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휴가철, 대한항공 예약센터가 수상하다. 6월 들어 상담원 연결에 걸리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얼마 전에는 예약센터 직원들이 “대기시간 1천 초가 말이 되느냐”며 사내 게시판에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1588-2001’ 전화번호를 가운데 두고 거는 쪽과 받는 쪽 모두 아우성이다.
대기시간 한국 10분 vs 중국 35초
본격적인 여름휴가철, 공항은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성수기를 맞아 대한항공 예약센터가 ‘대기시간 1천 초’논란에 휩싸였다. 한겨레 자료
“죄송합니다. 지금은 통화량이 많아 직원 연결까지 약 10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지난 7월5일, 서울의 직장인 김아무개(32)씨는 국제선 항공권 예약을 위해 대한항공 예약센터에 전화를 했다. 곧 있을 여름휴가를 준비하려고 회사 업무 시간에 짬을 낸 참이었다. 하지만 “직원 연결에 10분이 소요된다”는 안내에 통화를 포기했다. 휴대전화로 10분을 대기하려면 시간도, 비용도 아깝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올해 1~6월에는 새벽 5시~밤 11시 국제선 상담 평균 대기시간이 평일 147초, 주말 150초였지만 6월에는 각각 214초, 276초로 늘어났다. 이는 평균치로, 이용률이 높은 낮 시간대 대기시간은 더욱 길다.
왜 이렇게 국제선 상담 대기시간이 길어졌을까? 이유는 이렇다. 대한항공 예약센터는 지난 6월1일 두 가지 정책을 단행했다. 첫 번째가 국내선 상담 업무 아웃소싱이다. 정규직 직원 296명으로 운영되던 예약센터에서 대한항공 전체 매출액의 5%에 불과한 국내선 상담 업무를 떼어냈다. 연봉 3천만~4천만원을 받는 대한항공 정규직 직원 대신 월급 167만원을 받는 아웃소싱 업체 직원들에게 국내선 상담 업무를 맡긴 것이다. 이를 위해 당분간 정규직 직원 70명을 파견 보내 아웃소싱 업체 직원을 교육하기로 했다. 이 인원만큼 국제선 예약센터 업무 인력이 줄었다.
둘째, ‘한국어 콜 통합’을 시작했다. 우선 1단계로 중국·일본 현지 콜센터에서 접수하던 한국어 콜(call·전화 통화)을 모두 한국 예약센터로 집중시켰다. 미주·유럽 콜센터의 비업무 시간대에 걸려오는 한국어·영어 전화 상담도 한국 센터로 연결된다. 한국 예약센터 상담원에게 미주·유럽·아시아 어디서 걸려오는 전화든 현지 콜센터가 해줄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해 상담 시간도 늘었다. 상담원 상담 시간은 1~6월에 평균 386초이던 것이 6월에는 426초로 늘어났다. 상담원에게 할당된 업무 목표는 1시간에 15통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4분 안에 전화를 끊어야만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평균 상담 시간이 7분을 넘어서면서 상담원도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체적인 전화량도 급증했다. 지난해까지 감소 추세를 보이던 전화 접수량이 올해 들어 크게 늘었다. 지난해 1~6월에 접수된 국제선 전화 상담은 9310건이었는데, 올해 같은 기간에는 1만1376건으로 22.2% 증가했다. 예약센터의 한 직원은 “작년 하반기부터 꾸준히 국제선 콜이 적체됐음에도 국내선 콜 아웃소싱과 한국어 콜 통합을 밀어붙였으니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충분히 예상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같은 시각 전화를 걸어도 국내와 외국의 고객 사이에 대기시간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직접 확인한 결과 7월5일 오후 5시15분에 한국에서 건 경우에는 “연결에 10분 이상 소요될 예정”이라는 안내가 나왔지만, 중국에서 건 경우는 35초 만에 연결이 됐다. 5분 간격으로 두 번 더 시도해봤는데, 그 결과 한국은 3분50초, 6분50초가 소요된다고 안내된 반면 중국은 각각 45초, 50초 만에 상담원이 연결됐다.
