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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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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 아닌 G20 정상회의 경호


군대도 동원 가능한 ‘G20 특별법’, 국민의 표현·이동·거주 자유 침해…
테러 방지 명목으로 이주노동자 단속, 인터넷 검열 중
등록 2010-08-13 16:41 수정 2020-05-03 04:26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주노동자를 비롯해 노점상, 노숙인 등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기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주노동자권리지킴이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7월20일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기본권 침해를 비판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이종찬 선임기자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주노동자를 비롯해 노점상, 노숙인 등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기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주노동자권리지킴이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7월20일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기본권 침해를 비판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이종찬 선임기자

“실례합니다. 지금 어디 가는 길입니까? 정확한 목적지를 알 수 있습니까? 거기 왜 가는 거죠? 잠시 가방 좀 살펴보겠습니다.”

오는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서울 삼성동 코엑스 주변을 걷는 시민들은 이런 검문·검색을 받을 것 같다. 정부가 1박2일간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때 강한 경호 대책을 예고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지나친 인권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상들의 이동은 비밀, 코엑스 주변은 성지

11월11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는 20개국 정상은 물론 국제기구 수장을 포함해 1만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국격 상승’의 기회로 보고 철저한 준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가운데는 회의장 주변에서 시민을 검문·검색하고 출입을 제한하는 조처는 물론,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시행됐던 ‘거리청소’식 노점상·노숙자 단속 등도 포함된다.

정부는 이미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한나라당은 지난 5월 ‘G20 정상회의 경호안전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특별법은 질서유지를 위해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게 했다. 또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장소와 각국 정상 및 국제기구 대표의 숙소, 이동로 등 정상회의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장소와 그 주변을 경호안전구역으로 설정하고, 이곳에서는 검문·검색, 출입 통제, 위험물 탐지 및 안전 조처 등 위해 방지에 필요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더욱이 경호안전구역을 지정할 때 보안 유지가 필요한 경우 대상 구역과 기간 등을 공고하지 않을 수 있는 규정까지 두고 있다. 법률 제정 당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 쪽에서는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등도 기존 집시법으로 큰 무리 없이 치렀는데, 특별법을 만들어 지나치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반발했지만 소용없었다.

정부는 정상회의가 열리는 코엑스에는 주변 600m 안쪽에 38개 검문소를 설치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구청을 통해 신분이 인증된 거주자들은 검문소에서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거치지만, 거주자가 아닌 경우 신분증 및 소지품 검사를 받고 방문지와 방문 목적 등을 설명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인 경호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도 “평상시와는 달리 수상한 물품을 소지했는지 확인하고, 코엑스 안에 진입할 경우 목적지를 확인하는 등 검문·검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경호안전구역은 오는 8월 말 또는 9월 초에 공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더욱이 각국 정상이 머물 예정인 특급호텔과 그들이 이동하는 경로도 특별법상 경호안전구역 지정 대상에 포함돼 시민의 불편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미국 대표단은 서울 한남동의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머물 예정이고, 중국은 장충동 신라호텔, 오스트레일리아는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을 숙소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우디아라비아는 광장동 쉐라톤워커힐,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는 삼성동 파크하얏트호텔, 프랑스와 영국은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등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서울 곳곳의 대표단 숙소 주변까지 통제하나

정상들의 숙소와 이동로는 서울 시내 전역에 걸쳐 있다. 서울 시내 특급호텔들은 시민의 통행이 많은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이 모두 경호안전구역으로 지정되면 시민이나 차량의 통행에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특별법에 따라 시민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검문·검색을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조처”라며 “특히 회의 장소 이외에 정상들의 숙소와 이동로까지 경호제한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어 시민의 기본권이 광범위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경찰은 G20 정상회의를 이유로 인터넷 카페나 동영상 폐쇄·삭제를 해당 사이트 쪽에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각 포털 사이트에 보낸 경찰청의 협조 공문을 보면, 경찰은 최근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모니터링 강화와 불법 콘텐츠 삭제는 물론, 위험하다고 판단한 카페의 폐쇄를 인터넷 사업체에 요구했다.

경찰청이 보낸 공문에는 항상 ‘G20’을 이유로 콘텐츠를 삭제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폭발물 제조와 관련된 협조 공문은 “다가오는 국가 행사인 G20을 앞두고 인터넷상 폭발물 제조법 및 관련 재료를 구매하는 글과 동영상 등이 게시·유포됨에 따라 학습·모방범죄 발생이 심히 우려된다”며 해당 카페 폐쇄 등의 조처를 요청했다. 경찰이 문제 삼은 것은 NHN의 ‘폭탄연구소 카페’ ‘무기의 모든 것 카페’ 등과 엠군의 ‘스프레이폭탄’ ‘미니 폭탄 만들기’ 동영상 등이었다. 8월6일 현재 해당 카페와 동영상은 삭제된 상태다. 이에 대해 NHN 관계자는 “경찰 등 사법기관의 요구에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단체는 경찰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인터넷에 떠도는 폭탄 관련 정보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해외 사이트에서도 구할 수 있는 내용”이라며 “실질적인 차단 효과가 없는데도 국내 인터넷 공간의 표현의 자유만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님 맞는다고 약자 괴롭히는 호들갑”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권 침해는 이미 올 초부터 진행됐다. 법무부는 지난 6월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집중단속을 실시하고 있고, 경찰청은 지난 5월부터 50일간 외국인 범죄에 대해 집중단속을 벌였다. 서울시는 25개 자치구에 도로특별정비반 88개를 구성해 노점상에 대한 순찰과 정비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권리지킴이·노점노동연대·빈곤사회연대·인권운동사랑방 등으로 구성된 ‘인권탄압 공동대책회의’는 지난 7월20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G20 정상회의를 빌미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님맞이를 위해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처는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는 지적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외국 정상들이 오는 행사를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지난 10년 동안 여러 차례 정상회의를 치렀는데 유독 G20에 호들갑을 떠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사회·경제적 약자를 모질게 대하면서 손님을 접대하겠다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본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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