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다짐의 유통기한은 3일이다. 1월1일, 새해 보신각 종에 맞춰 주먹을 불끈 쥐며 ‘올해는 이렇게 알차게 살아내고 말겠다’고 굳은 결심을 한다. 1월2일,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해보지만 쉽지 않다. 1월3일, 1년은 365일이나 되니까 천천히 길게 보면서 실천하리라고 스스로를 달래본다. 1월4일, 그 전년도 12월31일과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 2010년에도 그랬고, 2009년에도 그랬고, 되짚어보면 1999년에도 그랬다. 그래서 모든 결심의 연관검색어는 ‘작심삼일’이다.
다짐의 유통기한이 3일인 이유는?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새해가 시작되면 다짐을 할까?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1년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인 연말과 연초에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는데 그 결과물이 다짐이 된다”고 설명한다. 다짐을 하게 되는 심리적 과정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다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크게 내적인 동기와 외부적 자극, 두 가지다. 황 교수는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내적인 동기로 인해 다짐을 하게 되면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외부적 자극 등으로 인해 결심하고 다짐하면 작심삼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할 때 그 다짐이 체중이 늘어 실생활에서 움직이기 불편한 데에서 시작했다면 충분히 운동으로 이어진다. 반면 ‘연예인 누구와 같은 몸매를 만들겠다’는 외부적인 이유로는 운동에 대한 다짐을 현실에서 이어가기 힘들다. ‘외국어 공부’나 ‘독서’ ‘리더십’ 등 자기계발서식 다짐 역시 비슷한 이유로 실패한다. 매년 실패하기만 하는 다짐을 그 다음 해에 또 반복하는 것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황 교수는 “외적 동기로 시작된 다짐은 실패한다고 해도 별다른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며 “자기 합리화로 능숙하게 넘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토록 약해빠진 다짐은 연말과 연초에 언제나 잘 팔리는 상품이다. 이맘때가 되면 ‘새해 계획 세우는 법’이나 ‘다짐 이뤄내는 법’ 등을 담은 10계명식 주문을 담은 기사나 글이 쏟아진다. 금연과 다이어트 등의 다짐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남녀 새해 다짐 1순위’다. 모두가 하기 때문에 해야 될 것 같은 대중적인 다짐은 대중심리를 타고 이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상품 판매로 이어진다.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액세서리와 운동기구, 전자담배 등 금연 도구는 이때가 되면 기획상품으로 전시된다. 별다른 새해 목표가 없다가도 이런 광고를 보면 귀가 솔깃해지고, 1월1일부터 시작되는 ‘신년 레이스’에서 자신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에 주문서를 작성하는 마법을 경험하곤 한다.
내 삶에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들 필요하다고 하니까 떠밀리듯 다짐을 하고, 또 아니나 다를까 실패를 거듭할 바에는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이민희씨는 “연초가 되면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만 실천하는 기쁨을 누려본 기억은 별로 없다”며 “차라리 계획 세우기를 멈추고 지금 유지되는 삶에 대한 확신을 고수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오늘을 내주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무심 365일’을 작심해보자
2011년을 ‘아무것도 다짐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작심삼일’이 아닌 ‘무심삼백육십오일’이야말로 현재의 삶을 가장 충실히 사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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