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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계속되는 한국전쟁을 묻다

브루스 커밍스 등 세계적 학자 설문조사…
세계사에 미친 영향으로 ‘아시아로의 냉전 구도 확산’ 꼽아,
전쟁 재발·북한체제 붕괴 가능성은 낮게 평가
등록 2010-07-02 22:11 수정 2020-05-03 04:26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을 반갑게 맞고 있다. 이 사진이 촬영된 정확한 시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을 반갑게 맞고 있다. 이 사진이 촬영된 정확한 시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

전쟁을 거친 나라는 흔히 종전기념일을 치른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종전기념일이 없다. 대신 우리는 전쟁이 시작된 날을 기억한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전쟁은 추상명사가 아니다. 전쟁은 여전히 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규정하는 물리적 조건이다. 241km에 걸쳐 중무장한 휴전선은 끝나지 않은 전쟁의 증거물이다.

현직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를 맞아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전쟁은 남북한 양쪽 집권 세력의 성격에 따라 언제든 모퉁이를 돌면 마주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다. 60돌을 맞은 한국전쟁의 의미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 오히려 하나도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전쟁이 아니라, ‘그들’이 보는 전쟁이 궁금해졌다. 여기, 한국을 연구하는 7명의 국외 학자에게 전쟁의 의미를 물었다. 은 그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가감 없이 전달한다.

설문에는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 에드 베이커 미국 하버드대 교수, 존 덩컨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 서승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 기미야 다다시 일본 도쿄대 교수, 김경일 중국 베이징대 교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참여했다. 긴 설문에 혼은 담은 답을 해준 학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결정적인 국면은?
① 미국 참전(4) ② 인천상륙작전(1) ③ 중국 참전 ④ 맥아더 해임 ⑤ 휴전 협정 ⑥ 기타(2)

① 미국 참전

박노자(이하 박): 미국 참전으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보호령 체제(일본·한국·대만)가 확립되는 등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는 지정학적 질서가 잡히게 됐다.

기미야 다다시(이하 기미야):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북한에 의해 통일됐을 것이다.

서승

서승

서승(이하 서): 내전이 국지적인 국제전으로 전환되면서 민족문제에 대한 외부의 힘이 지속적으로 작용하게 되었으며, 한반도가 동아시아 냉전의 최전방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정치는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존 덩컨(이하 덩컨): 남과 북은 어떤 식으로든 군사 충돌을 했을 것이다. 만약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통일됐을 것이다.

② 인천상륙작전

김경일(이하 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 국면이 결정적으로 바뀌었고, 결국 역사의 흐름이 바뀌게 되었다.

⑥ 기타

에드 베이커(이하 베이커): 가장 주요한 변수는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나눈 뒤 이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쟁은 막을 수 있었다.

브루스 커밍스(이하 커밍스): 미국과 소련은 남과 북에 서로 적대적인 정권이 생기게 했고, 한국 사람이 스스로 일본 식민 잔재를 청산할 기회를 빼앗았다. 미국과 소련의 영향으로 한반도 식민 잔재 청산 문제는 오히려 악화했고, 남과 북의 정치 상황은 정반대 길을 가게 됐다. 남과 북에는 1930년대 일제에 부역한 이와 저항한 이가 각각 지도자로 등장하게 됐다. 이렇게 식민 잔재 문제는 심화했고, 결국 한국전쟁은 불가피한 문제가 됐다.



한국전쟁이 세계사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① 세계 냉전 구도의 아시아로의 확산(3)
② 이념적 대결로 인한 제3세계 국가의 독재 정당화(1)
③ 미국의 군사적 개입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집단적 군사동맹 체제 강화
④ 일본 재무장화와 민주적 질서 왜곡
⑤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군사력 대결 격화(1)
⑥ 기타(2)

① 세계 냉전 구도의 아시아 확산

박: 한반도로 확산된 냉전적 구도는, 지금 중-미 패권 경쟁 구도로 변모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아직도 해체되지 않고 있다. 그만큼 한국전쟁을 계기로 해서 공고화된 것이다.

기미야: 여러 가지 복합적 의미를 지닌 전쟁이었으나, 이 표현이 가장 포괄적이다.

김: 한국전쟁으로 세계 냉전 구도가 최종적으로 고착됐고 그 뒤 냉전이 이어질 수 있었다.

