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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동에게 더 불편하게 살라는 정부



장애 등급 재심사 의무화하며 복지 예산 절감 움직임…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눈물진 차별 철폐 삭발식
등록 2010-09-08 10:35 수정 2020-05-03 04:26
삭발을 마친 최준기씨가 발달장애 2급인 아들 원우군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잡아주고 있다. 사진 한겨레 류우종 기자

삭발을 마친 최준기씨가 발달장애 2급인 아들 원우군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잡아주고 있다. 사진 한겨레 류우종 기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던 8월의 마지막 날 오후 2시, 서울 보신각 앞에 500여 명의 장애아동 부모들이 모였다. 무대 위에 오른 최준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천지회장은 체크무늬 모자를 벗어 손으로 머리를 한 번 쓸어내렸다. 이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소속 49명이 삭발을 했다. 최씨는 무대 위에 정렬된 의자의 뒷줄 맨 오른쪽에 앉아 지긋이 눈을 감았다.

“아빠”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있는 아들 원우(17·발달장애 2급)군이 무대 바로 앞에 서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고 있었다. 최씨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얼른 하얀 미용시트 사이로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곧 ‘바리캉’이 돌았다. 무대 아래 아들은 아빠가 걱정돼서 빙빙 돌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계속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삭발식을 하는 순간에도 아빠는 아들을 떼어놓지 못했다.

최씨는 “내 문제 때문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짓”이라고 했다. “자식이 죽고 사는 문제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미 지난 8월 중순부터 14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참이다. 단식에 이어 삭발에까지 나선 이들의 구호는 “더 이상 못 참겠다, 장애인 차별 철폐하라”다. 부모들의 삭발은 장애 아동의 권리를 무시하는 사회를 향한 몸부림이다.

정부 지원 원하면 돈 들여 심사 받아야

최씨는 아들 덕에 미소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렇지 못했다. 최씨의 바로 앞자리에 앉은 박정선(43)씨는 바리캉이 돌기 시작하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광주에 사는 그는 삭발한다는 이야기를 시댁에 꺼내지도 못했다. 다가오는 추석에는 가발을 쓰고 시댁에 가서 차례상을 준비할 생각이다.

생후 29개월이 돼서야 둘째아들인 주영(12)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02년이었다. 전남 광양으로 이사를 한 뒤 새집이 낯설었던 주영이는 새벽마다 잠에서 깨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 한 달 넘게 울음이 지속되기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3개월을 다닌 뒤에야 의사가 “아이에게 자폐 성향이 있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이후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전남 순천에서 언어치료, 놀이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운동치료를 한다는 사설 치료실들을 찾았다. 40분에 3만5천원인 언어치료는 한 달에 8회, 1회 10만원인 운동치료는 한 달에 4회를 받는 식이다. 이렇게 한 달에 치료비로만 120만원이 들었다. 200만~300만원을 벌어오는 남편의 봉급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남편은 2004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광양에 작은 영어학원을 차렸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가정은 피폐해졌다.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학원 경영에 매달렸다. 하지만 지방의 소규모 학원은 운영이 힘들었다. 박씨는 홀로 세 아이를 양육했다. 그는 두 살 터울로 낳은 세 명의 아이를 모두 데리고 순천의 치료실에 다녔다. 둘째아이가 치료를 받는 동안 첫째아들과 막내딸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도 장애가 없는 아이에게도 미안한 나날이었다. 결국 남편이 운영하는 학원은 경영난에 문을 닫았다. 빚이 쌓였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매달렸지만 아무리 치료를 해도 주영이는 단어 하나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장애 등급을 받아야 했다. 주영이는 2004년에 자폐성 장애 1급으로 판정받았다. 장애 등급을 받기 위한 종합 검사를 하는 데만 120만원이 들었다. 그나마도 정부에서 지정한 병원을 6개월 동안 매주 한 번씩 나가야만 심사를 완료할 수 있다.

