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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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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억원 협회를 가로챈 사람은 누군가?

올해만 80억원 정부 지원받는 한국경제교육협회…
KDI가 설립 주도하다 갑자기 외부 인사가 들어온 것으로 밝혀져
등록 2010-08-06 16:54 수정 2020-05-03 04:26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경제교육협회 설립 막바지에 배제된 것은 ‘윗선’의 개입 때문일까.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경제교육협회 설립 막바지에 배제된 것은 ‘윗선’의 개입 때문일까.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정부의 ‘표적 예산 지원’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경제교육협회와 관련해 “애초 협회가 만들어지면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교육센터 쪽이 이를 맡으려 했으나, 협회 설립 막바지에 갑자기 배제됐다. 그 대신 경제 교육과 무관한 사람들이 협회를 맡게 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국경제교육협회는 정인철 전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의 측근이 주도하는 단체로, 단체 결성 뒤 이들을 지원하는 경제교육지원법이 만들어져 의문을 키우는 곳이다(821호 특집 ‘이제 게이트는 협회로 통한다’ 참조).

 

전문성 의심되는 박상득 사무총장

협회 설립 초반부터 깊이 개입한 한 인사는 7월30일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 부처와 재계 단체 등 18개 기관이 경제 교육과 관련한 민관 간담회 형태인 경제교육협의회를 오래전부터 진행하면서, 경제 교육을 전담할 새로운 기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며 “새 협회가 만들어지면 예전 협의회의 사무국을 맡았던 KDI 경제교육센터 쪽 인력이 그리로 옮겨 기존 역할을 계속한다는 게 협의회에 참여하는 모든 기관의 내부적인 합의였다”고 말했다. 협의회엔 기획재정부도 참여했기 때문에 경제 교육을 체계적으로 맡을 기구와 이를 지원할 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수렴됐고, 법 통과 전에 협회를 만들어 기존 KDI 경제교육센터 쪽 사무국의 기능과 인력을 이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KDI 경제교육센터 쪽은 이에 대비해 새로 인력도 충원하고 법안과 협회 정관 작성 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협회 설립 절차 막바지인 2008년 말, 알 수 없는 이유로 경제교육센터 쪽이 배제됐다. 이 인사는 “누가 인선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사무국을 맡기로 결정됐다. 이들은 경제 교육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로, 이쪽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조차 ‘누군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고 했다. 전문성이 의심된다고 지목받은 대표적인 이가 박상득 협회 사무총장이다. 박 사무총장은 정인철 전 비서관과 기업 운영을 같이 하는 등 정 전 비서관과 10여 년 전부터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그는 한국능률협회 국제사업팀장, 정 전 비서관과 운영한 회사의 이사와 감사 등을 지냈지만, 청소년들에게 경제 작동 원리를 가르치고 미래의 경제주체를 키우는 경제 교육과는 연관성이 떨어지는 이력을 갖고 있다. 결국 그가 갑자기 사무총장이 됐다는 건, 이미 정부와 민간단체가 합의해 만들기로 한 협회 사무국 인선에 ‘윗선’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정부가 애초부터 이 협회를 지원할 계획이었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협회가 2008년 12월 사단법인 허가 신청을 냈을 때 기획재정부가 작성한 내부 검토의견서가 대표적이다. “(한국경제교육협회는) 현재 우리 부가 추진하는 경제교육지원법상 경제 교육 주관기관으로 지정하여 법적 근거를 가질 계획”이며 “연내 법인 설립이 완료되어 내년부터 경제 교육 활성화를 적극 추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조속히 허가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핵심이다.

 

자신이 이사인지 모르는 이사도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교육과학기술부, 금융위원회, 노동부, 지식경제부의 고위 공무원이 정식 공문도 받은 적 없이 이 협회의 정관에 근거해 당연직 이사로 올라가 있다는 점도 그렇다. 정관 제8조 3항은 이 부처들의 1급 공무원이 당연직 이사가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사 명단에 오른 이들 가운덴 “내가 이사라는 사실도 몰랐다”는 이도 있다. 이와 관련한 정부 부처의 공통적인 해명은 이렇다. “예전 경제교육협의회 때부터 함께 협회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정부 부처에서 이사가 되는 건 당연한 일로 여겼다. 어차피 협회가 추진하는 사업 자체가 정부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 아니냐. 이미 기획재정부가 설립을 허가한 협회 정관과 절차에 따랐을 뿐이다.”

협회 설립과 경제교육지원법 제정, 경제 교육 주관단체 지정 등의 절차는 사무국을 맡을 주체만 바뀐 채 착착 진행됐다. 그리고 협회는 올해 지원받는 예산만 80억원이 넘는다. 누구였을까? 다른 이의 몫이었던 자리를 가로채간 사람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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