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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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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살’ 빠지는 신년 계획은?

+1살이 아닌 -1살로,

물리적 노화에 저항해 정신적 회춘을 꾀하는 발랄한 신년 다짐들
등록 2011-01-06 17:18 수정 2020-05-03 04:26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또다시 ‘+1’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평등한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시간이다. 서울 강남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회장님에게도, 추운 날 서울역 근처에서 잠잘 곳을 찾아헤매는 노숙인에게도, 고요한 사무실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기자에게도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1초, 5분, 1시간, 하루, 한 달, 그리고 1년. 2011년 우리는 ‘지난해 나이+1’의 나이가 됐고,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 늙었다. 시간이 모두에게 평등한 만큼 우리 몸속에서 ‘째깍’대며 흘러가는 시계는 화장품 광고 속 희망적인 문구와는 달리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다. ‘+1’만큼의 물리적 노화는 제아무리 신비한 약을 먹는대도 ‘+0’이나 ‘-1’이 되지 않는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한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물리적 노화에 무릎 꿇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 바로 정신적 회춘이다.

‘늙지 않는 법’은 ‘젊게 사는 법’의 다른 말이다. 젊음의 특권은 ‘마음대로 살 자유’와 ‘하지 않을 자유’, ‘신경 쓰지 않을 자유’다. 노화의 상징적 단계인 나이 서른, 마흔, 쉰을 넘겼다고 젊음의 특권까지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하나하나 뜯어보면 젊음의 특권은 몸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거다.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와 정서에 반기를 들고, 일탈이나 반항과도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고, 나이 따위는 신경 끄고 살면 스무 살 그때로, 정확히 말해 그때의 몸은 아니지만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물었다. “2011년 어떤 다짐으로 정신적 회춘을 꾀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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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야설을 써보겠다.”이류한승 서부 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쓴 포르노 소설 처럼 올해는 친구들과 즐기기 위한 야설을 써보려고 한다. 문자중독 증세가 있고 텍스트가 영상보다 더 좋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야설이 꽤나 매력적인 장르다. 야설은 넓은 범위에서 일반 판타지물이나 무협소설도 포함된다. 엄청난 비극적 운명의 남자 주인공이 만나는 여자를 품는, 그런 내용이 많으니까. 지금 국내에서 유통되는 야설은 일본 작품을 베끼거나 가부장적 권력욕을 드러낸 것이 대부분이다. 몇몇 인터넷 성인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오는 걸 보면 수준이 형편없다. 평소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여성을 어떻게 정복하는가 정도에 그치는 대리만족에 대한 것이 많다. 그런 야설은 부정확한 정보를 퍼뜨리고 잘못된 성관념을 심어줄 수도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짜증이 나고 남자 입장에서는 안타깝다. 천편일률적인 야설이 아니라, 대리만족을 넘어 개인의 성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개방적이면서도 어떤 것이 정말 즐거운지 성찰할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도미시마 다케오 같은 일본 작가의 작품을 보면 야설을 통해 미시권력을 탐구하고, 어떻게 하면 독자를 흥분시킬 수 있을지 다양하게 고민한다. 청춘기의 성숙한 인간이 누리는 성이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야설을 써보고 싶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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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나이를 얘기하지 않겠다.”장규상 공익근무요원

사람들은 꼭 나이를 묻는다. 같이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들과 얘기할 때 그렇고, 술자리나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가장 먼저 나이를 묻는다. 그렇게 서로 나이를 확인하고 나면 위아래가 생긴다. 한 살만 나이가 많아도 말을 높인다. 군대에 다녀오면 여학생이나 신입생과 나이를 비교당하는 일도 꽤 있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서 “몇 살”이라고 대답하는 순간 신경이 많이 쓰인다. 올해는 누가 나이를 물어도 내 나이를 얘기하지 않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 숫자 따위가 스트레스가 된다면 잊고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몇 살인지 말하지 않다 보면 내 나이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스무 살 이전에는 나이에 대한 관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런 스트레스도 없었다.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면 다시 그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이를 말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면 태어난 해를 말하는 방법으로 대신하겠다.

“‘까도녀’가 되겠다.”이은혜 미디어다음 스포츠팀

‘너만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이냐, 나도 까도녀(까칠한 도시 여자)다.’ 솔직히 요즘 대세로 자리잡은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나 ‘까도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신체적 한계와 ‘원판 불변의 법칙’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희박하지만, 그 당찬 기질만은 꼭 본받고 싶다. 소심하고, 주저하고, 걱정하고, 뒤돌아서는 인생보다는 “확실해? 이게 최선이야? 그럼 확실하네” 하고 믿음과 용기를 주는 까칠한 사람이 훨씬 유용하다. 적어도, 상대적으로 더 유용하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글쎄요, 뭐…” “아무거나…” 따위의 어법보다는, 수줍고 민망하게 단아한 어조로 말을 꺼내는 한이 있더라도 내 주변 지인들에게 ‘까칠한’ 사람이 되고 싶다. ‘잘난 척’ 좀 마음껏 하면서 살고 싶다. 내 코가 높아서 눈앞에서 함부로 문을 닫으면 다칠 수도 있다는 그런 오만함. 부러워만 말자!