발달장애 1급인 손자를 12년간 키워온 배선이씨는 삭발하는 내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진 한겨레 류우종 기자

발달장애 1급인 손자를 12년간 키워온 배선이씨는 삭발하는 내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진 한겨레 류우종 기자

“거지꼴 돼야 돌봄 서비스 제공하나”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각종 지원을 받으려면 장애인복지법에 규정된 15개 장애 유형 중 하나 이상의 장애로 등록한 뒤 유형에 따라 1~6급의 등급을 받아야 한다. 장애 등급 기준표의 표현은 대부분 ‘현저하게 곤란한지’ ‘어느 정도 도움을 받으면 괜찮은지’ 등으로 모호하다. 하지만 일단 등급이 결정되면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장애 1급만 받을 수 있고 장애인 콜택시, 장애아동 재활치료 지원 등은 2급까지만 받을 수 있다.

정부는 한 술 더 떠 등급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올해부터 보건복지가족부는 장애 등급 재심사를 의무화했다. 활동보조인 서비스 등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중증장애인도 2년에 한 번씩 등급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또한 기존에 지정 병원에서 판정하면 끝나던 절차에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 심사센터의 최종 승인’이란 단계가 추가됐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금까지 장애심사센터의 판정 결과 장애 등급이 하락하는 비율이 40%가량 된다”며 “정부가 등급 조정으로 장애인 복지 예산을 절감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돌봄 서비스도 부모들의 바람에 한참 못 미친다. 24시간 주영이를 돌봐야 하는 박씨는 나머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돌봄 서비스’를 간절히 원한다. 현재 보건복지가족부는 ‘장애아 가족 양육지원사업’을 통해 한 가정당 연 320시간 내에서 ‘돌보미 파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양육자의 질병, 사회활동 등 다양한 사유가 생겼을 때 돌보미가 집에 찾아가 장애아동을 돌보는 서비스다. 하지만 이같은 제도는 모두 ‘도시근로자가구 월평균 소득 100% 이하 가정’에 국한된다. 현재 전국에서 돌봄지원 서비스를 받는 아동은 688명뿐이다. 전체 장애아동의 2% 수준이다. 광주에는 23명뿐이다. 광주 지역 장애아동 2190명의 1%에 불과하다.

박씨는 “장애인 가정이 거지가 되어야만 도와주겠다는 국가의 태도 때문에 너무나 많은 가정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22만원짜리 장애아동 재활치료 지원 서비스도 가구별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기초생활수급권자인 경우만 치료비가 전액 면제된다.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인 차상위 계층은 2만원, 도시근로자가구 월평균 소득 100% 이하 가정은 6만원을 내야 한다. 그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지원받을 수 없다. 고등학교 입학금, 학용품비 등을 지원하는 장애인 자녀 학비 지원 사업의 경우 ‘장애 등급 1~3급 등록 장애인 중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하인 자’만 대상이다. 학비 지원을 받는 이는 장애아동은 전국에 1386명뿐이다. 전체 장애아동의 4% 수준이다.

성인이 된 장애인은 어디로?

박씨의 옆에서 삭발을 한 이는 ‘엄마’가 아닌 ‘할머니’였다. 경남 마산에서 온 배선이(55)씨다. 그는 발달장애 1급인 손자 경환이를 12년째 맡아 키우고 있다. 진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곱게 파마한 머리카락이 바리캉에 툭툭 잘려나갔다. 그는 오래 울었다.

경환이는 배씨의 첫째아들 내외가 8년을 기다려 낳은 아들이었다. 네 번째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고서야 임신이 됐다. 쌍둥이인데 한 아이는 건강하고 한 아이는 장애가 있다고 했다. 이 사실을 홀로 알게 된 배씨의 며느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먼저 나온 여자아이는 체중도 정상이었고 건강했다. 나중에 나온 남자아이는 1.2kg의 미숙아에 발가락도 붙어 있었다. 두 달간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고 여러 번 수술을 받아야 했다.

