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추위가 없는 땅이다. 추위·공포라는 뜻의 그리스어 ‘Phrike’에 ‘없는’을 뜻하는 ‘a’가 붙었다. 인류는 추위가 없는 땅에서 태어났다. “인류 최초의 조상들은 열대 아프리카에서 생겨났으며, 기본적으로 열대의 동물이었다. …아프리카 밖의 모든 사람들은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말했듯이 인류 계통도의 ‘단일한 아프리카인 가지’에서 뻗어나온 후손이다.”(애덤 하트 데이비스, )
60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첫 출현한 초기 호미니드는 불(이것 역시 뜨겁다)을 이용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점점 추운 지역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35만 년 전 호모에렉투스도 극한의 추위에는 적응할 수 없었다. 5만 년 전에야 현생인류는 지구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살 수 있게 됐다.
더위는 인류가 같이 지내온 친구인류가 태어난 곳은 온난한 기후의 땅이 아니었다. 수렵인간에게 먹을 것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열대기후였다. 추위는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더위는 같이 지내온 친구였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인간의 직립보행도 ‘지구가 뜨거워서’라는 설이 있다. 400만 년 전 케냐 북동부 지역의 낮 최고 평균온도는 화씨 86~95도(섭씨 30~35도)였는데, 빙하기 때도 이 정도는 유지됐다. 네발로 땅을 딛고 살던 인간은 뜨거운 지표면 열에서 벗어나 신선한 1~2m 위의 공기를 찾아 일어섰다고 한다(미국 존스홉킨스대 벤저민 패티 연구팀, 2006년). 어쨌든 목도리도마뱀이 왜 두 발로 걷지 않느냐고 묻지는 마시길.
에어컨 광고를 패러디해보자. “남자로 태어나서 더운 건 못 참아?”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더운 것 참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에어컨 없이도 잘 산다. 경기 용인에 거주하는 40대 주부 최미진(가명)씨는 아파트 18층에 산다. 처음 이사온 여름에 깜짝 놀랐다. “아침 6시부터 햇볕이 집을 데우더니 오후 2시 정도에 약간 비껴서 가는 거 같더니만 오후 4시부터 주방 쪽 베란다를 통해 다시 집을 데우는 겁니다. 아침부터 데워진 집은 저녁때까지 활활 타오르는 거 같았습니다. (피서지로) 마트에 나가 있을 때가 많았는데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먹은 돈이 다른 집 전기세보다 많이 나왔지 싶어요.” 다음해 여름에는 좀더 대비를 했다.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 하나를 빼고 모든 햇볕을 막았다. 그러고 나니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죽 지내고 있다. 에어컨 살 생각은 왜 안 하느냐. “여름은 더운 계절이다, 더운 계절에는 덥게 보내는 게 맞다는 게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에어컨 있는 집을 방문했을 때다. “에어컨 안 트나 하면서 에어컨을 쳐다보게 돼요. 더위·추위라는 게 어떤 절대적 기준이 있진 않은 거 같더라고요. 우리 집은 에어컨이 아예 없으니까 더위를 견디려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운데, 에어컨이 있으면 실내온도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지는 걸 느껴요.”
은행·백화점·호텔 등이 에어컨에 대한 기대치를 올려놓는다. 에너지시민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3곳 중 2곳이 과잉 냉방을 하고 있다. 조사한 34곳 중 과잉 냉방을 하고 있는 22곳(65%)의 평균온도는 24.15도로, 제한온도(25도)보다 0.85도 낮았다(표 참조). 조사는 여름의 초입인 6월에 이루어졌다.
지구를 덥히는 에어컨차가운 공기를 만들어내는 냉장고와 에어컨은 지구를 덥힌다. 냉매인 프레온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다. 지구온난화는 가속되고 그러면 냉장고와 에어컨은 더 팔리고…(‘음모설’ 일부 가미됨). 에어컨은 ‘열섬효과’의 주범이기도 하다. 에어컨은 일부의 공기를 식혀 다른 곳으로 빼낸다. 실외기는 땀을 무지 흘린다.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는 거리를 덥힌다.