 

“요리책에 없는 요리에 도전하겠다.”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지금까지 살면서 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고구마 정도 삶아먹는 데 그쳤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몇 가지 요리를 해봤다. 처음에는 2천원으로 밥상 차리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요리책을 따라해봤다. 그런데 요리를 하면 할수록 요리책에는 나오지 않는 응용 요리가 꽤 먹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퍽퍽해진 장조림을프라이팬에 튀겨보기도 했고, 물을 붓지 않고 쌀로만 밥을 해보기도 했다. 비록 밥알이 누룽지처럼 굳어버렸고, 심지어 쌀 안에 개미가 들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맛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올해에는 요리책을 보지 않고 요리에 대한 정보도, 이름도 없는 기상천외한 요리를 만들어서 기록해보려고 한다. 쌀집에서 조·수수·녹두·현미를 사왔는데 그런 재료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사는 집 옆에 있는 인왕산에 가서 식물을 캐서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 요리에는 나름의 이름도 지어보겠다.

“아이돌 댄스를 배우겠다.”이민희 대중음악평론가

가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아이돌 무대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들도 엄청난 스케줄을 견디려면 그만큼 운동을 해야겠지. 예전에는 아이돌 무대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에 이들의 무대를 자주 보다 보니 누가 어떤 동작을 하는지 눈여겨보게 된다. 따라해보면 건강에 좋을 것 같은 움직임도 꽤 있다. 물론 러닝머신 같은 헬스 트레이닝을 해도 되지만, 비트와 멜로디에 맞춰 안무를 익히고 몸을 움직이면 완성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에너지도 채워질 것 같다. 솔직히 몇 년 전 인근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방송댄스를 배워본 적이 있다. 그때는 사람들에게 차마 방송댄스를 배운다고 말하지 못하고 요가를 배운다고 말했던 것 같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소녀시대 같은 아이돌 그룹이 추는 춤을 배우고 싶고, 배우겠다고.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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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하지 않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겠다.”유동연 자유기고가

스페인인 남편과 공동으로 통장을 만들어 관리한 지 2년이 됐다. 둘이 여행을 다니고 먹고 마시고 노느라 돈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저축 금액이 0유로다. 각자의 통장 역시 비어 있는 건 마찬가지다. 아직 아기가 없으니 우리 자신에게 유예기간을 더 주자는 의미로 올해에도 버는 족족 다 쓰기로 했다. 콘서트도 더 많이 가고, 맛있는 음식도 더 많이 먹고, 배우고 싶은 것에도 돈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돈을 아껴서 1년 모은다고 얼마나 더 모으겠나. 차도 필요 없고 아기를 낳을 계획도 없으니 큰돈 들 일이 없다. 텅 빈 통장에 대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겠다. 가끔은 통장을 보면서 기가 막힐 때도 있지만 둘이 “우리 재미있게 살고 있잖아” 하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저축은 2012년부터 시작이다.

“산수 학습지를 받아보겠다.”한동원 영화평론가

esc 지면에 3년6개월이 넘게 ‘한동원의 적정관람료’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영화 관람료인 7천원을 기준으로 인상 요인과 인하 요인을 종합해 그 영화의 적절한 관람료를 산출하는 칼럼인데, 종종 덧셈과 뺄셈 오류가 생긴다. 어려서부터 극복되지 않는 약점(이라기보다는 치부)인 산수(수학이 아니다)를 올해는 정말 극복해보고 싶다. 수학 학습지 광고에 나오는 계산을 3초 안에 할 수 있다면, 그걸 해낸다면 기적이 아닐까 한다. 단순한 산수 계산을 반복하는 학습지는 치매 예방에도 좋을 것 같다. 화투로 치는 ‘고도리’보다 더 좋지 않을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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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를 따지 않겠다.”정현철 전국손해보험노조 상근자

