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군의 F5 전투기 사고가 부쩍 늘면서 국민적 우려와 의혹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이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천안함 사태로 군의 전비태세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우리의 영공 방위를 책임지는 전투기, 그것도 숫자로 볼 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F5가 연이어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공군에서 발생한 11건의 사고 가운데 8건이 F5 사고다. 이는 단순한 기체 노후화의 문제인가, 아니면 다른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F5 사고와 관련된 환경적 요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구식 탈출 시스템, 블랙박스도 없어
F5는 미국의 노스롭 항공사가 1960년대 후반에 개발한 경량·저가 전투기다. 주로 제3국에 수출할 목적에서 개발됐다. 최대 속도는 마하 1.6이며, 기관포와 로켓, 그리고 기본적인 공대공 미사일과 소량의 폭탄 탑재 능력을 갖고 있다. 공격보다는 방어 목적의 방공 임무를 담당한다. 세계적으로는 대만 공군과 한국 공군이 가장 많은 F5를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인도네시아·타이·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와 브라질·칠레 등 남미 국가에서도 소수의 F5가 운영되고 있다.
우리 공군은 1974년 F5를 처음 도입했다. 1983년에는 ‘제공호’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면허 생산됨으로써 이후 우리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매김했다. 현재는 1980년대 후반에 도입된 F16과 최근 도입된 F15에 주요 임무를 넘겨준 상태다. 그럼에도 F5는 전력으로서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 북한 공군의 다수를 차지하는 미그19, 미그21 등 유사 성능 전투기에 대한 억제 전력이 필요하고, 전력 운용상 전투기의 수적 우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공군이 보유한 F5는 180여 대다. F15는 40여 대, F16은 140여 대를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다른 전투기에 비해 F5에서 더 많은 비행 사고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 첫 번째 이유로 탑재된 장비들의 낙후성을 지적할 수 있다. 최근 생산된 전투기에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탈출이 가능한 ‘조종사 사출시스템’이 장착돼 있지만, 1970년대 기술이 적용된 F5의 사출 좌석은 제한된 고도와 속도 범위 내에서만 안전한 탈출이 가능하다. F5 조종사들은 비상시 안전을 위협받는 상태에서 비행하고 있는 것이다.
최신 전투기에는 비행 사고 발생시에 모든 상황 자료가 보관되는 블랙박스가 있지만, F5에는 이런 블랙박스도 없다. 이 때문에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과 진단이 어렵다.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또 다른 유사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F5는 예방 안전 측면에서 항상 취약한 것이다.
F5에 장착된 구식의 항법장비도 사고의 취약 요소다. 요즘은 자동차에도 흔히 장착되는 위성항법장치(GPS) 시스템이 F5에는 없다. 대신 성능과 정확성이 떨어지는 구식 항법장비가 장착돼 있어 수시로 기상이 변하는 비행 환경에 취약하다. F5를 운영하는 일부 국가에서는 항법장비의 성능을 개량해 이런 문제를 해결했지만, 우리 공군은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에서 이를 제외했다.
F5 당분간 운영 불가피
이제라도 F5 성능을 개량해야 하나? 하지만 이런 결정도 결코 쉽지 않다는 현실이 공군의 고민이다. 국방부는 이미 20년 전에 F5 성능 개량 사업을 ‘타당성 미흡’의 이유를 들어 유보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F5의 잔여 수명이 많지 않으므로, 성능 개량 사업의 타당성을 인정받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F5는 전천후 작전능력과 무장능력이 취약해 현대전에서의 전술적 가치가 다른 전투기보다 낮다. 그만큼 성능 개량에 대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마련이다.
전세계적으로도 F5의 운영 대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단계이므로, 후속 군수비용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기술적 문제도 또 다른 장애 요소다. 최근의 탑재 장비들은 디지털 방식이지만 F5의 모든 시스템은 아날로그 방식이다. 성능 개량을 위한 최신 장비를 장착하는 과정 자체가 대단히 어렵고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F5 성능 개량을 하느니 차라리 국내에서 개발·생산되고 있는 FA50의 소요량을 늘려 F5 전력을 조기에 대체하는 방안이 현실적일 것이다.
결국 현 상태의 F5를 당분간 더 운영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다고 사고를 수수방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의 열악한 비행 사고 조사 및 예방 능력의 후진성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비행 사고를 근원적으로 막을 수는 없으나 이미 발생한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예방안전 관리를 한다면 유사한 원인의 비행 사고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항공 선진국에서는 비행 안전을 주 임무로 하는 별도의 독립기구를 두고 있다. 선진국의 ‘비행안전기구’는 기본적으로 네 가지의 기능 조직을 갖고 있다. 사고 조사를 전담하는 사후안전팀, 사고의 교훈을 통해 유사 사고 발생을 예방하는 예방안전팀, 평시의 비행안전 관리를 주관하는 안전관리연구팀, 그리고 안전과 관련된 교육을 전담하는 안전교육팀 등이다. 나라에 따라 각 군별로 별도 조직을 가진 경우도 있고, 군 규모에 따라 3군 단일 조직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선 민간 항공까지 담당하는 통합 조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비행 사고 조사를 전담하는 상설 조직이 없어 사고 발생 때마다 임시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 따라서 제한된 기간 안에 조사를 마쳐야 하는 실정이다. 원인 규명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비행 사고는 그 원인을 ‘추정’해 조사를 마무리짓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우리의 수준은 ‘사고 조사’가 아니라 ‘사고 수사’에 머물고 있다. 현재 우리 공군은 매년 평균 2건의 비행 사고를 경험하고 있으며, 육군과 해군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비행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비행 안전 전담 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유사 사고를 예방한다면 기구 설립에 따른 예산을 수백 배 초과하는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 때마다 임시 위원회 구성최근 강원도 강릉의 F5 사고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사고 원인을 예단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기체가 온전히 수거됐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더 정확한 원인 규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F5는 비록 노후한 전투기지만, 안전관리 여부에 따라 사전에 충분히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도 비행 안전을 전담하는 기구가 설립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비행 사고로 순직한 고귀한 생명과 재산에 대한 교훈을 살리며, 앞으로 발생할 비행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많은 생명과 재산을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희우 충남대 종합군수체계연구소장·예비역 공군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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