그래서 환경운동단체 녹색연합에는 아예 에어컨이 없다. 1996년 창립 이래 ‘정관’에도 없는 이 원칙은 지켜졌다. 당연한 일은 아니다. 가끔 ‘에어컨 타령’이 불린다. 지난해에는 3층에 근무하는 만삭의 임신부가 ‘에어컨’ 이야기를 꺼냈다. 더위를 먹고 몸이 힘들어진 것이다. 녹색연합이 들어선 단독주택 건물은 정원과 붙어 있는 1·2층은 별로 덥지 않은데, 직사광선을 받는 3층은 온도가 많이 올라간다. 직원들은 한낮이 가까워지면 컴퓨터를 싸들고 1층 정원에서 일하곤 한다. 에어컨 문제가 전체회의 안건으로 올랐다. 여름은 거의 다 지나간 시점이었다. 정작 당사자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안건을 올렸지, 에어컨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해 여름이 들어서기 전에 찬찬히 준비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찬찬히 생각해보자’는 건 무슨 에어컨을 살까가 아니었다. 예산을 따로 편성해 단열공사를 하고 창문을 내자는 것이다. 에어컨을 사는 것보다 몇 배의 돈이 드는 해결책이었다. 어쨌든 예산이 넉넉지 않아 올해도 보수공사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행은 여름은 지나간다는 것. 그리고 덥게 지내는 여름이 나쁘지는 않다는 것.
한의사 이유명호씨는 여름엔 덥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여름에는 몸이 우물 같은 상태가 된다. 속은 차고 서늘해지고 열기는 피부 쪽으로 가서 화끈거린다. 그런데 피부의 열기 때문에 더운 걸 몸이 더운 걸로 착각한다.” 덥다고 차가운 것을 먹으면 더 냉해져 배탈이 난다. 더운 지방의 베트남 사람들은 찬 음식을 먹지 않는다. 중국인들도 뜨거운 차를 계속 먹어 더위를 식힌다. 더 차갑게 하지 말고 덥히는 게 우선이다. 오래된 속담이 있다. ‘이열치열’이다. 이유명호씨는 상열하냉 복식에도 반대한다. “여자는 특히 아래를 따뜻하게 해야 자궁 온도가 올라가고 오르가슴도 올라간다.”
여름은 여름다울 때 아름다워진다. 여름의 뜨거움은 추억으로 쌓인다. 여름 낮잠에 솔솔 바람을 불어넣어주던 할머니의 부채질, 툭 치면 쩍 갈라지는 수박을 한입 베어먹는 일, 푹 전 땀을 식혀주던 등목…. “햇살엔 세금이 안 붙어서 참 다행이다.”(페퍼톤스, )
모기가 억년을 살아남은 이유여름낮에 태양이 있다면 여름밤에는 모기가 있다.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는 잠을 설치게 하고, 따끔한 입맞춤은 미칠 듯한 가려움의 시작이다. 하지만 모기도 그냥 물리고 말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곤충학자 정부희씨는 집에 모기향도 피우지 않는다. 집에 곤충을 기르고 있기에 삼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야외에 나가 지내는 일이 있을 때도 모기약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권하기는 그렇긴 하죠. 그런데 아이들도 모기에 물리며 크다 보니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모기와 에어컨은 영화관에서 앞사람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앞사람이 일어나면 뒷사람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 에어컨을 켜면 켤수록 끄기는 어려워진다. 모기도 모기약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고 모기약은 그에 맞춰 더 독해진다. “(지금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모기는 한 세대가 60일로 짧기 때문에 (내성을 갖추는) 변이도 빠르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정부희씨에게 해충은 없다. 그리고 모기약 역시 해충 모기만를 가려 죽이지 않는다. 그는 ‘생물학적 방제’를 선호한다. 물고 물리는 연쇄를 자연이 해결하면 깨끗하다. “수중생태계(모기는 물에서 애벌레 생활을 한다)가 살아나야 한다. 그러면 적절하게 양이 조절된다. 그렇게 남은 것까지 박멸해서는 안 된다. 몇억년 전에 등장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있지 않겠나.”
한국존슨 테크니컬서포트팀의 서도찬 부장도 모기약의 과용은 경계한다. “모기가 죽을 때까지 스프레이를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모기는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죽어 있습니다.”
“나는 꿈에 잠길 때마다 단 몇 분만이라도 우리 집 개의 뇌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모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세상의 사물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것인가.”( ‘꿈’)
찬찬히 여름을 건너가자. 열(熱)심히. 덥게 따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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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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