② 이념적 대결로 인한 제3세계 국가의 독재 정당화

덩컨: 냉전은 1950년 6월25일 이전에도 이미 아시아까지 번졌다. 다른 변수들도 모두 중요하고, 냉전 및 한국전쟁과 연관된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과 대만, 베트남 등에서 독재정권을 지원한 점은 한국전쟁과 가장 직접적 관계가 있다.

⑤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군사력 대결 격화

베이커: 역사적인 인과관계는 복잡해 분석해내기 어렵다. 그러나 많은 점이 이 문제와 연결된다.

⑥ 기타

서: 한국전쟁은 미국에 ‘승리 없는 전쟁’으로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고, 그 굴욕이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 각처의 국지전에서 승리에 집착하게 했다. 이는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낳게 했으며, 세계 평화를 위태롭게 했다. 또한 베트남 전쟁에서 이라크 전쟁까지 ‘대의가 없다면 초강대국 미국의 무력으로도 군사적인 승리는 어렵다’는 교훈을 남겼다. 냉전 확대나 일본의 재무장은 한국전쟁 전에 이미 시작한 과정이라서 한국전쟁이 이를 촉진했을지 모르나, 원인은 아니다.

커밍스: 세계사에서 한국전쟁의 가장 큰 영향은 미국의 국방 조직 확장이었다. 1950~51년 미 국방비는 네 배 증가했다. 미국은 ‘평화시’에도 국내는 물론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에도 많은 수의 상비군을 두게 됐다. 여러 측면에서 한국전쟁으로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 등장했다.



한반도의 평화 공존과 통일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강조점을 두는가?
① 우선 통일보다 평화에 먼저 가치를 둔다(2)
② 분단 상황에서 평화가 불가능하므로 통일에 우선적 가치를 둔다
③ 단기적으로는 평화에, 장기적으로는 통일에 가치를 둔다(4)
④ 기타(1)

① 우선 통일보다 평화에 먼저 가치를 둔다

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민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전쟁은 이전과 비할 수 없는 파괴력을 지녔으며, 더구나 좁은 한반도 지형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모두에게 결정적 파멸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평화를 담보하는 조건에서 소통과 교류만 이루어진다면 통일은 언젠가 실현될 수 있다.

김: 한반도에 진정한 의미의 평화 공존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통일로 가는 길이 그만큼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일만 추구하면 갈등과 충돌을 겪을 수 있다.

③ 단기적으로는 평화에, 장기적으로는 통일에 가치를 둔다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

박: 돌연한 통일은 재앙이 된다. 평화 체제를 구축해나가면서 장기적으로 통일 준비를 해야 한다.

기미야: 단기적으로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은 가장 위험부담이 크다.

베이커: 평화는 통일보다 중요하다. 평화가 없으면 겪게 될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평화 없는 통일은 무력으로만 가능하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

덩컨: 통일로 이어지는 평화가 한반도 문제의 항구적 해결을 위한 가장 실천적인 접근이다.

④ 기타

커밍스: 평화통일이 유일하게 가능한 대안이다. 전쟁은 한반도와 일본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핵전쟁까지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통일에 앞서 남북한에 긴 화해의 시간이 필요하다. 남한 지도자들은 1998~2008년의 주요한 원칙들을 이해했고, 이에 따라 남북관계에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청와대는 이런 현명한 정책들을 대부분 부정했다. 한반도는 냉전 상황으로 돌아갔다.



독일과 베트남의 사례를 보면, 무력통일 혹은 한쪽 체제의 붕괴를 통한 선거라는 급격한 통일 과정을 거쳤다. 한반도에서는 이와 달리 점진적·단계적 통일 방안이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
① 가능성이 높다 ② 가능한 편이다(3) ③ 보통이다(1) ④ 가능하지 않은 편이다 ⑤ 가능하지 않다 ⑥ 기타(3)

② 가능한 편이다

덩컨: 급속한 통일은 불가능하다. 남북 모두 독일의 경험을 배웠기 때문이다. 남북이 신뢰를 구축하고 이견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베이커: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최선의 대안이다.

박: 제일 선호하는 통일 방법이다. 하지만 한국 지배계급의 집단적 근시안, 단기이윤 집착, 대북 대결을 이용하려는 극우의 존재 등으로 인해 이런 통일 방법이 가능하더라도 실현 확률은 아주 높은 편은 아니다.