맞벌이하느라 부부는 도우미를 하루 종일 고용해 경환이를 맡겼다. 보다 못한 할머니가 맡아 키우기로 한 게 벌써 12년째다. 3살이던 경환이는 이제 15살이 됐다. 43살이던 할머니도 55살이 됐다. 할머니는 손자를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한마디라도 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애썼다. 사설 언어치료사를 찾아가고 승마 재활치료, 수영치료, 음악치료를 돌고 돌았다. 언어치료는 40분에 2만8천원, 승마는 10번에 25만원, 수영은 한 달에 25만원이었다. 경환이 치료로만 한 달에 100만원이 넘게 들었다.

현재 경환이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도 돌봄 서비스도 받지 못한다. 조부모와 부모의 수입이 있기 때문이다. 또 재활치료 비용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경남의 ‘도우미뱅크’를 이용하는데, 이 때문에 활동보조 서비스는 아예 받을 수 없다. 중복 지원이 안 돼서다. 이 때문에 할머니가 24시간 손자에게 붙어 있어야 한다.

배씨의 걱정은 “내가 죽으면 경환이를 어쩌냐”다. 현재 경환이는 특수학교인 혜림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다니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과정까지 끝나면 졸업이다. 갈 곳이 없다. 그때가 되면 배씨는 60대가 된다. “주간 보호소나 발달장애인들이 땀흘려 일할 기회를 주는 작업장이 많이 생겨서 경환이가 나 없이도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고 배씨는 말했다.

발달장애란 정신이나 신체적 발달에서 나이만큼 발달하지 않는 지적장애·뇌성마비·자폐증·다운증후군 등을 통칭한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지원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배씨는 “발달장애인이 일반인과 어우러져 살아가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지원체계를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삭발식이 거행되는 무대 아래서 한참을 운 이도 있다. 경남 마산에서 올라온 김운자(48)씨다. 그는 지난 2003년에 이미 한 차례 삭발을 했다. 경상남도의 특수교육 예산 확충을 위해서였다. 그의 둘째딸은 병원 쪽의 실수로 출생 직후 세균에 감염돼 뇌병변 1급, 지적장애 1급 장애인이 됐다. 소송을 내 출산 당시 병원에서 아이가 병균에 감염됐고 이를 알아챈 병원이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두 차례나 넣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승소했지만 아이의 장애를 되돌릴 길은 없었다.

그는 삭발을 하러 집을 나서면서 당시 초등학생이던 그의 첫째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삭발하는 것은 장애가 있는 네 동생 때문이 아니라 장애가 없는 너 때문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 돌보기가 버거워 그동안 네겐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이대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너에게 ‘사랑하는 동생’이 아닌 ‘짐 같은 동생’만을 남겨줄 수밖에 없다. 그걸 막기 위해 엄마가 싸울 것이다.”

‘장애인+아동’ 이중적 소외의 슬픔

부모의 소득이나 장애 등급에 제한받지 않고 장애아동이라면 누구나 재활 치료 지원과 양육자를 위한 정부의 돌보미 파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의 단순한 요구사항이다. 장애인인 동시에 아동이라는 이중적인 ‘약자’를 국가가 보살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장애아동이 국가 복지 정책의 최우선 대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반 아동 중심의 ‘아동복지법’과 성인기 장애인 중심의 ‘장애인복지법’ 사이에서 소외되어 생애주기에 따른 복지적 욕구와 권리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삭발식이 끝난 뒤에도 장애아동 부모들은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함께 준비한 퍼포먼스와 문화공연을 마치고도 서로의 손을 잡고 눈물을 훔치며 오래도록 자리를 지켰다. 8월의 마지막 밤, 그렇게 한 맺힌 장애아동 부모들의 마음이 잘린 머리카락으로 흩날렸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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