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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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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할 권익도 보장된 권익위?

이재오 위원장 재임 당시의 국민권익위원회,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직원 비위 혐의 3건 이첩받고도 모두 솜방망이 처벌
등록 2010-07-27 16:04 수정 2020-05-03 04:26

서울 서대문구 의주로에 있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1층엔 타임캡슐 하나가 전시돼 있다. 지난 3월8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 대강당에서 열린 ‘청렴·쇄신 자기서약 실천 다짐대회’에서 권익위 직원 500여 명이 저마다 깨끗한 공직 생활을 약속하며 쓴 글을 모아둔 것이다. “민원 조사 출장시 차를 얻어타거나 밥을 얻어먹지 않겠다” “5천원 안팎의 점심식사를 하겠다” 등 깨끗함을 다짐하는 글을 종이에 적었다. 이날 행사는 작은 비리도 반드시 처벌받도록 해 부패 공무원이 발붙일 수 없는 풍토를 만들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타입캡슐은 올해 말 개봉돼, 스스로 청렴도를 평가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재오 당시 권익위원장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공무원들의 청렴·쇄신 문화가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의례적 금품 수수”라는 기막힌 경징계 사유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권익위 소속 직원의 비위사실을 이첩받고도 ‘의례적 금품 수수’ 등의 이유를 들어 경징계했다. 지난해 9월30일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청와대에서 임명장 수여를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권익위 소속 직원의 비위사실을 이첩받고도 ‘의례적 금품 수수’ 등의 이유를 들어 경징계했다. 지난해 9월30일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청와대에서 임명장 수여를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런 다짐대회를 통해 권익위의 ‘청렴·쇄신 문화’는 얼마나 확산됐을까? 적어도 ‘내 식구’한테 들이대는 잣대는 그리 깐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난 1월27일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은 권익위 직원의 비위 혐의 자료 3건을 권익위에 이첩했다. ‘자료 이첩’이라는 제목으로 권익위원장과 권익위 법무감사담당관에게 보낸 이 공문엔 △권익위가 실시하는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 대상기관 관계자와 2009년 7~8월 식사 및 선물 수수 △2008년 청렴도 측정사업 용역업체인 여론조사 전문기관으로부터 금품 수수 △2009년 청렴도 측정 용역업체 선정 때 특정 업체 편파 지원 등의 의혹이 담겨 있었다.

이 가운데 권익위 직원이 청렴도 평가 대상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 경기 안산시, 한전 관계자와 식사를 한 의혹 등은 이들이 만나는 장면을 찍은 사진까지 이첩했을 만큼 구체적이었다. 또한 해당 직원은 공무원의 부패 행위를 규제하는 부패방지국 소속이었다. 권익위 법무감사담당관실은 이런 의혹을 조사하고도 “개인적 친분으로 식사를 했고, 이후 청렴도 평가에서 해당 기관의 평가 결과가 전년보다 낮아졌다”며 내부 주의경고 조처에 그쳤다. 또한 “청렴기관을 선도하는 기관에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면서도 “회동이 직무상 관련보다 개인적 친분으로 이뤄졌고, 평가시책에 대한 홍보와 컨설팅이 필요한 (부패방지국 직원의) 업무 특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직원은 안산시 관계자에게 안산시 홍보용 커피잔과 포도주, 홍보책자가 든 쇼핑백 8개를 받았다. 안산시 대부도 특산물인 1만원대 포도주인데, 이 가격만 해도 8만원이 넘는다. ‘공무원 행동강령’은 공무원이 직무 관련자로부터 3만원 이상의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권익위 직원이 여론조사 기관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에 대한 조처도 소극적이었다. 이첩된 내용은 국가기관 청렴도 측정사업 용역을 맡은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에게 권익위 직원이 수차례 자문비와 차비 등을 요구해 받았다는 것이다. 권익위 자체 조사에서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는 자문비로 20만원, 차비로 10만원 등 약 70만원을 건넸고 세 차례 술접대를 했다고 진술했다. 물론 해당 직원은 식사를 함께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금품·향응 수수는 부인했다. 권익위는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의 진술이 구체적이라는 점 등을 들어 해당 직원을 중앙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의례적 금품 수수”라며 경징계를 요구했다. 중앙징계위원회는 이 사건을 다시 검토해 7월16일자로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권익위 요구대로 경징계가 내려진 것이다.

청렴도 측정 용역업체 선정 때 특정 업체를 편파적으로 지원했다는 의혹은 아예 ‘무혐의’로 결론났다. 실무 직원이 용역 입찰 참여 업체에 입찰가를 문의한 것이 핵심인데, 권익위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보인다”면서도 “입찰가 문의는 개인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민주당 쪽은 “권익위가 부패방지국 소속 직원의 금품 수수 등을 인정하면서도 경징계를 요구한 것은 권익위의 부패 방지 기능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과거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실 소속 행정심판위원회 등 세 기관을 한꺼번에 묶어 출범한 게 권익위다. 이 때문에 국민의 고충·민원 처리뿐만 아니라 ‘공직사회 부패 예방과 부패 행위 규제를 통한 청렴한 공직 및 사회 풍토 확립’도 권익위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다.

 

민주당, 이재오 위원장의 정치적 책임론 제기

한편 민주당은 “이재오 당시 권익위원장이 ‘국민이 함께하는 반부패·청렴 문화 확산 대책을 통해 국가청렴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겠다’고 보고해놓고 정작 이런 의혹은 왜 공개하지 않았느냐”며 정치적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비록 비위 행위가 일어난 시기는 이재오 전 위원장의 재직 때(2009년 9월30일~2010년 6월30일)가 아니지만, 각종 혐의 사실을 지원관실에서 이첩받고 조사를 한 건 그가 위원장으로 있을 때다. 이 때문에 ‘봐주기 조사’ ‘솜방망이 징계’ ‘비위 사실 감추기’ 등이 벌어진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쪽이 이런 주장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권익위가 ‘개인정보’를 이유로 들어 지원관실이 통보한 구체적 비위 혐의 내용과 권익위 자체의 조사 처리 결과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내영 권익위 대변인은 “고도의 청렴성이 요구되는 부서의 실무자가 저지른 잘못이므로 권익위는 사건을 감출 생각이 없다. 어차피 중앙징계위원회에서 결정이 나면 공개될 수밖에 없는데 왜 감추겠느냐”며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제보받은 혐의는 (의혹을 받는 직원) 본인이 부인하더라도 그대로 적시해 중앙징계위원회에 넘겼다”고 해명했다. 또 “부임 전에 벌어진 일이 문제가 됐지만, 이첩된 혐의 내용을 보고받고 이 전 위원장은 ‘커피 한 잔도 얻어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며 노발대발했다. 지금 이 전 위원장이 선거에 나선 상황에서 문제가 불거져 매우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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