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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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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가지 얼굴을 가진 변검 외교

중국의 영토분쟁사… 60년대까지 무력 불사하다

개혁·개방과 함께 대화로 전환, 앞으로는 각국에 차별적인 정책 보일 듯
등록 2010-10-07 17:34 수정 2020-05-03 04:26
수많은 이웃나라와 접한 중국은 오랫동안 영토분쟁을 겪어왔다. 중국이 베트남, 대만, 필리핀 등과 갈등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 난사군도에 지난 4월18일 모터보트들이 정박해 있다.

수많은 이웃나라와 접한 중국은 오랫동안 영토분쟁을 겪어왔다. 중국이 베트남, 대만, 필리핀 등과 갈등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 난사군도에 지난 4월18일 모터보트들이 정박해 있다.

댜오위다오, 일본 이름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2010년 중국과 일본의 갈등 국면에서 일단은 일본이 머리를 숙였다. 진상이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중국이 희토류(주로 전자제품에 쓰이는 희귀한 광물의 한 종류) 금속의 대일 수출 금지라는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가 놀란 눈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는 까닭은 중국이 이제 본격적으로 ‘실력’을 과시하는 단계에 들어선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대화를 통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해왔다. 일본을 굴복시킨 중국의 이번 ‘실력 행사’는 이런 원칙에 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읽어야 하는가. 영토분쟁에 대한 최근 중국의 태도 변화를 통해 이번 ‘실력 행사’의 의미를 짚어보자.

2만2천㎞ 국경에 인접국만 14개

중국은 세계에서 이웃나라가 가장 많은 나라다. 2만2천㎞에 이르는 육지의 국경선은 북한·러시아·몽골·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네팔·부탄·버마·라오스·베트남 등 14개 국가와 이마를 마주 대고 있다. 또 1만8천㎞에 이르는 해안선은 일본·남북한·베트남·필리핀 등 나라의 해역과 맞닿아 있다.

이렇게 이웃나라 복이 많은 중국이 영토 확정 문제로 분쟁과 골머리를 앓아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중국은 주변 20여 개 이웃나라들과 거의 예외 없이 국경분쟁을 치렀거나 아직도 분쟁을 진행하고 있다. 1960년대까지 중국은 러시아, 인도 등과 무력 충돌을 불사할 정도로 격렬한 영토분쟁을 치렀다. 그러나 1978년 개혁·개방 이후, 특히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부터는 평화적 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을 원칙으로 천명해왔다. 이웃나라와 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무력분쟁을 벌이면서 외국자본의 투자를 받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영토 문제를 평화적 협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중국의 노력은 21세기 들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2005년 러시아와 국경분쟁을 완전히 청산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소련 해체 이후 국경선 확정을 위한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두 나라는 2004년 말 아무르강 유역을 제외한 4만3천㎞의 국경선을 모두 확정지었다. 마지막 남은 분쟁지역인 아무르강 유역의 타라바로프섬(중국명 인룽다오)과 우수리스크섬(중국명 헤이샤즈다오)의 영유권 문제는 두 나라가 한 걸음씩 물러섬으로써 극적으로 해결되었다. 러시아는 자국이 실제로 지배하고 있던 타라바로프섬을 중국에 넘기고 우수리스크섬을 반분해 절반을 중국에 넘기는 등의 양보를 통해 해묵은 국경분쟁을 청산했다.

러시아와 국경 문제를 청산함으로써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오랜 세월 얼음장 같은 관계를 유지해온 인도와도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섰다. 2005년 4월11일 인도를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와 만나 국경분쟁을 “현상 그대로 덮어두고” 경제 분야의 협력을 통해 공동의 번영을 꾀하자는 데 합의했다. 두 총리는 공동성명에서 “국경 문제에서 두 나라의 이견이 쌍방 관계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인도가 문제 삼아온 중국의 카슈미르 점령지역(3만8천㎢)과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해온 인도의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9만㎢)은 “전쟁이 아닌 평화적 대화의 수단으로”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현상을 유지하기로 했다.

공동 개발 방식, 일본·동남아에는 안 통해

러시아·인도와 영토분쟁 문제를 일단 해결한 중국은 이 원칙을 다국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남사군도와 서사군도, 일본과 첨예한 분쟁을 빚는 댜오위다오 등에도 적용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원리는 간단하다. 일단 영유권 논쟁은 덮어두고 현상을 유지하면서 분쟁지역의 공동 개발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는 동중국해의 해저 유전과 가스전의 공동 개발을 제안했고, 남사군도와 서사군도 유역에서는 베트남, 필리핀 등 지역 국가들과 공동으로 유전과 가스전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과 동남아 국가들을 향한 제안은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분쟁을 빚고 있는 댜오위다오와 암초섬 오키노도리에 일본 주민이 본적지를 등록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 사랑니 쑤시듯 지속적으로 중국의 신경을 건드려왔다.

중국의 시각에서 볼 때 남중국해에서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동서 약 900㎞, 남북 약 1800㎞에 이르는 남중국해에는 동사·서사·중사·남사군도 등 크게 네 무리의 섬 200여 개가 흩어져 있다. 이 가운데 50여 개의 섬이 영유권 분쟁에 휘말려 있다. 50여 개의 섬 가운데 중국이 실제로 지배하는 섬은 9개(대만 1개 포함)이고, 나머지 42개는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이 지배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움직임이 활발한 국가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1993년부터 남사군도 24개 섬과 암초섬에 600명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2002년에는 군대 주둔 지역을 27개 섬으로 확대하고 병사도 2020명으로 증가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2개의 섬에 각각 비행장을 건설했고, 2009년에는 이 지역에 해병대를 증파했다.

남중국해의 섬을 둘러싼 각국의 각축이 치열한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이 지역의 해저에 방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묻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쪽 전문가들은 이곳의 석유 매장량이 177억t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쿠웨이트의 석유 매장량을 능가하는 양이다. 둘째는 이 지역이 서태평양 해상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국경분쟁 원리는 간단하다.

일단 영유권 논쟁은 덮어두고 현상을 유지하면서

분쟁지역의 공동 개발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지역 분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중국은 일본, 한국,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 각각 차별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영토분쟁뿐 아니라 역사 문제 등 오랜 숙원이 맺혀 있는 일본에는 사안에 따라 강경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에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기가 쉽지는 않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실력 행사’를 통해 중국의 국익을 챙기기 시작하면, 아세안으로 뭉쳐 있는 동남아 국가들의 반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번 ‘실력 행사’ 이후 이미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크게 높아졌으며, 미국과 아세안은 새로운 밀월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발적이지 않은 ‘실력 행사’ 더 잦아질 듯

일본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 일변도로만 가기는 어렵다. 그 반발로 일본 내부에서 평화헌법 개정, 군비 강화, 미-일 동맹 강화 등의 움직임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번 ‘실력 행사’가 우발적으로 나온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원, 현대국제관계연구원, 국무원 발전연구중심 등 방대한 두뇌집단을 보유한 중국 지도부는 이들의 정책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카드를 준비하고 실행한다. 중국의 국력 증대에 따라 이런 ‘실력 행사’는 앞으로 더 잦아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 반작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으로서는 당분간 여전히 ‘도광양회’(韜光養晦·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그늘에서 실력을 키움)의 기조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비대해지는 근육질의 이웃을 두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중국이나 미국에 몰입하는 외교보다는 몽골, 중앙아시아, 동남아 등 주변 국가들과 관계를 더 밀접하게 만드는 외교 다각화의 노력이 절실할 것이다.

이상수 전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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