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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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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잠수정 기지 이탈, 제대로 확인했나

감사원 비공개 보고서에서 드러난 의문점들…
잠수정 움직임 근거는 ‘관측→ 미관측→화질 불량→ 관측’이 전부?
등록 2010-06-25 15:08 수정 2020-05-03 04:26
감사원 보고서에는 TOD 영상 조작을 지시한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드러나 있다. 5월30일 천안함 합조단이 TOD 영상을 추가로 공개하고 있다. 연합

감사원 보고서에는 TOD 영상 조작을 지시한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드러나 있다. 5월30일 천안함 합조단이 TOD 영상을 추가로 공개하고 있다. 연합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작업은 과학의 영역이어야 한다. 그런데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의 발표를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는 식의 신념 문제로 치환하려는 이들이 있다. 더 한심한 대목은 이 신념의 문제를 곧장 ‘국적’이나 ‘애국심’ 논란으로까지 연결한다는 점이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6월14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참여연대가 비정부기구(NGO) 자격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견서를 보낸 점에 대해 “애국심이 있다면 유엔에 가져가 우리 조사결과가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보고서 전문은 국회 특위 위원에만 공개

천안함 침몰의 원인과 합조단의 조사결과를 지속적으로 검증해온 은, 지난 6월10일 감사원이 발표한 ‘천안함 침몰사건 대응실태’ 감사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취재했다. 보통 감사원이 정부기관에 대해 감사를 벌일 경우 감사에서 적발된 내용을 공개하고 경중에 따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한다. 지난 4월 ‘지역 토착비리 점검’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번 천안함 감사결과는 보도자료를 통해 개략적인 군 대응 실태의 문제만 공개하고 보고서 전문은 국회 천안함 진상조사특위 위원인 국회의원에게만 열람을 허용했다. 보고서에 군 기밀에 속하는 전력 배치와 무기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은 감사원의 중간보고서를 열람한 다수의 천안함 진상조사특위 위원들을 취재하면서 국민에게 보고하는 성격의 감사원 보도자료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했다.

합조단은 지난 5월20일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 발표 당시 북의 잠수함과 관련해 “서해의 북한 해군기지에서 운용되던 일부 소형 잠수함정과 이를 지원하는 모선이 천안함 공격 2~3일 전에 서해 북한 해군기지를 이탈했다가 천안함 공격 2~3일 후에 기지로 복귀한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발표 당시 북 잠수정의 이탈과 복귀를 어떻게 확인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으나, 합조단은 이 점을 북 잠수정의 어뢰로 인한 천안함 피격의 주요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감사원 보고서에는 이와 관련한 자료가 등장한다. 군이 작성한 ‘일일정보보고’에는 북 잠수함의 동향에 관해 이렇게 적혀 있다. “3월24일 상어급 잠수함 ‘미관측’, 3월26일 연어급·모함 2척 ‘화질 불량’, 3월31일 ‘관측’”

군은 합조단 발표 당시 처음 등장한 ‘연어급’ 잠수함의 실재에 대해 논란이 일자 2005년 구글어스 위성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위성을 통해 북의 주요 군 기지를 관측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사안이다. 감사원 보고서에 등장하는 일일정보보고도 ‘관측’ ‘미관측’ ‘화질 불량’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무엇인가를 통해 들여다본 결과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TOD 조작, 김태영 장관에 사전 보고 드러나

그런데 의문이 든다. 미관측과 화질 불량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미관측이란 말 그대로 관측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그 의미를 확장할 경우 관측 대상이 사라졌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화질 불량이라는 표현은 기상 악화 등의 이유로 인해 무엇인가를 관측한 정보의 질이 낮거나 시계 불량으로 관측에 실패했다는 얘기다. 미관측보다는 의미가 축소된다. 만약 합조단이 ‘확인’했다는 북 잠수함의 이탈과 복귀가, 이를 뒷받침할 다른 추가적인 정보 없이 단순히 ‘관측→ 미관측→ 화질 불량→ 관측’이 기록된 일일정보보고에만 근거를 둔 것이라면 합조단 발표의 신뢰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화질 불량’은 북 잠수함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는 판단 근거마저 흔들리게 한다. 민감한 정보 사안이어서 언론과 국민에 날것 그대로 공개할 수 없다면 적어도 국회 특위에서라도 명확히 밝혀야 할 대목이다.

또 천안함 특위 위원들이 열람한 감사보고서에는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 조작에 관여한 핵심 당사자들이 누구인지도 등장한다. 국방부 브리핑에 자주 등장해 익숙한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이 사고 발생 시각을 두고 논란이 일던 3월31일 TOD 담당 부서인 징후감시과에 밤 9시30분 이후 것만 편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초 천안함 사고 발생 시각을 9시45분으로 허위 보고한 군이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제기 이후 사고 시각을 9시30분으로 당긴 시점이었다. 문제는 원 대변인이 편집 지시를 하기 전에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 이를 보고했고, 원 대변인은 김 장관에게서 “그렇게 하라”는 지시를 받은 뒤 의도적으로 편집한 TOD 영상을 언론에 공개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의 보도자료는 “TOD 동영상이 21:23:58(실제 21:25:38)부터 녹화되어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21:33:28(실제 21:35:08) 이후의 영상만 공개함으로써 국민 불신을 초래”했다고 밝혔을 뿐, 영상 조작의 뚜렷한 책임 소재는 특정하지 않았다.

감사원의 중간발표를 통해 이상의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 새벽 합참 지휘통제실을 비웠다가 자신이 제대로 상황을 지휘한 것처럼 나중에 문서를 꾸몄다는 내용과 군이 사고 발생 시각과 TOD 영상을 조작했다는 사실 등이 드러났음에도 군은 오히려 감사원에 토론을 요구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해야 할 국회 천안함 진상규명 특위가 감사결과를 둘러싸고 특위·감사원과 국방부가 대립하는 장으로 변질될 조짐도 보인다.

언론검증위-합조단 토론회 열릴 듯

TOD 영상 조작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김태영 장관의 공격적인 언행도 그런 조짐 중 하나다. 6월11일 천안함 특위에 출석한 김 장관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합조단이 언급했던 ‘북한산 무기소개책자’( 815호 표지이야기 ‘북한산 무기 팸플릿 달랑 서류 한 장’ 참조)에 관해 묻자 “북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으시려고 많이 노력하시는거 같은데…”라고 말문을 열었다. 또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언급한 ‘400쪽짜리 보고서’의 존재를 묻자 “클린턴 쪽과 직접 협조하시죠”라고 답했다. 천안함 사고와 관련한 국방장관의 책임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원하시는 대로 물러나겠습니다. 됐습니까?”

한편, 성사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피디연합회 등 언론3단체의 ‘천안함 진상조사 언론보도 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와 합조단의 토론회는 6월24일께 열릴 예정이다. 합조단이 최근 검증위 쪽에 천안함과 어뢰추진체 등을 공개하고 질의 응답을 거친 뒤 의문점이 남으면 토론회를 여는 방식을 제안했고 검증위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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