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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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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달을 멈추면 넘어지는 자전거

해외에서 수혈해 자국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급박함,

미국과 인도에는 ‘봉쇄선’을 뚫는 움직임으로 보여
등록 2010-10-07 16:52 수정 2020-05-03 04:26
중국은 전략자원을 해외에 의존해, 자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08년 7월 카자흐스탄 알마티 인근에서 카스피해 가스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수송하는 파이프라인 연결공사를 하고 있다.REUTERS/ SHAMIL ZHUMATOV

중국은 전략자원을 해외에 의존해, 자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08년 7월 카자흐스탄 알마티 인근에서 카스피해 가스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수송하는 파이프라인 연결공사를 하고 있다.REUTERS/ SHAMIL ZHUMATOV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이래 중국 외교의 첫번째 레토릭이자 강조점은 ‘패권주의 반대’였다. 패권 혹은 패권주의는 중국 외교 용어에서 금기어였다. 실제로도 중국은 미국과 소련의 패권 추구 대상이던 ‘제3세계’라는 개념을 만들어, 제3세계 국가들을 묶어내며 미국과 소련의 패권주의에 맞서왔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오래전부터 유포되던 ‘중국위협론’을 넘어, 새로운 ‘패권국가’ 혹은 미국과의 패권경쟁 국가라는 말을 듣고 있다. 알다시피 시작은 천안함 사건이었다. 천안함 사건에 이은 한·미 양국의 서해 군사훈련에 대한 맞대응 군사훈련과 강경한 외교 대응에서 시작된 중국의 위력 과시는 최근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사건에서 일본을 백기투항시키며 절정에 오르고 있다.

중국과 미국, 해외 추동의 다른 점

중국의 이런 모습은 과거 미국과는 사뭇 다른 이유와 동력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은 자국 내의 넘쳐나는 잉여생산력과 힘을 해외로 투사해, 힘을 더 불리고 전체 파이를 키웠다. 반면 중국은 경제와 체제 유지를 위해 해외로부터 수혈을 받는 양상이다. 미국의 넘쳐나는 힘이 해외 추동의 동력이었다면, 중국은 체제 유지의 절박성이 해외 추동의 이유다. 20세 초 미국은 전략자원이던 석유·철광·석탄 등을 국내에서 조달하고도 남아 해외로 수출했다. 반면 중국은 석유 등 전략자원을 해외에 의지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체제 전파와 영향력을 위해서였다면, 중국은 해외에서 영향력 확대를 통한 자국 체제 유지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 달리는 자전거 형세다. 페달을 계속 밟지 않으면 쓰러진다. 세계 2위의 경제력에 도달했다고는 하나, 세계 인구의 25%인 13억 인구의 절반이 최저생계비에 걸려 있는 농민이고, 매년 대학 졸업자 수백만 명이 직업을 찾아헤매고 있다. 이런 사회적 압력이 고성장시대 종언 뒤 어떤 양상을 보일지는 알 수 없다. 자전거의 페달을 계속 돌리기 위해 중국이 해외로 바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와 동력이 어떻든 간에 중국의 영향력 확대 움직임은 패권국가 미국과 주변 국가에는 자국 이익과의 충돌과 영향력 침식으로 다가가고 있다. 특히 해외로 향한 중국의 발걸음은 마치 명나라 시대 정화 함대의 대원정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화의 함대가 남중국해를 돌아 인도양 연안국가들을 훑으며 동아프리카까지 이른 여로가 지금 중국이 추구하는 해외 영향력 확대의 지도다. 중국은 서북쪽 유라시아 대륙 내륙국가 쪽으로도 외교력을 투사하는 한편 동북쪽 러시아 연해주 쪽으로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중국의 원유 수요는 두 배로 늘었다. 향후 15년 내에 다시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0년께면 중국의 원유 수입은 하루 73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의 하루 예상 생산량의 절반이다. 중국으로 향하는 원유와 원유제품의 85%가 인도양을 거쳐 말라카 해협(말레이 반도 남부와 수마트라 섬 사이에 있는 해협)을 통과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로 올라간다.

