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안 좋아요.”
공인중개사 김아무개씨의 첫마디였다. 기자가 지난 7월14일 경기 용인시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찾아가 테이블에 마주 앉자 그의 입에서 탄식처럼 나온 말이었다. 이 지역 아파트 시세가 화제였다. 용인시는 한때 ‘버블세븐’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수도권 집값 상승을 이끌었다. 그는 “2007년 초보다 아파트 가격이 25~30% 정도 빠졌는데, 그나마도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가격이 40% 정도 빠진 급매물 정도가 나와야 관심을 받는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값, 3개월에 30% 빠져
기자와 말을 주고받던 그는 한 건설사의 아파트 분양가 소개 전단을 책상 위에 펼쳐 보였다. 이 건설사는 부지 한 곳을 절반으로 나눈 뒤 아파트 착공 시점을 달리하면서 2003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분양했다. 그런데 분양가가 이상했다. 58평 아파트가 2003년 전단에서는 4억5천만원인데, 2008년에는 9억2천만원으로 뛰었다. 똑같은 조건의 아파트가 5년 사이에 2배 이상 오른 셈이다. 그는 “미친놈의 나라”라고 잘라 말했다. “이제 아파트 가격이 내리는 게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정상으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상’으로 돌아가는 대가는 컸다. 지난해 용인시 분양 시장에 나온 아파트 10가구 가운데 7가구꼴로 주인을 찾지 못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지역에서 만난 다른 공인중개사 이아무개씨는 한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며 “분양된 아파트에도 정작 입주한 비율은 절반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팔고 입주할 예정이던 주민들이 아파트 시장 침체로 살던 집을 팔지 못해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같은 날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강남 지역을 대표하는 재건축 아파트인 이곳 가격도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중개업소에 물어보니, 연초에 12억5천만원 수준이던 31평형 아파트 가격은 지난 3월 12억3천만원 수준으로 소폭 줄더니, 최근 거래가는 8억8천만원까지 떨어졌다. 3개월 사이에 30% 정도 가격이 빠진 셈이다. 특히 은마아파트는 지난 3월 한국시설안전연구원의 정밀 안전진단 결과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아 재건축 물꼬가 트이는 호재도 있었다. 상식대로라면 가격이 올라야 하는데, 시장은 기대를 배신했다. 이 지역에서 15년째 부동산 중개업소를 하고 있는 강봉대 부동산마트 대표는 “3월 이후에도 거래가 거의 없고 가격도 크게 떨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라서 이제야 조정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상가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김아무개 공인중개사는 “재건축을 해도 과거처럼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가 돌면서 가격이 곤두박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대체 어느 정도일까?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로부터 자료를 받았다. 서울 지역의 7월9일 아파트 매매가는 1월보다 1.64% 내렸다.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의 매매가는 1.9% 떨어졌다. 지난 7월15일 국토해양부가 내놓은 ‘6월 아파트 실거래 자료’를 살펴봤다. 국토해양부 자료는 부동산 정보업체보다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정부 자료를 보면, 부동산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3만454건으로, 앞선 2006~2009년 6월 평균보다 28.9%나 모자랐다. 특히 서울 및 강남 3구의 아파트 시장 거래량도 65.2%와 56.2%씩 크게 줄었다. 예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아파트 가격도 올해 들어 뚜렷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누리집(rt.mltm.go.kr)에 내놓은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를 보면, 서울의 4월 기준 잠정치는 139.0으로, 1월 143.2에서 3개월 사이에 3% 떨어졌다. 이 지수는 2006년 1월 시점의 가격을 100으로 놓고 있다. 강남 3구를 포함한 서울 동남권 지역에서도 3개월 사이에 지수는 129.0에서 125.2로 3%가 떨어졌다.
