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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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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라인은 질기다



청와대 인사로 일각에서 “물갈이됐다”고 평가받는 박영준 라인,
오히려 요직으로 옮기고 심지어 승진도
등록 2010-08-06 17:01 수정 2020-05-03 04:26
이명박 대통령은 박영준 국무차장을 어디까지 신뢰하는 것일까? 7월30일 청와대에서 확대비서관회의를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은 박영준 국무차장을 어디까지 신뢰하는 것일까? 7월30일 청와대에서 확대비서관회의를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7월27일 이명박 대통령은 ‘3기 청와대’ 인사를 마무리했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언론은 “국정 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박영준 라인’이 물갈이됐다”거나 “2선으로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함께 내각·청와대·공기업 인사를 맡았던 인사비서관실 윤한홍·이동헌 선임행정관이 인사 라인에서 빠진 것을 두고 나온 평가다. 정말 이 인사는 ‘물갈이’였을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답은 오히려 ‘건재’에 가깝다.

 

인사 분야에서 배제됐다지만…

윤 행정관은 서울시에서 근무할 때 당시 정무국장이던 박 차장과 인연을 맺었고, 이 행정관은 박 차장이 주도한 선진국민연대 출신이다. 이들은 지난 7월27일 인사에서 각각 대통령실장실과 지식경제비서관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이 두 곳은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 업무의 중요도, 권한 등에서 결코 인사비서관실보다 덜한 곳이 아니다. 인사 실무에서 손을 뗐다지만 ‘좌천’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 총무기획관실에 있다 이들의 후임으로 인사비서관실로 옮긴 김회구 선임행정관은 ‘박영준 라인과 소통이 가능한 인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당료 출신으로 이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 비서실 행정지원팀장을 맡았다. 윤한홍·이동헌 두 행정관이 인사 실무에서 배제됐다고는 하지만, 박 차장 등의 영향력이 인사 라인에서 여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국면에 승진한 인사도 있다. 장석명 신임 공직기강비서관이다. 공직기강비서관은 인사 대상 공직자를 검증하고 일부 감찰 기능도 맡는 요직이다. 원래 민정수석비서관실 아래에 있던 공직기강팀을 지난해 9월 확대 개편하면서 생겨났지만, 지금까지 공석이었다. 지난해 4월부터 공직기강팀장을 맡은 장 비서관은 조직 확대 개편 때부터 승진설이 유력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이 불거지고, 지원관실이 박 차장의 사조직이라는 의혹을 받으면서 한때 이런 전망이 힘을 잃기도 했다. 장 비서관은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청와대의 조사를 담당했는데, 조사는 사찰의 전말이 아니라 사조직 의혹 발설자를 찾아내는 데 초점이 맞춰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때 국제협력과장과 산업지원과장 등을 지냈고,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에 둥지를 튼 대표적인 박영준 라인이다. 그런데도, 혹은 이 때문에 이명박 청와대의 첫 공직기강비서관을 맡는 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인수위에서부터 박 차장과 인선 작업을 함께했고,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지낸 이상휘 춘추관장은 홍보기획비서관에 발탁됐다. 홍보기획비서관은 기존 언론비서관과 메시지기획비서관 기능을 통합한 자리로 언론 정책, 행사 기획, 대통령 이미지 관리 등의 업무를 맡는다. 행사 기획이나 대통령 이미지 관리는 그렇다 쳐도, 언론 정책은 정책적·정치적으로 중요하고 민감한 분야다. 이명박 정부 언론 정책의 최대 현안인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과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 문제 때문이다. 정부는 두 사안을 모두 올해 안에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이런 핵심적인 작업을 주도할 사람이 바로 이 비서관인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박영준 라인의 ‘정리’를 놓고 청와대의 고민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영준 라인이라고 해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무조건 내칠 수도 없고, ‘구관이 명관’이라며 그대로 두기엔 이들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절충안이 인사 담당 분야에서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청와대에 있는 박 차장 인맥들에게 “인사에서 문제가 된 사람은 빼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차장 쪽 사람들도 같은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그 결과 단행된 인사를 두고 언론의 평가는 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청와대 내부의 시선은 다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자리만 옮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이번 인사는 여전히 박영준의 힘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의 빚어도 끄떡없다?

어찌 보면 앞에 언급된 청와대의 박 차장 인맥들은 억울할 수도 있다. 정인철 전 기획관리비서관이나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처럼 대형 의혹에 연루된 것도 아니니 말이다. 사실 공개적으로 의혹이 제기돼 어쩔 수 없이 옷을 벗은 두 비서관과 달리, 물의를 빚고도 다른 자리로 버젓이 옮겨간 이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여수엑스포조직위원회 학술행사 과장으로 발령난 이승균 전 인사비서관실 행정관이다. 그는 박영준 차장과 동향인 경북 칠곡 출신으로, 서울시와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그러다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동서고속도로의 동홍천~양양 구간 공사 입찰에서 특정 업체를 선정하라고 한국도로공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샀다. 공기업 간부에게 승진 보장을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지난해 6월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은 이런 내용을 조사했지만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여권에선 “사실관계는 다 확인했지만 박 차장 때문에 덮었다”는 말이 ‘정설’로 굳어 있다. 어쨌거나 청와대는 ‘무혐의’인 그를 교육과학기술부 산하기관인 여수엑스포조직위원회로 내보내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인사 담당자로서 유사한 소문이 계속된다”는 게 전보 이유였다. 이후 청와대 안에선 “역시 박영준의 힘은 대단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이 대통령은 이런 말을 즐겨 쓴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접시도 깰 수 있는 일이다. 일일이 접시를 깬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일하려고 하겠나.” 잘못이나 의혹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생기는 ‘비용’이므로 별로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주는 얘기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박영준 라인을 둘러싼 의혹이나 논란은 이들이 열심히 일하다 얻은 ‘증명서’일 수도 있다. 이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기 전까지, 이 대통령에겐 이들을 내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박 차장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버릴 카드’가 아니다. 그는 현재 정부의 15개 태스크포스(TF)팀장을 맡을 만큼 많은 일을 진행하고 있으며, 자원외교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 때문인지 이 대통령의 신뢰도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곧 단행될 내각 인사에서 박 차장의 거취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초미의 관심사다.

 

“박 차장은 밀려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한나라당 이명박계 핵심 의원은 “대통령은 박 차장을 매우 신뢰한다. 박 차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듣고, 대통령을 위해 일을 만들고 처리할 사람이 박 차장밖에 없다는 게 대통령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나오는 의혹은 박 차장과 가까운 사람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거지, 박 차장이 직접 어떤 잘못을 했다는 얘기는 아무것도 없지 않으냐”며 “이번 개각 때 박 차장이 밀려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예언’은 적중할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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