③ 보통이다

기미야: 독일과 베트남의 통일에도 그만큼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제3의 방식에 따른 점진적 통일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 체제 붕괴에 따른 혼란스러운 통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⑥ 기타

서: 가능하게 해야 한다. 통일 방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실질이 중요하다. 즉 어떻게 분단으로 말미암은 고통과 상처를 줄이고, 제3자(외세)의 개입과 이용을 허용하는 민족 대립을 줄이고, 운명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김: 점진적·단계적 통일은 이상이다. 현실은 늘 이상을 깨뜨린다. 그렇더라도 점진적·단계적 통일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결국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실현해야 한다.

커밍스: 독일 통일은 소련이 동독 체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동독에 주둔한 36만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한에는 외국 군대가 없지만, 어떤 통일 방식이라도 북한의 독립적인 대규모 군대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은 남북의 상호 존중과 화해, 무력 사용 포기라는 과정을 거쳐서만 가능하다.

전쟁 이후 분단이 장기화하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나라는?

기미야: 남한과 북한이다. 분단과 통일의 당사자는 남북한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주위 국가들이 통일을 바라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박: 미국이다. 소련의 망국 이후에 미국이 대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아 북한이 핵개발과 군대 위주의 사회(‘선군’ 정책)로 나아가게 했다. 그렇기에 국제 냉전은 끝났어도 한반도 통일 문제에 획기적 진전은 없었다.

서: 남북과 미국이다. 특정한 정치 헤게모니를 관철하려는 정치적 욕망에 사로잡혀 외세의 이용물이 되고 마는 우리 안의 정치적 리더십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 그러나 강대국은 자국의 통합과 행복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관철하고 편협한 국익의 최대화에 집착한다. 약소국을 한낱 수단으로 여겨, ‘분할 통치’(Divide and Rule)를 일삼는 초강대국의 탐욕에도 큰 책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힘을 가졌기에 책임도 클 수밖에 없다.

베이커: 미국과 소련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남과 북의 책임도 크고, 중국과 일본의 책임이 가장 적다.

덩컨: 미국과 중국이다. 남북과 미·소·중·일 등 여섯 나라 모두에 책임이 있지만, 외국 가운데서는 미국과 중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 두 나라의 영향이 일본과 옛 소련·러시아의 영향보다 크기 때문이다.

김: 어느 나라라고 찍어 말하기 어렵다. 분단의 장기화는 복합적 요소에 의한 것이지 어느 한 나라에 좌우돼 이뤄진 것이 아니다.

커밍스: 지난 60년 동안의 혼란에 대해 어느 한 나라 혹은 하나의 이유를 꼽을 수 없다. 어느 나라도 한반도 통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어느 나라도 한반도 통일을 위해 자신의 중대한 이해관계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통일에 신경 쓰는 유일한 민족은 한민족뿐이다. 그러나 60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남북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일을 위해 자신의 이해를 희생할 의지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불행히도 핵심은 통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분단된 상태에서 일상을 살아가려는 의지보다 강하지 않다는 점이다. 분단은 두 개의 한국에 깊숙이 자리를 잡아버렸다. 남북의 한국인이 지난 6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분단과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어떻게 점진적 화해 과정을 통해 분단된 민족이 통합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통일의 초석이 마련될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덕목은 인내심과 관대함, 자기반성이다. 내가 보기엔, 지난 60년 동안 남북한을 통틀어 그런 덕목을 실천한 지도자는 한 명뿐이었다. 그는 김대중이다.

왼쪽부터 박노자, 김경일, 에드 베이커, 존 덩컨.

왼쪽부터 박노자, 김경일, 에드 베이커, 존 덩컨.



통일을 위해 앞으로 가장 많이 노력해야 할 나라는?
① 남한(5) ② 북한(2) ③ 미국(2) ④ 일본 ⑤ 중국 ⑥ 러시아 ⑦ 기타

① 남한

기미야: 지금 남북한의 힘 관계나 체제의 질을 생각하면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이것은 반드시 흡수통일이 아닐 수도 있다)이 바람직하며 현실성도 가장 높다. 이를 위해 남한이 북한을 설득하거나 주위 국가들의 반대와 간섭을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김: 통일은 결과적으로 남과 북의 문제다. 남북이 분단 이후 벌여온 게임에서 사실 한국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승자의 아량과 대승적 노력이 가장 중요하기에 한국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덩컨: 통일은 남북한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처지에서 이뤄져야 한다. 북한도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남한의 권한이 더 세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① 남한 + ② 북한

서: 민주주의적이고 평등한 가치를 표방하는 오늘의 국제정치에서 외세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해당 지역 주민들의 굳건한 의지를 대놓고 뭉개버리기는 어렵다. 당사자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외부 세력이 개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민족의 총의를 모으기 위해 남북이 더불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커밍스: 남북한 사람들만이 한반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열강은 통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③ 미국

