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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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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위한 당대표자회 개최

44년 만에 열리는 2010년 조선노동당 당대표자회…
김일성 출생 100주년인 2012년 당대회로 이어지며 3세 승계 공식화되나
등록 2010-07-08 14:10 수정 2020-05-03 04:26
2007년 11월30일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조선노동당이 주최한 전국지식인대회. 북한에선 결정적 계기 때마다 노동당의 ‘대회’가 열렸다.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

2007년 11월30일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조선노동당이 주최한 전국지식인대회. 북한에선 결정적 계기 때마다 노동당의 ‘대회’가 열렸다.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주체혁명 위업,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 위업 수행에서 결정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당과 혁명 발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여 조선노동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를 위한 조선노동당대표자회를 주체99(2010)년 9월 상순에 소집할 것을 결정한다.”

6월26일 아침 을 통해 공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의 핵심 대목이다.

김일성을 위한 당대표자회 역사

1958년 3월3~6일 열린 제1차 당대표자회의 역사적 의미는 조선노동당 내 이견 그룹의 제거와 ‘정치적 다원성의 소멸’에 있다.

이게 뜻하는 바가 뭔지 파악하려면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조선노동당 규약을 보면, “당중앙위는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에 당대표자회를 소집할 수 있다”(30조), “당대회는 5년에 1회 당중앙위가 소집한다”(21조)고 돼 있다. 당대회는 1980년 10월 제6차 대회 이후 30년 가까이 열리지 않고 있다. 당대표자회는 조선노동당 창건 이래 1958년 3월과 1966년 10월 두 차례만 소집됐다. 요컨대 이번 당대표자회 소집은 북쪽의 현대사에 비춰 매우 이례적인 사태 전개로, ‘중대한 상황 변화’를 예고하고 있거나 이미 그런 변화가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당대표자회 소집에 각별히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당대표자회가 뭔가? 당 규약엔 “당대표자회는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에 관한 긴급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며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당중앙위원회 위원, 후보 위원 또는 준후보 위원을 제명하고 그 결원을 보선한다”(30조)고 규정돼 있다.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가늠하자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선례를 보자. 1958년 3월3~6일 열린 제1차 당대표자회의 역사적 의미는 조선노동당 내 이견 그룹의 제거와 ‘정치적 다원성의 소멸’에 있다. 북한 현대사 최대의 정치 변동으로 불리는 ‘8월 전원회의’ 사건(1956년 8월30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 당내 소련계·연안계의 축출) 이후 연안계 거두 김두봉 숙청과 ‘제3당 사건’ 등을 통해 ‘김일성 빨치산파’ 이외의 정치 세력은 뿌리가 뽑혔다. 1966년 10월5~12일 열린 제2차 당대표자회의 역사적 의미는 당시 김일성 당중앙위 위원장의 보고 ‘현 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에 압축돼 있다. 중-소 분쟁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북한의 ‘자주 노선’, 1965년 한-일 수교를 계기로 한 한-미-일 ‘남방 3각 관계'의 강화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국방 병진’ 노선의 재확인·강화가 공식 천명됐다. 김정일 시대에 ‘선군(先軍)혁명 노선’으로 좀더 강화된 형태로 제시된 ‘선군후경’(先軍後經) 발전 노선의 원형이 이때 이뤄진 셈이다. 이렇듯 두 차례의 당대표자회는 북한 체제에 강력하고도 깊은 족적을 남겼다.

그렇다면 이번 제3차 당대표자회는 북한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당중앙위 정치국이 결정서에서 밝힌 소집 이유는 ‘최고지도기관 선거’다. 정책 문제는 의제로 제시하지 않았다. ‘최고지도기관’이 뭔가? “전당의 최고지도기관은 당대회이며 당대회가 없을 때는 당대회가 선출한 당중앙위원회가 최고지도기관이 된다.”(당 규약 14조 1항) 당대회는 소집되지 않았으므로, 이번 당대표자회에서는 이를 대신하는 당중앙위를 선거하겠다는 뜻이다. 노동당 중앙위는 비상설기구인 전원회의와 상설기구인 정치국·비서국·검열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그러므로 이들 기구 구성원의 교체와 보충, 어쩌면 조직 개편 등을 하겠다는 예고인 셈이다.

