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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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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나라에서, 나 홀로, 짧게…

2000년대 들어 변해가는 해외여행 트렌드…
동남아 패키지 여행 줄어들고 ‘나홀로족’의 단기 체류 늘어
등록 2010-08-06 15:16 수정 2020-05-03 04:26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주말에 일본으로 ‘1박3일’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이 늘었다. 2007년 6월22일 새벽 전세기를 이용해 일본으로 떠나는 관광객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주말에 일본으로 ‘1박3일’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이 늘었다. 2007년 6월22일 새벽 전세기를 이용해 일본으로 떠나는 관광객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세탁을 하실 때에는 욕실 바닥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주의하셔야 하며, 면도나 헤어드라이를 하실 경우에는 전압이 우리나라와 같은지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특히 호텔방 욕실에서 샤워 등을 할 때는 욕조의 커튼을 닫고 사용하셔야 하며, 샤워는 반드시 욕조 안에서 하십시오.”

2006~2009년 동남아 여행 39% 감소

지난 1989년 1월1일 한 일간지에 6개 여행사가 함께 전면 광고를 내면서 올린 안내 문구였다. 이날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한 날이었다. 여행사들이 ‘대목’을 맞아 잠재 소비자를 대상으로 광고를 낸 것이었다. 광고 문안은 지나치게 친절하다 못해 촌스러웠지만, 당시 일반인에게 해외여행이란 그만큼 낯선 것이었다.

해방 이후 44년 동안 일반인에게 금지된 해외여행은 1989년 여행 자유화를 계기로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범접하기 힘들었던 가격도 점차 내려갔다. 100만원을 넘던 하와이 4박5일 코스에 맞춰 1991년에는 50만원대 상품까지 등장했다.

출국자 수도 급격하게 늘었다. 1987년 51만 명이었다가 2년 만인 1989년 121만 명으로 2배 이상 늘더니, 또 4년 만인 1993년에 다시 242만 명으로 2배로 늘었다.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국외 관광객이 몰리면서 외국에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공항에서 술판이나 도박판을 벌이는 일부 관광객들 때문에 ‘어글리 코리안’ 시비가 자주 일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 대학생들이 출국 대열에 대거 합류했다. 1991년 이후에는 병역 미필자 대학생도 소속 학교 총·학장의 추천서만 있으면 출국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배낭여행과 어학연수를 떠나는 대학생들은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1996년에는 20대의 출국 건수가 110만 건으로, 1년 만에 24%나 증가했다. 같은 해 40대의 출국 건수(99만 건)보다 많았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들어 해외여행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단체관광 여행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여행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핵심은 다양화·소규모화·일상화·양극화, 이렇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다양화는 다시 두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일단 찾아가는 지역이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국민 해외여행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1999년 출국자가 찾아간 국가 가운데 비중이 높은 5개국의 방문 비율 합계는 86.4%였지만, 2005년에는 그 비율이 73.3%로 줄어들었다. 중국·일본·타이 등에 집중되던 방문객의 행선지가 다양화하고 있다는 징표다. 앞으로 방문하고 싶은 국가를 복수응답으로 물었더니, 1999년에는 인기 있는 5개국의 비율을 합한 수치가 169.8%였는데, 2005년에는 109.9%로 떨어졌다. 가고 싶은 나라도 다양해졌다는 말이다. 하나투어에서 올 초 작성한 ‘한국인 해외여행 지도’ 보고서를 넘겨받았다. 이 자료에도 이런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하나투어의 패키지에 참가한 고객 가운데 동남아를 찾은 이는 2006~2009년 39%가 줄어든 반면, 아프리카를 방문한 이는 같은 기간 무려 12배 이상 늘었다. 익숙한 관광지를 떠나 새로운 곳을 찾는 소비자의 움직임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주5일제 도입 뒤 ‘1박3일’ 여행 인기

여행 형태도 다양화하고 있다. 해외여행의 다수를 이루던 패키지 여행의 위력도 떨어지고 있다. ‘한국인 해외여행 지도’ 보고서를 보면, 하나투어에서 패키지 여행을 이용한 인구는 2006~2009년 28%가 줄어들었다. 반면 개별 항공권 판매량은 경기 침체에도 같은 기간 1% 감소하는 데 그쳤다. 또 비행기와 호텔 비용만 미리 내고 나머지 일정은 개인이 짜는 ‘에어텔’ 상품 판매는 같은 기간 4.2배나 늘었다.

해외여행 규모도 단출하게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관광공사의 ‘국민 해외여행 실태조사’를 보면, 혼자 여행하는 비율은 2005년 13.6%에서 3년 만에 26.6%로 늘었다. 반면 친구 및 동료와 여행했다는 비율은 55.1%에서 41.2%로 줄었다. 그만큼 ‘나홀로족’의 비율이 높아졌다. 해외여행의 평균 동반자 수도 2005년 7.7명에서 2008년에는 4.4명으로 급감했다.

이진석 내일여행 사장은 “4~5년 전부터 패키지 여행의 비중이 줄어들고 개인 단위 여행객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여행을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변하고 있다. 일단 체류 기간이 줄어들고 있다. ‘국민 해외여행 실태조사’를 보면, 국외 여행 평균 체류일은 13.1일에서 2008년에는 8.7일까지 줄었다. 체류 기간이 짧아진 데는 단거리 여행 코스가 다수 등장한 점도 작용했다. 지난 2004년 주5일제 도입 이후, 휴일이 길어지면서 금요일에 떠나 일요일에 돌아오는 ‘1박3일’ 해외여행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04∼2007년 전체 출국자는 50.8% 늘었지만, 일본(63.7%), 홍콩(62.5%)으로 향하는 이는 더 많이 늘었다. 해외여행은 휴가철에만 간다는 생각도 바뀌고 있다. ‘한국인 해외여행 지도’ 보고서를 보면, 2005년에는 7~8월에 해외여행을 떠난 비율이 22.8%였지만, 2008년에는 17.9%까지 줄었다.

하나투어의 정기윤 홍보팀장은 “과거에는 8일 동안 5개 나라를 도는 빡빡한 일정의 패키지 여행이 대세를 이뤘다면, 점차 개인이 한두 나라를 중심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게 시기와 방문지를 골라서 짧게 여행을 즐기는 추세로 여행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행시장 양극화, 아주 비싸거나 아주 싸거나

여행시장에서 양극화의 기미도 보인다. 중간대 가격의 상품이 상대적으로 고전하는 한편, 고가 혹은 저렴한 가격의 여행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인 해외여행 지도’ 보고서를 보면, 30만원 이하부터 500만원 이상 가격대까지 13개 가격군의 여행상품 가운데 2006~2009년 판매량이 늘어난 상품군은 가장 낮은 가격대인 30만원 이하와 중간대인 150만~200만원, 그리고 가장 높은 가격대인 350만~400만원, 400만~450만원, 500만원 이상 상품이었다. 특히 최저가와 최고가의 상품이 모두 판매가 증가한 점이 이채로웠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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