베이커: 미국이 (역할을 떠맡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남과 북도 책임이 크다.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은 작은 편이다. 1945년 이후 일본은 한반도의 분단에 참여하거나 공략한 적이 없다. 영향력이 가장 작다. 일본이 주도적 역할을 맡는 것을 남북이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박: 대미 관계 개선 없이는 북한은 국제 자본주의 체제에 통합되지 못할 것이고, 나아가서 대남관계도 완전히 정상화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은?
① 가능성이 높다 ② 가능한 편이다(1) ③ 보통이다(1) ④ 가능하지 않은 편이다(2) ⑤ 가능하지 않다 ⑥ 기타(3)

② 가능한 편이다

기미야: 물론 북한 체제가 예상보다 견고했다는 것은 냉전 종식 이후의 20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 체제가 지속 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도 상식이다. 따라서 체제 붕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③ 보통이다

베이커: 북한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체제가 안정적이라는 점을 입증해왔다. 북한 체제 붕괴를 예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을 먹여살리지 못하는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④ 가능하지 않은 편이다

박: 강력한 민족주의 이념으로 뒷받침돼 있고,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적어도 완전한 경제적 몰락을 모면할 수 있는, 매우 공고화된 체제다.

덩컨: 북한은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지난 20여 년 동안 주목할 만한 활력(resilience)을 보였다.

⑥ 기타

서: 세상에서 모든 변수와 우연성까지 예상할 수 없으므로, 지금 판단할 수는 없다.

김: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커밍스: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뒤 20년 동안 얘기된 ‘체제 붕괴’라는 담론 전체가 쓸모없는 것이라고 본다. 분석가나 이른바 전문가들은 항상 체제 붕괴에 대해 논한다. 그들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바보 같은 비유를 든다. 북한-옛 소련 관계와 옛 소련-동독 등 서구 공산주의 국가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동아시아에서 옛 소련의 위성국가는 단 하나뿐이었다. 다름 아닌 몽골이었다. 몽골은 붕괴했다. 중국과 베트남, 북한은 여전히 존재한다. 옛 소련의 위성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식민 민족주의의 강력한 흐름에 따라 집권에 성공한 사례다. 이 흐름은 대략 30년 동안 지속됐고 점차 위세는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엄격한 반식민 민족주의자들의 지도 아래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또 북한 체제 붕괴를 주절거리는 것은 불장난을 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본다. 만약 북한 체제가 붕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북은 남에 흡수되기보다 전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① 매우 있다 ② 있는 편이다 ③ 보통이다 ④ 없는 편이다(4) ⑤ 거의 없다(2) ⑥ 기타(1)

④ 없는 편이다

박: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지배계급은 일각에서 대결을 원한다고 해도 전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기미야 다다시

기미야 다다시

기미야: 남한은 전쟁을 일으킬 생각은 없을 것이다. 북한도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체제 붕괴로 이어진다.

서: 비용 대 효율로 생각하더라도 전쟁은 파멸적 손실을 초래하며, 주변 강대국도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합리적으로 사고한다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베이커: 남북, 중국, 러시아, 일본이 그 비용을 용납하기 어렵다고 본다.

⑤ 거의 없다

덩컨: 남한이 그동안 이룬 것을 전쟁을 위해 내거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다. 북한에도 전쟁 도발은 자살행위다.

커밍스: 최근 발생한 천안함 사건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반도에서 모든 전쟁 주체가 전쟁에 나설 선택은 차단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포격으로 서울을 파괴할 수 있고 병력은 매우 깊게 설치된 수천 개 지하시설에 배치돼 있다. 전쟁을 통해 북한을 점령하고 패퇴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과 남한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북의 지상 건물을 모두 파괴할 수 있다. 60년 동안의 분단으로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잘 무장된 지역이 됐다. 그러나 전면전 가능성은 작다. 비용이 전쟁의 당사자들에게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긴장을 고조시키는 소규모 충돌이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군사적 교전의 위험은 항상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사건들은 저지됐고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⑥ 기타

김: 전면 전쟁은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국지전은 가능성이 있다. 전면전에는 국제적 억제 요소가 강하지만, 국지전은 일부 나라들이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역대 대통령 대북정책 평점
김대중 AAAAAB, 이승만 FFFFFC, 이명박 FFFDDB

설문에 참가한 외국 학자 가운데 6명은 역대 정권의 대북정책에 평점을 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두에게서 ‘B+’ 이상을 받았다. 한국전쟁을 맞은 이승만 전 대통령은 5명에게서 ‘F’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F’를 세 개 받았다. 이승만에 이어 가장 많은 ‘F’를 받은 대통령이 됐다.