말라카를 둘러싼 ‘진주 목걸이’ 전략

중국의 사활적 시레인(해상교통로)인 인도양 해안 지역은 다른 국가들에도 사활이 걸려 있다. 또한 종교적·이념적·민족적 분쟁으로 점철된 곳이다. 세계 원유제품 물동량의 70% 이상이 인도양을 거친다. 원유 교역량의 40%가 걸프 지역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며, 세계 무역 물동량의 40%가 말라카 해협을 빠져나간다. 종교·민족 분쟁과 이라크·파키스탄·버마 등 취약한 국가들의 미래는 중국과 기존 강대국들에 모두 위협이자 기회다. 인도양이 ‘21세기의 중심 무대’라고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과 함께 떠오르는 21세기 강대국 인도의 존재도 중국에는 큰 경쟁자가 될 것이다. 1950~60년대 영토분쟁을 겪은 두 나라는 외형적으로는 관계 개선을 많이 이루었으나, 잠재한 경쟁은 커지고 있다. 인도 역시 중국과 비슷한 동기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중국·일본에 이어 곧 세계 4위의 경제력 국가로 등극할 것이 예상되는 인도 역시 수요 원유의 6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30년이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인구대국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인도는 인도양 연안국가들을 향한 전면적인 영향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인도는 인도양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155대의 전함에 덧붙여 3대의 핵잠수함과 항공모함을 건조 중이다. 인도의 해군력은 세계 최강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은 지금 중국이

‘제일 섬의 고리’ 밖으로 나오려 한다고 보고,

중국은 미국이 자신들을 다시

이 선 안에 가두려 한다고 본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이미 ‘말라카 딜레마’를 언급한 바 있다. 중국은 말라카 해협을 우회해 중국 본토로 에너지와 자원을 연결하는 통로 확보를 통해 안정적 자원 공급선 확보와 함께 관련 국가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중국은 인도양을 대상으로 한 ‘진주 목걸이’ 전략을 진행 중이다. 인도양 연안국가에 항구와 기지를 개발하는 한편 이를 교두보로 중국 본토로 향하는 도로를 개설하자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 파키스탄 과다르에 해군기지를 건설 중이다. 과다르에서 동쪽으로 120㎞ 떨어진 파스니까지 고속도로를 깔아 본토와 이을 계획이다. 스리랑카의 남쪽 연안에는 연료기지, 방글라데시 치타공에는 대규모 해군력과 상선들이 접안할 수 있는 컨테이너 기지를 계획 중이다. 즉 인도 대륙을 둘러싸는 목걸이 같은 형국이다. 벵골만의 섬 인근에는 초계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버마에서는 상업·해군기지, 도로, 수로 및 파이프라인을 건설 중이다. 즉 벵골만에서 중국 남부의 윈난 지역으로 연결하는 시설들이다. 중국의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는 말레이반도 북쪽 타이 영토인 끄라 지협에 운하를 건설하는 것이다. 즉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인도양과 중국의 태평양 해안을 직접 연결하자는 것이다.

중국이 주변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의 난사군도(스프라틀리제도)와 동중국해의 댜오위다오 역시 중국의 사활적 시레인이자 방위선이다. 영유권 분쟁의 이유가 그 지역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풍부한 자원도 있지만, 시레인과 방위선 확보가 더 먼저다.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이 한국과 서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고,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에 개입하는 것 등은 중국에는 냉전시대의 봉쇄정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패권 추구인가, 생존 추구인가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존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은 한반도·일본-오키나와-대만-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로 연결되는 ‘섬의 고리’(island chains) 안에 중국을 가두고 영향력 확대를 차단해야 한다는 전략을 주창했다. 동북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어지는 섬의 고리는 ‘제일 섬의 고리’(first island chains). 미국에는 중국의 방위선이지만 중국엔 미국이 봉쇄선이다. 미국은 지금 중국이 이 제일 섬의 고리 밖으로 나오려 한다고 보고, 중국은 미국이 자신들을 다시 이 선 안에 가두려 한다고 보는 것이다. 서해에서 남중국해까지 최근 격렬히 터져나온 맞대응 군사훈련과 영유권 분쟁은 이런 양국의 시각과 현실적 힘의 충돌의 발현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남쪽과 동쪽 연안,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인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의 북쪽인 시베리아와 연해주, 그리고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는 중국이 자국의 체제 유지를 위해 내몰려 나가는 지역이다. 하지만 미국 등 기존 강대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확장, 즉 ‘대 중화’를 막기 위해 중국을 에워싸려는 봉쇄선이다. 최근 중국을 둘러싼 전방위적 파열음이 중국의 패권 추구로 귀결될 수도 있지만, 중국에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움직임이다.

정의길 한겨레 오피니언넷부문 편집장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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