북한에선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 이후 30년 동안 공식적으로는 최고지도기관 선거가 없었다. 이런 사정 탓에 당시 선출된 당중앙위원 145명 가운데 77명이 사망·해임됐고 지금은 68명만 남았다. 대부분 70~80대의 고령이다. 사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든 활동을 영도’(사회주의헌법 11조)하는 조선노동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는 오래전부터 필요했던 일이다. 하지만 1998년 9월 김정일 체제의 공식 출범 이후 오히려 국방위원회라는 ‘군복을 입은 당’을 전면에 내세운 ‘선군정치'가 맹위를 떨쳤고, 당중앙위의 존재감은 희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왜 지금인가?’라는 질문이 불가피한 이유다.

김정은 측근의 당중앙위 장악

당 중앙위 정치국은 당대표자회 소집 결정서를 통해 “주체혁명 위업,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 위업 수행에서 결정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당과 혁명 발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여”라고 추상적으로나마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뭔 뜻인가?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첫째,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의 셋째아들 김정은으로의 후계 승계 문제다. 둘째, 2012년 제7차 당대회 개최 여부다.

“혁명적 당의 위대성은 곧 영도자의 위대성”( 6월30일치 사설)이라고 강조하는 북한에서 ‘주체혁명 위업'은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져온 수령-영도자의 통치와 사실상 동의어다. 그러므로 “주체혁명 위업… 결정적 전환… 당과 혁명 발전의 새로운 요구”라는 구절을 연결해, ‘3세 후계 승계’ 가능성에 주목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이번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의 당중앙위 주요 직책 획득과 ‘3세 승계’ 공식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쪽과 ‘3세 승계' 공식화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 차원에서 김정은 측근의 당중앙위 포진이 먼저 이뤄질 것이라는 쪽으로 전망이 나뉜다.

이런 전망의 적실성 여부는 둘째 쟁점과 연결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9월 소집될 당대표자회가 당대회 대체용이 아니라 당대회를 예비하는 것이라면, 김정은으로의 ‘3세 승계' 공식화는 제7차 당대회로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4년 2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확정됐지만, 후계자 공식화는 1980년 10월 6차 당대회 때 이뤄진 바 있다. 조선노동당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2012년 9월 또는 10월에 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고, 당대회가 열린다면 후계 체제의 공고화 및 대외 개방과 관련한 새로운 노선의 천명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전망이 근거가 있다면, 올 9월 당대표자회에서부터 2012년에 이르는 시기는, 북한 현대사에서 또 한 번의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가 될 수 있다. 노동당 기관지 은 6월30일치 사설에서, 이번 당대표자회가 “당을 강화하고 그 영도적 기능과 역할을 더욱 높여 조국과 민족의 찬란한 미래를 펼쳐나가는 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정치적 사변”이 될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비춰보면 지금부터 2012년까지는 “당조직들이 모든 선전·선동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6월30일치 사설) 펼칠 노동당 강화 노력을 통해 열릴 정치적 공간을 활용한 김정은의 정치적 리더십 구축 과정이 북쪽 인민들로부터 검증받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재건 나설 신호탄?

이와 함께 당중앙위 정치국 결정서의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 위업 수행’이란 표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어버이 수령님(고 김일성 주석-필자)의 탄생 100돌이 되는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젖힐 웅대한 목표”( 6월30일치 사설)를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정치·군사·사상의 강국을 이미 달성했으므로 ‘경제강국'만 건설하면 ‘사회주의 강성대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김정일 위원장이 2012년 이전에 경제 재건에 우호적인 환경 조성을 위해 대외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그만큼 남쪽 정부의 사려 깊고 통찰력 있는 한반도 정세 관리가 절실하다.

이제훈 기자 한겨레 통일외교팀장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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