이승만
기미야 다다시(C): 그 상황에서는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박노자(F): 북진통일 이외에 통일 정책이 체계화되지 못했다.
김경일(F): 무력통일에 기반한 대결정책.
에드 베이커(F):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북문제를 이용했다.
존 덩컨(F): 대립을 제외하고 정책이랄 것이 없다.
브루스 커밍스(F): 그의 정책은 무력통일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도 같았다.

박정희
기미야(A): 통일에 소극적이었으나 체제 실적에서 북한을 능가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박(C): 북한 존재를 인정하고 대북외교를 개시했다.
김(C): 북한과 진정한 의미에서 게임을 벌였다.
덩컨(C):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했다. 그러나 최소한 대화는 유지했다.
베이커(F):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관되게 대북문제를 이용했다.
커밍스(F): 무력에 의한 통일.


전두환

기미야(B): 박정희 정부의 대공산권 외교를 기본적으로 답습했지만 뚜렷한 실적은 없었다.
박(C+): 종전 정권보다 대북외교에 더 적극적이었다.
김(C): ‘한강의 기적’을 바탕으로 자신감 있는 대북정책을 구상했다.
덩컨(D):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했다. 그러나 역시 접촉은 유지했다. 베이커(F):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관되게 대북문제를 이용했다.
커밍스(F): 무력에 의한 통일.

노태우

기미야(B+): 북방외교는 평가할 수 있으나 북한을 그렇게 고립시킬 필요가 있었나?
박(B): 대북전쟁 의지를 사실상 포기하고 평화 공존의 기틀을 마련했다.
김(B): 냉전 시기 대북정책에서 가장 실질적인 성과를 이룩했다.
덩컨(C): 박정희·전두환보다는 덜 경직됐다.
커밍스(C): 북한도 동의한 중요한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에 경도됐다.
베이커(F):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관되게 대북문제를 이용했다.

김영삼

베이커(B): 대북문제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멀리 가지는 않았다.
기미야(C): 그 시기에 포용정책을 명확하게 선택했다면 남북관계는 달라졌을 것이다.
김(C): 북한에 대한 오판으로 오락가락한 대북정책.
덩컨(C): 남한 군부에 대한 내부 개혁, 권력 남용 조사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박(D+): 북한의 아사 사태를 방치했다.
커밍스(F): 김일성이 1994년에 사망했을 때 세 가지 선택이 있었다. 조문을 하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수백만 번 그를 비난하는 일이었다. 그는 세 번째를 선택했고, 그 결과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김대중

김(A+): 대승적 안목의 대북 접근법.
커밍스(A): 그의 정책은 한반도의 끔찍한 분단 상황을 진지하게 해결하려는 유일한 시도였다. 화해를 위한 완전히 새로운 경로를 제시했다.
베이커(A): 평화와 통일에 다가간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박(A): 여태까지 통일정책에 가장 기여가 컸다.
기미야(A): 포용정책은 한국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덩컨(B+): 햇볕정책은 긴장을 낮췄고, 남한 사람들을 공포로부터 해방시켰다.

노무현

커밍스(A): 김대중의 발자취를 따랐다.
김(A): 비전은 있었으나 타이밍을 못 잡은 대북정책.
박(B+): 김대중의 정책을 나름대로 잘 이어나갔다.
덩컨(B+): 김대중 정부의 업적과 같다.
기미야(B): 정책 목표는 좋았지만 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수단, 특히 대미·대일 관계를 좀더 잘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베이커(B): 김대중에 버금가지는 않지만 성과는 충분했다.

이명박

기미야(B): 북핵을 문제로 삼았다는 것은 평가할 수 있으나, 결국 북한의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결함이다.
덩컨(D): 과거 정책으로 돌아섰다. 긴장이 고조됐다.
커밍스(정권이 끝나지 않았지만 D에 가깝게 가고 있다): 2010년 현재 기준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어떤 긍정적 성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박(F): 김대중·노무현의 성과는 물론 노태우 정권의 성과까지 무너뜨렸다.
김(F): 대승적 안목이 모자라는 대북정책.
베이커(F): 앞선 두 명의 대통령이 이룬 모든 것을 잠식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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