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제 게이트는 ‘협회’로 통한다



한국콘텐츠산업협회에 이어 등장한 한국경제교육협회, 정부가 법까지 새로 만들어 한 해 80억 지원…
정인철 전 청와대 비서관 인맥이 주도
등록 2010-07-30 19:10 수정 2020-05-03 04:26

정인철 전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의 ‘ㅍ호텔 기업인·은행장 정례모임’에 참석한 기업 등이 정 전 비서관 지인들로 구성된 한국콘텐츠산업협회에 돈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이번엔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또 다른 사단법인을 정 전 비서관과 가까운 인사가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이 단체가 만들어진 뒤 이곳을 지원하는 법률이 정부 발의로 제정된 사실도 드러났다.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핵심 측근인 정 전 비서관과 연결 고리를 가진 의문의 단체가 하나 더 늘어남으로써, ‘박영준 라인’의 국정 농단 의혹은 고구마 줄기처럼 가지에 가지를 치는 모양새다.
 
자산 총액 ‘0원’, 자금원은 ‘정부 지원’

‘박영준 라인’은 대체 어디까지 손길을 뻗친 것일까? 박영준 차장의 핵심 측근인 정인철 전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 쪽 인사가 주도한 한국경제교육협회가 올해만 80억원이 넘는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9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정인철 전 비서관. 연합 조보희 기자

‘박영준 라인’은 대체 어디까지 손길을 뻗친 것일까? 박영준 차장의 핵심 측근인 정인철 전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 쪽 인사가 주도한 한국경제교육협회가 올해만 80억원이 넘는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9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정인철 전 비서관. 연합 조보희 기자

문제의 단체는 2008년 12월15일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경제교육협회다. 한국콘텐츠산업협회가 만들어진 뒤 꼭 13일 만에 ‘경제교육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초대 회장을 맡은 황영기 당시 KB금융지주 회장에 이어 지난해 11월9일부턴 이석채 KT 회장이 이 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고,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 초대 고문이다. 이석채 회장은 정인철 전 비서관의 ‘ㅍ호텔 정례모임’ 참석자고, 곽승준 위원장은 당시 박영준 국무차장과 가까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간단체이지만, 기획재정부·교육과학기술부·지식경제부·고용노동부·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의 1급 공무원이 이 협회 당연직 이사고,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은행·예금보험공사·금융감독원·KT·포스코경영연구소 등 24곳이 회원사로 참여한다. 명실공히 정·관·재계를 아우르는 화려한 명단이다.

이 협회와 정인철 전 비서관의 연결 고리는 협회 사무총장인 박상득씨다. 정 전 비서관과 박 사무총장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부터 한국능률협회에서 수석컨설턴트, 사업개발실장 등으로 일한 정 전 비서관은 이곳에서 국제사업팀장 등을 지낸 박 사무총장을 만났다. 정 전 비서관이 2000년에 만든 벤처기업 인큐베이팅·컨설팅 업체 ‘한경핫벤처’에서 정 전 비서관은 대표이사를, 박 사무총장은 관리이사를 지냈다.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 입성 직전까지 운영한 ‘KP&MC 한국경영자문’의 감사도 박 사무총장이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기업 경영이라는 경험과 이해관계를 공유한 ‘끈끈한’ 사이인 셈이다.

이 협회의 법인등기부등본상 자산 총액은 ‘0원’이다. 그 대신 출자 방법으로 △대한민국 정부 또는 국내 기관 등으로부터 지급받은 출연금·연회비·기부금 △대한민국 정부 또는 국내외 기관 등으로부터 양여나 기부받은 토지 및 건물 △수탁사업, 경제교육 관련 부대사업 등을 통해 조성된 기금이 명시돼 있다. 사단법인이라 해도 보통 1천만원가량의 자산은 기본으로 갖고 출발한다. 또한 회원 회비나 기부금, 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금 등을 출자 방법으로 삼는다. 그런데 한국경제교육협회는 왜 일반적인 사단법인과 달리, 보란 듯이 ‘정부 지원’을 자금원으로 명시한 걸까?

 

별도의 법 제정 필요성에 의문 제기돼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게 바로 ‘경제교육지원법’이다. 이 법은 한국경제교육협회가 설립된 지 한 달 뒤인 2009년 1월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실 경제교육지원법은 참여정부에서도 추진한 적이 있다. 2007년 6월8일 재정경제부는 △경제교육 활성화 △경제교육전략·종합계획 수립 △소외계층 경제교육 강화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가 사무국이 돼 민간기관을 지원하는 경제교육협의회의 법적 기구화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경제교육지원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시민 경제교육을 왜 국가가 주도하고 통제하느냐는 시민사회의 반발로 입법이 무산됐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2008년 11월 기획재정부가 다시 법안을 발의하는데, 이땐 핵심 내용이 경제교육 주관기관을 지정하고 법적 근거를 마련해 이 기관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으로 바뀐다. 쉽게 말해 경제교육의 ‘내용’에서 ‘형식’으로 법의 강조점이 바뀐 것이다.