30대 중반이 넘었지만 운전면허가 없다. 주변에서 아직까지 운전면허가 없는 걸 이상하게 본다. 직장 동료와 가족, 친구들 모두 왜 운전면허를 따지 않느냐고 자주 묻는다.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압박도 있다. 그런 압박에도 지금까지 운전면허 없이 잘 살아왔고 올해도 나는 운전면허를 따지 않을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이렇게 차가 많고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이 많은데 나까지 그 행렬에 동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운전면허가 없어서 자동차에 대한 욕심도 없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나로 인해 자동차 매연이 아주 조금만 줄어도 숨쉬기가 편해질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별 이유를 다 댄다고 한다.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해본 적은 있다. 여자친구가 항상 나를 태우고 다녔는데 그게 싫었는지 운전면허를 따라고 하더라. 운전면허를 딸 것인가, 헤어질 것인가 고민하다 시험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1차 필기를 합격하고 2차 실기 시험을 보기 전에 헤어졌다. 여자친구와도 헤어졌기 때문에 운전면허를 따야 할 동기가 이제 전혀 없다. 앞으로도 운전면허에 대한 압력은 적당히 무시하면서 웬만하면 운전면허 없이 평생을 살아보겠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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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기자들은…
영춘권 고수는 탄생하는가

매주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들에게 정신적 회춘은 필수다. 무력하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는 좋은 기사를 쓸 수 없다. 기자들에게도 물었다. “2011년 어떤 다짐으로 살아내려 하지?”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겠다.”(안인용 기자)
기자가 된 지도 꽉 채워 7년을 넘겼고, 나이도 서른을 넘겼다. 점차 이름 대신 ‘기자님’ ‘선배’ ‘언니’(가끔은 ‘선생님’ 소리도 듣는다) 등의 부름에 익숙해진다. 이런 부름은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일깨워준다. 어쩐지 쓸쓸해진다. 올해는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지인들에게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겠다. 어릴 때 “○○야, 놀자!” 그랬던 것처럼.

“술자리에서 제3의 길을 가겠다.”(오승훈 기자)
나는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의 소유자다. 술자리에 갈 때마다 아내에게 혼나는 신세다. 올해는 반드시 술값이고 뭐고 술 마시다 중간에 도망가는 영악스러움을 보여줄 거다. 그렇다고 바로 집에 가면 서운하니까 다른 건수를 만들어 제3의 길을 가겠다. 한 술자리에 오래 앉아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집에 가는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법으로 미친 듯이 놀겠다.

“유치한 농담을 더 많이 하겠다.”(김기태 기자)
나이가 들수록 말을 아끼고 조심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올해는 정반대로 가보고 싶다. 늘어나는 뱃살만큼이나 말도 같이 무거워지고 늘어지면 사는 게 재미없어지니까. 올해는 쓸데없는 농담과 시시껄렁한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겠다. 구체적인 방법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말을 하면서 모색해보겠다.

“영춘권으로 세계를 정복하겠다.”(최성진 기자)
나야말로 다짐 전문가다. 다짐이라면 하루에 수십 개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추진력인데, 올해는 실현 가능성 떨어지는 허무맹랑한 다짐으로 실패를 맛보기보다 좀더 현실적인 다짐을 하기로 했다. ‘영춘권 완벽 마스터’. 올해 새롭게 다짐한 나의 2011년 계획이다. 영춘권이란 무엇인가. 중화요리의 이름인가, 아니면 중국집 상호인가. 모두 아니다. 영춘권은 중국 무술의 일종으로 짧고 빠른 동작을 특징으로 한다. 영화 시리즈는 내 안에 숨어 있던 ‘고수의 꿈’을 들끓게 했다. 올해는 영춘권 마스터, 이것이 나의 다짐이자 목표다.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구둘래 기자)
벌써 10년 전 받은 부케는 일백번 고쳐죽어 원자 단위로 분해되었겠지. 연락도 없다가 전화가 오면 “너 결혼하냐” “애 돌 됐어?”가 된다. 좀 밉상이다. 한때는 ‘위장결혼’도 생각했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신 ‘이 없으면 잇몸’ 전략으로 가기로 했다. 2009년 말 결혼식 안 가기를 결심한 것이다. 밉상 전화에 “나 결혼식 안 가”(고현정 “나 그런 거 몰라”풍)라고 말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보고 싶은 결혼식도 못 가게 되었다. 어쨌든 난 원리주의자·원칙주의자니까, 올해도 결혼식·돌잔치 안 가기는 계속된다.

“자식이 아닌 부부를 위한 삶을 살겠다.”(곽정수 기자)
고등학교 3학년인 아이와 1년을 고되게 씨름했다. 올해는 자식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나의 인생, 우리 부부의 인생을 즐기자고 다짐한다. 지난 토요일 저녁 집에 있는 아이에게 “엄마·아빠, 영화 보고 올게”라고 당당히 말한 다음 영화관에 가서 를 봤다. 영화는 그냥 그랬지만, 2011년은 부부만을 위한 해로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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