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운동권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았다. 그는 상식의 언어로 간접고용의 부당함을 역설했다. 그로 말미암아 한국 노동운동이 비정규직의 고통까지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을까. 지난 9월1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 비정규직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올해는 전태일 열사 분신 40주기다. 전태일은 그 자신이 어려운 처지였음에도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공을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끝내 스스로 불살랐다. 민주노총도 초심으로, 전태일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시대에 가장 고통받는 비정규직, 특히 사내 하청 비정규직과 함께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전태일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전태일의 말은 오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인간 대접 받고 싶다”는 것이다. 나 역시 대공장 정규직 출신이지만, 그들의 말을 가슴 아프게 듣고 있다.
-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반대는 없나.
한때 정규직 노조원들이 비정규직을 고용 안전망으로 생각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노총만큼 비정규직 문제에 사활을 걸고 달려든 조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노조원들이) 나 혼자라도 살아야겠다는 의식이 확산된 측면이 있지만, 최근에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정규직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자각이 커지고 있다.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조업 전반에 걸쳐 파견 노동자가 확대되고, 그렇게 되면 기왕의 정규직 노동자도 순식간에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지도부가 나서서 정규직을 설득할 것이다. 이미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해 불법 파견을 막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 중소 사업장에도 하청 노동자가 있다.
솔직히 참 어려운 문제다. 전국 공단마다 민주노총이 체불임금 상담을 하고 있다. 공단 노동자들이 많이 고마워한다. 그런데 그들에겐 싸울 대상이 없다. 사업주에게 (임금) 지급 능력이 없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안다. 회사 개념도 분명치 않다. 매일 도산하는 기업이 부지기수다. 사업이 망하면 사장이 목매는 형편이다. 사내 하청을 맡은 파견업체 사장이 민주노총에 상담하러 온다. 재벌들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을 버는데, 중소기업은 도산하고 노동자는 임금을 못 받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공정 사회’로 가고 싶다면,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기업 간 원·하청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 간접고용 규모와 실태를 전면 조사할 계획은 없나.
금속노조가 이미 노동부에 공동 실태 조사를 제안했다. 그런데 노동부가 공동 조사를 거부했다. 현재 노동부는 ‘타임오프제’(노조 전임자가 근로를 면제받는 시간을 제한하는 제도) 위반 사업장을 적발하는 일에 특별근로감독관을 집중시키고 있다. 노조 전임자의 발목을 잡는 데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면서, 사내 하청 문제에는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게 과연 노동부의 올바른 자세인가. 불법 사내 하청에 대한 진정을 제기하면, 노동부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오라는 태도다. 해고를 막지 않고, 판결 이후를 보자는 식이다. 고의성이 다분한 정책 실패에 대해 노동부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 불법 파견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관련법을 고쳐 파견 노동을 더 확산시킨다면.대통령이 공정 사회를 말하는데, 가장 불공정한 곳이 노동시장이다. 타임오프제를 통해 노조를 무력화한 이명박 정부가 기존 제도를 개악해 모든 업종에 파견 노동을 확대하는 전면적인 노동유연화를 꾀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실제로 노동계를 배제한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이런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자살자가 브라질의 살인 피해자보다 더 많다.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노동유연화로 안전망이 사라진 사람들이 절망적으로 죽음을 택하고 있다. 노동유연화는 파견법 도입에서 시작됐다. 이를 더 확대하면 국민적 저항을 부를 것이고, 민주노총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결사 항전할 수밖에 없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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