이번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유독 주목을 끄는 이유가 있다. 시장 상황이 대체로 우호적인데도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뚜렷이 하향세를 그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12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9%로 수정했다. 지난 4월에 나온 전망치 5.2%에 0.7%포인트를 덧붙였다. 그만큼 국내 경기의 회복세가 뚜렷하다는 뜻이다. 기본금리도 이번달까지 2.0%로 역대 최저 수준을 유지했다. 한국은행은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형성되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경기가 살아나고 금리까지 낮다면 부동산 시장에 봄볕이 들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부동산 시장에는 오히려 찬 바람이 불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이 장기 하락세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뒤집어 말하면, 아파트 가격은 무조건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막을 내렸다는 얘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동산 ‘버블’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이와 같은 주장의 근거도 어느 때보다 힘이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인구 감소를 들 수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1월에 내놓은 ‘향후 10년간 사회변화 요인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는 다시 펼쳐볼 가치가 있다. 보고서는 35~54살 인구를 주된 주택 매입 세대로 꼽으며, 이 세대의 인구 변동과 주택 가격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나타낸다고 지적했다(표 참고). 일본을 보면, 35~54살 연령대의 인구가 1990년 3685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내려갔는데, 그해는 도쿄의 주택지가격지수가 하늘을 찌르고 폭락세로 돌아선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발표하는 주택지가격지수는 기준 시점인 1976년 100에서 출발해 1990년 476.6까지 오른 뒤 줄어들기 시작해 2010년에는 253.1까지 떨어졌다. 인구 감소와 함께 땅값도 10년 사이 거의 반토막이 난 셈이다. 미국도 흡사했다. 미국의 35~54살 인구가 정점을 찍은 2007년은 미국의 대표적 주택가격지수인 케이스-실러 지수가 1996년 이후 처음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 등 다른 국가에서도 약간의 시차를 둘 뿐 유사하게 벌어졌다.
흥미로운 대목은 우리나라의 35~54살 인구가 내년에 정점을 찍는다는 점이다. 통계청은 이 세대의 인구가 내년 1657만 명까지 이르렀다가 2012년에 3만 명 정도 줄고, 2019년에는 1600만 명을 밑돌 것으로 내다봤다. 임상수 현대경제연구원 서비스산업실장은 “저출산에 따라 30~40대 인구가 줄어들면서 아파트 수요가 감소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인구도 올해 정점을 찍는 추세다. 서울시 누리집을 보면, 서울 인구는 올해 1003만8905명으로 꼭짓점을 그린 뒤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추산됐다. 2016년에는 처음으로 1천만 명을 밑도는 999만1130명까지 떨어진다는 것이 서울시의 전망이다. 이는 통계청의 전망과 거의 일치한다. 통계청이 가장 최근에 낸 우리나라 인구 전망인 ‘장래인구추계’(2007년)를 보면, 서울 인구는 2010년 100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5년에는 1001만 명으로 줄어들고, 2020년에는 99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됐다.
가계 부채도 아파트 가격의 발목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개인부문 금융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854조8천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40%에 이르는 344조원은 주택 관련 가계 부채다. 모두 규모가 엄청나서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알기 쉽게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부채액을 가처분소득과 비교해보자. 경제력에 견줘 돈을 얼마나 빌렸는지 볼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지난해 1.43배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세금을 뺀 1년치 연봉의 1.43배에 해당하는 빚을 졌다는 뜻이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도 알고 보면 가계부문의 부채가 원인 중 하나였는데, 금융위기를 앞둔 2007년 미국 가계의 금융부채 비율은 1.36배였다. 경제력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 가계의 ‘빚잔치’ 규모가 금융위기 이전 미국보다도 크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가계빚 규모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지난해까지 늘어나는 추세였다. 가계 금융부채 비율이 지난 2005년 1.29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 늘었다. 지난해에만 가계 대출이 20조9천억원 늘었다. 2007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선진국 대부분에서 가계 부채가 줄었던 것과 상반되는 움직임이다. 2007~2009년에 미국(1.36→1.26), 영국(1.72→1.68), 일본(1.12→1.08) 등 주요 선진국에서 가계 부채는 조정기를 거쳤다. 임상수 실장은 “한국의 가계가 금융권에서 추가적으로 차입을 받기에는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도 주택 가격 상승을 가로막는 변수다. 지난 7월 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7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했다. 하반기에도 한국은행이 금리를 추가로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빚내서 아파트를 구입할 동기는 더욱 사라지고, 이미 빚을 낸 사람의 이자 부담은 그만큼 올라간다는 뜻이다.
“아파트로 투기하는 시대는 저물어”
정부의 서민형 공공아파트 사업인 보금자리주택도 일반 아파트의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변수다. 정부는 2009~2019년에 150만 호의 보금자리주택을 건설해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지어지는 보금자리주택만 18만 호에 이른다.
이 밖에 올해 처음 시행된 고교선택제와 내신 위주 특목고 입시 전형도 아파트 시장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소재로 풀이된다. 고교선택제로 학생들은 거주지와 상관없이 학교를 골라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아파트 가격 상승을 이끌어온 강남 아파트의 매력도 자연스럽게 줄게 된다.
서정렬 영산대 교수(부동산금융학)는 “앞으로 아파트 시장은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며 “아파트 가격 폭등을 노리고 투기 대상으로 아파트를 구입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도 “단기적으로 2015~2016년까지 가격은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아파트를 투자 목적으로 가지면 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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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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