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선의 반격’일까?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원관실이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의 부인을 뒷조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조직이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사조직이라는 의심을 더욱 키운 가운데, 이번엔 남 의원이 수사기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남 의원 부인 이아무개씨가 사업관계로 전 동업자와 주고받은 송사에 남 의원이 개입해 ‘외압’을 행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남 의원 부인은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원관실의 불법 사찰이라는 초점을 흐리려는 ‘100% 물타기’다. ‘소송 과정에 남 의원이 압력을 넣었기 때문에 사찰당했다’는 여론으로 불법 사찰을 덮으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찰 의혹 물타기” vs “검찰에 압력 행사”
남 의원 부인은 대학 후배인 이씨와 2002년 8월 보석 디자인·판매 사업 동업을 시작했는데, 1년이 채 안 된 2003년 6월 관계를 정리했다. 남 의원 부인이 17억원가량을 투자했지만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체를 정리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아, 2004년 11월 남 의원 부인이 이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 등으로 고소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건의 민형사 소송이 오갔다.
이런 가운데 지원관실 소속인 김아무개 경위가 2008년 말 남 의원 부인의 전 동업자인 이씨와 당시 서울 강남경찰서 소속 정아무개 경위를 찾아갔다. 정 경위는 2005년 10월 이씨가 회사 경리부장 최아무개씨를 상대로 낸 고소사건을 조사한 경찰이었다. 김 경위는 이씨와 정 경위에게 ‘수사·재판 과정에 외압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이씨는 “그전부터 남 의원 부인과 관련해 여기저기 진정서·탄원서를 계속 냈기 때문에 김 경위가 찾아온 게 이상하지 않았다. 억울하고 힘든 상황을 물어보기에 있는 대로 답했다. 관련된 일체의 서류도 넘겨줬다”고 말했다. 정 경위는 최씨를 수사하다 남 의원 부인까지 ‘인지수사’해 그의 사무실과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체포영장을 신청했다가 검찰에 7차례나 기각당했다. 이 때문에 정 경위는 김 경위에게 “내 사건을 말아먹은 검찰에 문제가 있다. 검찰 쪽에 남 의원과 관련해 알아보라”고 말했다. 이씨가 제기한 대부분의 고소·고발 사건이 무혐의나 무죄로 처리됐는데, 이는 현역 국회의원인 남 의원이 개입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특히 정 경위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객관적 증거를 바탕으로 남 의원 부인을 체포·기소하려는 시점에 (수사 담당자인 내가) 교체됐다. 피해자 이씨는 기소됐고, 남 의원 부인은 무혐의 처리됐다”고 말했다.
남 의원 부인은 이를 강력히 반박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이씨가 최 부장을 고소한 사건을 조사하던 정 경위가 어느 날 나에게 전화를 걸어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왜 밖에서 만나냐고 했더니 ‘철저히, 정의롭게 조사하려고 한다’더라. 강남경찰서 옆 골목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갑자기 ‘이사를 가야 하는데, 경찰이 박봉이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어, 그러세요? 고생하시겠네요’ 하고 넘겼는데, 얼마 뒤 인지수사라며 내게 횡령 혐의를 씌웠다.” 이 말대로라면 정 경위가 간접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남 의원 부인을 무리하게 수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경위는 과의 전화 통화에서 “(남 의원 부인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급했나 보다”라며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 자꾸 (나를) 긁으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 의원 부인 주장의 사실 여부와 관련해선 “검찰에 물어보라”고만 답했다.
