라며 제게 철없는 인사를 건네던 여섯 살배기 아들은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새해 뉴스 속에서도 이라크는 죽음과 죽임의 소식들로 가득합니다. 4400여 명의 미군이 전사했다는 소식, 또 이라크전에 참여한 군인 중 6분의 1이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들 사이로 이라크 사람들의 안부를 찾아보지만, 여전히 무고히 죽어간 이라크 사람들이 얼마인지, 그 고통과 아픔의 크기가 얼마인지를 헤아릴 수 있는 기별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함께 뉴스를 보며 시름짓던 12살 딸아이는 묻습니다. “엄마, 전쟁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왜 이라크는 아직도 자꾸 사람이 죽어요? 수하드 아줌마는 어떻게 지내세요? 우린 언제 다시 볼 수 있어요?”
아이에게 어떤 답을 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저는 당신이 편지로 전해온 평화의 이야기를 고릅니다. 2006년, 바그다드의 한 학교가 빈 교실을 내주어, 아이들은 청소를 돕고 학부모들은 손수 비가 새는 지붕을 고쳐 만든 바그다드 작은 평화도서관이 개관하던 날, 당신을 끝내 울게 했다던 한 졸업생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는 책을 너무 좋아해요. 하지만 바그다드에는 도서관이 하나밖에 없어서 전 늘 아빠가 보는 재미없는 신문이라도 빼놓지 않고 읽었어요. 이제야 우리 학교에 도서관이 생기는데, 이렇게 읽고 싶은 책이 많아졌는데…. 저는 오늘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하고 슬퍼요.”
끝내 송사를 다 마치지 못하고 흐느끼는 아이에게 교장 선생님은 그 작은 도서관을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열어두겠는 약속으로 답사를 대신하셨다는 이야기. 그 아름다운 졸업식에 도서관 대표로 참여한 당신마저 울어 붉어진 눈으로 보내주신 한 장의 졸업사진. 그 이야기를 나누며 저는 아이에게 뉴스에는 나오지 않는 이라크를, 이라크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전쟁이 오고 있는 티그리스 강가에서 차를 마시며, 이 강에서 차를 마시는 것으로 전쟁을 이겨낸 일상을 지켜가겠다던 신혼부부, 전쟁 속에서도 아이들을 버려둘 수 없어 친척조차 없는 5명의 고아를 지키기 위해 남아 있던 5명의 교사들, 시아파 지역의 병원에 환자들이 몰려 아비규환을 이루자 평생 가본 적 없는 시아파 지역의 병원을 도보로 오가며 피와 땀에 젖은 가운으로 환자들을 돌보던 수니파의 젋은 여의사, 사담 후세인의 고문으로 발가락을 잃었으나 이 무고한 전쟁의 참상을 올곧게 기록해 정의와 진실을 가르치겠다던 청소년 지도자들…. 무엇보다 그 폐허와 울음 속에서 만난 먼 곳의 벗들에게 한 해도 거르는 일 없이 새해 인사를, 부활절의 평화와 성탄의 축하를 타전하는 당신의 평화를, 당신의 심장을 기억합니다.
혹독한 전쟁과 오랜 점령 속에서 생존의 무게를 버티며 평화를 향해 더디고 느린 걸음 놓아 가시는 당신이 계시기에, 제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수많은 평화의 사람들과 걸음들이 있기에, 끝내 이 점령을 지나 진정한 샬롬(평화)에 다다를 것을 믿으며 당신과 함께하는 여덟 번째 새해를 맞습니다. 수하드, 당신이 계셔서 참 고맙습니다.
당신의 딸, 마리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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