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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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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대기업의 상생 겉핥기



정부는 법적 장치 마련에 소극적이면서 ‘자율’만 강조하고, 대기업은 동반성장 모양새만 취할 뿐
등록 2010-12-22 11:30 수정 2020-05-03 04:26

지난 12월13일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했다. 동반성장위원회에는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조준호 LG 대표이사 등 대기업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CEO) 9명과 이도희 디지캡 대표, 서병문 비엠금속 대표 등 중소기업 대표 9명, 대학교수와 전문가 6명이 포함됐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역할은 △산업계의 동반성장 분위기 확산 △주요 기업별 동반성장지수 산정·공표 △중소기업 적합 업종 및 품목 검토 △동반성장 성공모델 발굴 △대·중소기업 간 갈등요인 발굴을 통한 합의 도출 및 소통 등이다.

예산도 직원도 없는 동반성장위원회

이명박 정부는 상생을 강조했지만, 제대로 진척된 내용은 별로 없다. 지난 12월13일 동반성장위원회 출범식에서 정운찬 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

이명박 정부는 상생을 강조했지만, 제대로 진척된 내용은 별로 없다. 지난 12월13일 동반성장위원회 출범식에서 정운찬 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

이명박 대통령은 동반성장위원회의 설립 배경에 대해 지난 12월15일 지식경제부·중소기업청 새해 업무보고 자리에서 “정부가 동반성장에 간섭하면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스스로 하도록 해도 한계가 있다”며 “그래서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민간위원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한 지 일주일이 다 돼가지만 12월17일 현재까지 예산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당초 지식경제부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대기업이 25억~65억원씩 부담해 조성한 기금 215억원을 쓰려고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에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전경련은 이를 거절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그 기금은 중소기업협력센터 사업을 위해 마련된 것이어서 정부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위원회 사무국 직원도 없다. 위원회는 전경련,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로부터 직원들을 파견받아 꾸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한 명도 파견이 되지 않았다. 위원회의 발족은 지난 9월 공표됐다.

벌써부터 동반성장위원회의 성공 여부에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현재는 주도권을 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관련 정책의 집행은 각 부처에서 하게 되는데 그것에까지 영향력을 미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사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강조된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실행된 것이 별로 없다. 최근 롯데마트 치킨, 이마트 피자에서 불거진 대형 유통업체의 상생 파괴 문제를 정부는 2009년부터 제기해왔다. 지식경제부는 지난해 1월30일 ‘2009년을 그린(Green) 유통 원년의 해로’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온실가스 감축 인프라 구축, 글로벌 유통기업 육성, 유통채널 다양화 등과 함께 유통산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구조 해소라는 목표를 밝혔다. 지식경제부는 유통산업의 대형화·기업화에 따른 경쟁력 강화는 기존 생계형 중소 유통업의 침체와 상호 갈등을 초래한다고 보고, 사회적 갈등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대·중소 유통 상생지수’를 개발하고 평가 결과를 주기적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더불어 대·중소 유통업체 간 분쟁 해결을 위한 ‘유통분쟁 조정위원회’ 운영 활성화,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유통-제조 상생지수’ 개발 및 발표 등 구체적인 계획을 2009~2010년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중소 유통업체 상생을 위한 정책 가운데 실행된 것은 아직까지 없다.

정부의 부당한 간섭

이뿐만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 기회를 빼앗는 대기업의 내부거래를 단속한다고 올해 초 밝힌 바 있다. 정호열 공정위원장은 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강연에서 “대기업의 계열사 몰아주기에 대해 실태 조사에 나서겠다”며 “심사 기준을 개정해 물량 몰아주기의 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8월 현장조사를 중단했다. 그리고 조사한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발표가 없었다.

지난 11월17일 사퇴한 이민화 전 기업호민관도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 의지에 의구심을 품는다. 정부는 2009년 7월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부와 중소기업 간 가교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 기업호민관을 신설했다. 초대 호민관으로 1세대 벤처기업인인 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를 선임했다. 하지만 이 전 호민관은 임기 3년은커녕 2년도 안 되는 1년 4개월 만에 사퇴했다. 이민화 전 호민관은 사퇴 배경으로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대·중소기업 간 거래 관행을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평가모형(‘호민인덱스’) 개발에 착수했지만, 중소기업청 파견 직원들의 거부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또 납품단가 연동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중소기업 단체에 대기업과의 납품단가 단체협상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정부는 중소기업의 담합을 이유로 반대했다.

이처럼 동반성장에 대해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여온 정부는 롯데마트 치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2월9일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은 트위터에 “튀김닭의 원가가 6200원인 점을 감안하면 롯데마트가 마리당 1200원 손해 보고 판매하는 건데, 대기업인 롯데마트가 매일 600만원씩 손해 보면서 닭 5천 마리 팔려고 영세업자 3만여 명의 원성을 사는 걸까”라고 올렸다. 또 “혹시 ‘통큰치킨’은 구매자를 마트로 끌어들여 다른 물품을 사게 하려는 ‘통큰 전략’은 아닐까”라고 꼬집었다. 이에 롯데마트 노병용 사장은 이날 정 수석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물가 안정에 기여하고자 했을 뿐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에 역행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당장 철회할 경우에 발생할 대(對)소비자 부담과 기타 부작용이 있고 해서 시간을 주면 잘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정반대 의견을 냈다. 이 대통령은 12월15일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치킨업계) 상권 보호도 있지만 소비자가 싸게 먹는 것도 중요하다. 나도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다음날 “이 대통령의 발언은 영세 상인 보호와 소비자 선택권 모두를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비자 선택권을 강조한 발언은 평소 이 대통령의 시장중심적 관점을 보여준다고 해석될 수 있다. 중소상인 보호를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이나 상생법 개정 등 법적 장치 마련에 소극적인 반면, 대기업의 상생 노력과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 등 자발적인 노력을 강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을 한다”며 소비자 선택권을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평소 이 대통령의 시장중심적 관점을 보여준다고 해석될 수 있다.

상생은 경영전략이어야 한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박사는 “최근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대·중소기업 상생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업들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며 “포스코 홈페이지만 들여다봐도 상생은 경영전략 차원이 아니라 사회공헌 메뉴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의 의지가 구체적인 제도를 통해 나타나야 하지만 제도도 미흡하고, 있어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아 대기업 역시 잠시 따라하는 모양새만 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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