이는 대한항공의 ‘우선순위’ 정책에 따른 결과다. 전세계 상담 전화가 국내 예약센터 한곳에 몰리면서 대한항공은 중국·일본에서 걸려오는 한국어 콜, 미주·유럽의 비업무 시간에 걸려오는 한국어·영어 콜을 국내에서 걸려오는 전화보다 먼저 받기로 했다. 대한항공 쪽은 “해외에서 전화하는 사람이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렵게 전화한 것임을 감안해 우선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약센터의 한 직원은 “해외에서 걸려오는 전화의 상당수는 현지 여행사의 전화”라며 “여행사의 경우 확인해달라는 내용이 많아 상담이 길어지는데 이 때문에 국내 고객이 한없이 대기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조처는 한국에서 전화를 하는 고객에게 부당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대한항공 국제선 항공권을 구입할 경우 국적기이기 때문에 다른 외국계 항공사를 이용할 경우보다 비싼 가격을 주고 사게 되는데 전화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돈은 더 내고 서비스는 덜 받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이 ‘한국어 콜 통합’을 시행한 이유는 두 가지다. 회사 쪽은 ‘서비스 질 향상’을 앞세운다. “전세계 어디서나 고객이 최고 수준의 한국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시스템을 바꾼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속사정도 있다. 외국에서의 한국어 콜센터 운영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회사 쪽은 “해외 콜센터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인력을 구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고, 또 어렵게 구해 현장에 투입하면 콜센터의 복잡한 업무와 까다로운 고객 요구를 소화하기 어려워 조기에 사직하기 때문에 한국 센터를 활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예약센터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은 지난 6월19일이다. “1588-2001번 전화 해보셨습니까? 직원들 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자신을 예약센터 직원이라고 밝힌 이는 “요즘 예약센터 직원들은 건드리기만 하면 다들 터져버릴 것 같다”며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만년 밀리는 예약센터, 토요일 현재 국제선 예약 1천 초 이상 밀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국제선 문의는 20분이 넘어야 연결되는데 글로벌 콜 센터는 우선순위 바로바로 꽂힙니다. 고객 만족도 중요하지만 직원 만족은 왜 생각 안 해주시는지 궁금하고 속상합니다.”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전산센터 전경. 이 건물에서 일하는 예약센터 직원들이 6월 이후 늘어난 업무량과 폭주하는 고객 불만에 고통을 호소하고 나섰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이내 18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6월 이후 하루하루가 지옥이네요. 고객과의 소통은 이미 옛말이고요. 요즘은 기계 같습니다. 채찍질 무서워 헐떡거리며 일하는….”(isabelle) “전화가 상상 이상으로 밀리니 고객 불만이 장난 아닙니다. 화부터 내시면 응대 시간도 길어지고 악순환입니다. 전 1523초 대기까지 봤어요.”(vitamin~) “저도 첫 콜 시작 전 ‘스킬셋조회’ 누르니 1020초부터 시작하던데요.”(벙어리) “6월1일 되고 진짜 성격파탄자 다 되었습니다. 여기는 진짜 총알받이들 전쟁터 같은 곳입니다.”(대장!~) 온통 절규다. 직원들은 “대한항공 사내 게시판에 이처럼 강도 높은 비판글이 올라온 일은 유례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직원들은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쏟아냈다. “1588-2001번은 손님 부담이고 미국·중국·유럽·일본 콜은 수신자 부담이라 빨리 연결됩니까?”(쏘이밀크)라는 의혹 제기부터 “승객을 위해 한국어 서비스를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제공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현재 상황은 양질은커녕 손님들이 10분 넘도록 전화 붙잡고 기다리기 일쑤”(High Fever)라는 분석까지 다양하다.
이런 환경에서 직원들은 몸과 마음의 병을 호소한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니 고객 불만 수위가 높아져 욕설·무시·항의의 언어에 더 자주 노출된다. 미국·유럽·중국·일본 현지에서 대응하던 전화를 당겨받아야 하니 현지 업무까지 새로 익혀야 한다. 이미 6월에만 이틀에 걸친 발권 교육과 한 차례의 글로벌 교육이 이뤄졌다. 휴게 시간 간격이 길어지고 연장 근무까지 하니 목과 귀와 마음은 쉴 시간이 없다. 사내 게시판에는 우울증·성대결절·생리불순 등을 호소하는 직원들의 글이 이어졌다.
‘한국어 콜 통합 2단계’에 대한 직원들의 불안도 증폭되고 있다. 현재 새벽 5시~밤 11시에 가동되는 국내 예약센터를 24시간으로 확대 운영하려는 계획이다. 시차가 있는 해외의 한국어 콜을 모두 접수하려면 불가피한 조처다. 그 시기가 오는 9월부터라는 소문이 돌았다. 직원들은 “버텨낼 수 있을지 앞이 깜깜하다”며 절망했다. 예약센터의 한 직원은 “주위에 사직을 고려하는 직원이 속출하고 나 역시 심각히 고려 중”이라며 “회사 뜻대로 따라갈 능력이 안 되면 떠나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김혜진 대표는 대한항공 콜센터 직원의 노동강도가 갑자기 높아지는 이유를 ‘외주·용역화’에서 찾는다. 김 대표는 “업무 강도를 높이고 노동환경을 좋지 않게 함으로써 정규직 직원이 자연스레 퇴사하도록 만든 뒤 그 자리를 용역업체 직원으로 채우는 것”이 일반적인 콜센터 외주화 절차라는 설명이다. 대한항공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예약센터 직원을 정규직으로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국내선 관련 상담 업무의 아웃소싱을 시작으로 외주화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국제선 업무의 경우 정규직 직원을 비정규직화할 계획이 전혀 없다”며 “9월1일부터 한국어 콜 통합 2단계로 24시간 시행할 예정에 따라 심야 근무 형태를 검토하고 있으나 확정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현재의 혼란에 대해서는 “11월까지 국내선 업무 외주업체에 파견됐던 직원 70명이 순차적으로 복귀하면 해결될 것”이라며 “이미 7월 초에도 일부 직원이 복귀했고 9월에는 인턴 직원을 뽑아 투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장 7~8월 성수기 대책은 없어 한여름 ‘열받는 전화’는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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