수사 과정에서 담당 경찰이 바뀐 이유를 놓고도 정 경위와 남 의원 쪽 설명이 엇갈린다. 애초 이씨에게 고소당한 최 부장이 수사 과정에서 정 경위에게 폭언·폭행을 당했고, 이 때문에 담당 경찰관을 교체해달라고 국가인권위원회와 서울경찰청 등에 진정을 낸 결과라는 게 남 의원 쪽의 주장이다. 최 부장이 2006년 3~4월 낸 진정서를 보면, 정 경위는 최 부장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한 것은 물론, 사건과 무관한 최 부장의 부인까지 불러 조사한 것으로 돼 있다. 이와 관련해 정 경위는 기자에게 “(답변을 듣고 싶으면) 공식적인 절차를 밟으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이씨와 정 경위는 지원관실 소속 김 경위가 자신들과 접촉한 이유가 남 의원을 뒷조사하려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셈이다. 김 경위도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이를 시인했다. 이는 명백히 지원관실의 업무 범위를 넘은 것이다. 지원관실이 감찰할 수 있는 사람은 행정부 소속 공무원으로, 국회의원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더구나 국회의원 부인은 엄연한 민간인이다.
‘어떤 세력’이 배후에 있다?
남 의원 쪽은 이들의 접촉에 배후가 있다고 강하게 의심한다. 남 의원은 “2008년 3월 ‘남경필 손 좀 봐야겠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그해 여름 한 옐로페이퍼에 아내가 겪는 송사와 관련해 악의적인 보도가 나왔다. 보도금지가처분신청에서 우리가 이겼는데도 그랬다. 아내와 관련된 이야기는 어떤 경로인진 몰라도 청와대 민정수석실까지 보고된 것 같다. 지원관실이 생기고 김 경위가 두 사람을 만난 건 그 뒤의 일이지만, 그전부터 ‘어떤 세력’에 위협이 될 만한 존재를 조사하고 흠집내기를 시도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한다. 그의 부인은 “2008년 여름 나와 관련된 ‘파일’이 상당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남 의원은 그해 총선을 앞두고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정권 핵심 세력의 ‘표적’이 됐다는 게 정치권의 주된 해석이다.
이들이 의심하는 ‘배후’는 과연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실체가 드러날까? 남 의원을 뒷조사한 지원관실 김 경위는 “김충곤 지원관실 점검1팀장의 지시로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됐다. 김 팀장의 이인규 전 지원관의 지시를 받고 그에게 보고한다”고 한 언론에 밝혔다. 그가 여야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50여 명을 조사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원관실이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아무나’ 사찰했다면, 이를 관리·감독한 사람이 이인규 전 지원관 혼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시간은 적고 의혹은 많고검찰은 8월6일 오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 전 비서관은 박영준 국무차장의 ‘포항 인맥’으로, 지원관실과 ‘윗선’의 관계를 밝혀줄 핵심 고리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이인규 전 지원관도 그가 ‘심은’ 사람이다. 이영호 전 비서관은 △지원관실 설치와 인력 배치 주도 △지원관실 워크숍 참석 △지원관실 업무 지시 및 결과 보고 청취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아직 이 전 비서관을 구속할 만한 뚜렷한 증거물을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 “진술만으로 위로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김홍일 대검 중수부장)는 것이다.
이는 구속된 이인규 전 지원관이 자신의 혐의는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다른 이와 관련된 내용엔 전혀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원관실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증명해줄 ‘보고서’가 담긴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전문적인’ 솜씨로 훼손됐다. 검찰은 대검 디지털 포렌식 센터(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에 저장된 문서·로그기록 등을 수집·복구·분석해 법정에 제출할 증거를 찾는 부서)와 삼성전자에 하드디스크 복구를 의뢰했지만, 복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시간도 ‘우리 편’은 아니다. 이인규 전 지원관과 김충곤 전 팀장의 구속 만료 기간이 8월11일까지다. 그 전에 어떻게든 이들을 기소해야 한다. 하지만 의혹의 ‘시발점’인 김종익씨 사찰 문제를 비롯해 남 의원 부인 뒷조사 의혹까지 실체를 규명하기엔 숨이 가쁘다. 검찰이 ‘윗선’을 밝혀내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퍼즐 조각이 많을수록, 전체 그림은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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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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