한국경제교육협회와 경제교육지원법이라는 각각의 퍼즐 조각은 2009년 5월 협회가 이 법에 따른 경제교육 주관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아귀가 맞아간다. 주관기관으로 지정되는 과정도 신속하게 진행된다. 주관기관 지정 절차가 담긴 경제교육지원법 시행령이 5월6일 제정됐는데, 이틀 뒤인 5월8일 바로 공모 공고가 나갔다. 11일의 공고 기간에 모두 3곳이 응모를 했는데, 5월20일 서류 심사를 거쳐 5월22일 한국경제교육협회가 경제교육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이 협회 홍보 브로슈어에도 나와 있듯, 우리나라에서 경제교육 주관기관은 이곳이 유일하다. 다시 말해 경제교육을 위해 법률과 정부의 지원을 받는 유일한 단체가 한국경제교육협회다. 시행령 제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빠른 속도로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이렇게 민간에서 경제교육 주관기관을 선정해 재정 지원을 하는 방식에 대해선 경제교육지원법 입법 당시에도 문제가 제기됐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현성수 수석 전문위원은 법안 검토 보고서를 통해 “법안은 경제교육의 기본 원칙과 추진 방향을 제시하고, 경제교육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 전부인바, (이런) 별도의 입법 조치가 필요한지 검토가 요망된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의 재정 지원은 중립적인 공공기관(한국은행·KDI)의 경제교육 지원사업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공익성이 의심되는 특정 민간단체에 경제교육 전반을 맡기고, 이 단체에 예산을 지원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기획재정위는 이런 지적을 일부 반영해 재정 지원을 받은 경제교육 주관기관이 매년 실적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는 등 약간의 ‘안전장치’를 덧붙여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사위와 본회의에서도 큰 논란 없이 처리됐다.

그 결과 한국경제교육협회는 그해 10억7천만원을 지원받았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40억4천만원, 하반기에 40억원으로 모두 80억4천만원을 지원받는다. 예산 대부분은 협회가 발행하는 청소년 경제교육 주간지 발행비와 경제교육 인프라 구축 비용으로 잡혀 있다. 누군가 ‘협회 설립→협회 지원용 법률 제정→법률에 따라 협회 지원’이라는 계획을 세워두고, 그에 따라 착착 절차를 밟아나간 것처럼 일은 순조롭게 풀렸다.

한국경제교육협회 사무실(오른쪽)이 있는 서울 충정로의 한 빌딩(왼쪽). 이 건물 소유주는 ‘박영준 라인’이 회장 선임 과정에 개입했다는 말이 나오는 국민은행이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한국경제교육협회 사무실(오른쪽)이 있는 서울 충정로의 한 빌딩(왼쪽). 이 건물 소유주는 ‘박영준 라인’이 회장 선임 과정에 개입했다는 말이 나오는 국민은행이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정부는 예산 지원, KB는 사무실 지원?

미심쩍은 부분은 또 있다. 협회 사무실이 바로 국민은행 소유다. 국민은행은 정인철 전 비서관과 같은 선진국민연대 출신인 유선기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이사장에게 2008년 6월부터 1년가량 경영고문직을 맡겨 한 달에 1900만원씩 고문료를 준 것으로 금융감독원 감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또한 조재목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이사는 2009년 3월 국민은행 사외이사로 선임돼 활동하고 있다.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은 정 전 비서관과 박상득 한국경제교육협회 사무총장이 함께한 회사 ‘KP&MC 한국경영자문’의 서울 여의도 사무실과 같은 주소를 썼다. 우연이라고 쳐도, 너무한 우연들이다. “국민은행이 협회에 사무실을 내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는 말도 나돈다.

그렇다면 한국경제교육협회는 이런 예산을 받아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우선 협회는 애초 KDI가 맡으려던 경제교육협의회 사무국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지난 7월12~13일엔 충남 천안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에서 기획재정부와 관련 단체 소속 80여 명이 모여 법 통과 이후 첫 경제교육협의회를 열기도 했다.

박상득 사무총장은 전국의 초·중·고교를 누비며 를 홍보하고, 협회와 자매결연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덕분인지 는 지난해 12월14일 창간호를 낸 뒤 현재 전국 학교 1만1400여 곳에 배포되고 있으며, 이 신문을 독서·논술·경제 교육에 더 심층적으로 활용하는 자매결연 학교도 70곳이 넘는다.

경제교육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 전·현직 경제관료와 기업인 등이 각계각층에서 강연을 벌이는 ‘경제교육 에이스 봉사단’ 운영, 경제교육 관련 싱크탱크인 ‘21세기 경제교육위원회’ 구성, 지역별 경제교육·체험 프로그램 개발 등도 이들이 하는 일이다. 부산·대전·광주 등 11개 광역시·도엔 지역경제교육센터도 있다.

협회는 또 가 2009년 8월 시작한 경제·경영 이해력 시험인 ‘매경 테스트’(Test of Economic & biz Strategic Thinking)를 국가공인 시험으로 격상시키려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공교롭게도 는 정인철 전 비서관이 기자로 근무한 적이 있는 곳이다.

1

1

정치적 네트워킹 의구심도

‘위인설관’이라는 말처럼, ‘공신’이나 그와 가까운 이들이 자리를 만들어 차지하고 이익을 분배하는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어느 정권에서나 있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유독 ‘박영준 라인’의 움직임이 눈에 띄는 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뿐만 아니라 이런 행태를 견제할 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독식’ 의혹은 더욱 증폭된다. 협회를 만들어 사업을 벌이고 지원을 받은 건 이런 의혹과 비난을 벗어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 ‘적법’하고 명분 있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 쉽게 문제삼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계산은 없었을까? 협회 활동을 하다 보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각계·각지와 네트워킹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네트워크는 정치와 선거에서도 기본이다. 정인철 전 비서관과 박영준 국무차장은 선진국민연대라는 대선 외곽 조직을 통해 정권 창출을 한 경험이 있다. 이들이 협회를 통해 정치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까지 염두에 뒀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지나친 것일까? 협회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경제교육 활성화가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최소한 정인철 전 비서관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든 단체라는 얘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궁금증은 갈수록 더해지지만, 관련자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아무 거리낄 게 없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이런 궁금증을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국민의 녹을 받은 시절에 벌어진 일만큼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