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고건·이하 사통위)에서 내놓은 대학 시간강사 처우 개선안에 반발하면서 주무 소위원회 위원장이 사퇴해 파문이 예상된다.
정부는 올 상반기부터 사통위를 통해 ‘대학 사회의 노예직’이라 불리는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논의해왔다. 지난 5월25일 서정민 조선대 강사가 자살하면서 속도를 붙였고, 지난 6월8일 청와대에 개선안을 보고했다. △대학 시간강사의 고용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전업시간강사’를 고등교육법상 명기 △전업시간강사를 교원 확보율에 반영 △임금을 현재 전임강사의 4분의 1에서 2분의 1 수준으로 상향 조정 △국민연금·건강보헙 가입 추진 등이 뼈대였다.
하지만 사통위에서 주무를 맡은 ‘대학 시간강사 대책 소위원회’(이하 소위) 위원장을 맡은 고형일 교수(전남대 교육학)는 이튿날 “고건 위원장이 제시한 방책 가운데 전업시간강사의 고등교육법상 명기 등은 소위에서 정식으로 논의된 적도 없는데 고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폐해가 심각할 것”이라며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고 교수는 “국공립은 물론 사립 대학에 편파적으로 이익을 주고, 시간강사뿐만 아닌 대학의 교수요원 전체에 막대한 불이익을 주려는 친대학·반교수·반시간강사의 음모가 있다고 의심케 한다”며 “(사통위의) 해결책 저지”까지 주장했다.
계층·세대 간 사회 갈등 조정을 목표로 정부가 의지를 담아 내세운 사통위는 출범 반년 만에 신뢰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사통위 개선안의 ‘독소 항목’은 교과부가 제공한 것으로, 사통위가 교과부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고형일 교수와 지난 6월9일 전화 통화 및 전자우편 교환을 통한 단독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 시간강사의 법적 교원화는 당사자들이 가장 강력히 요구해온 대목인데, 전업시간강사를 고등교육법에 명기하는 방안에 반발하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 전업시간강사를 정식 교원으로 인정하면 대학들은 전임교수요원을 뽑을 때 전임강사보다는 전업시간강사부터 채용하려 할 것이다. 전업시간강사의 급료가 다소 개선되더라도 전임 교원의 대다수가 전업시간강사부터 시작해야 할 테니, 전반적 급료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교수가 되는 길도 더 험난해질 것이다. 사회 일반이 모두 나서서 저지해야 한다.
(전임교수요원 수는 교육의 질과 직결된다. 현행법은 학생 20명당 교원 1명을 기준으로 하지만, 국내 140개 대학의 교원 충원율은 60%정도다. 교원 충원율을 토대로 대학 평가를 받고, 정부와 공공기관의 각종 연구 프로젝트를 따낸다. 개선안대로라면 시간강사로 교원의 몸통을 채워도 견제할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 같은 교원일 경우, 전임강사보다 전업시간강사를 우선 채용할 거란 말인데.= 현재 고등교육법상 대학 교원의 직제는 교수·부교수·조교수 아래 전임강사를 두고 있다. (1977년 시간강사가 최하위급 교원에서 배제된 이후 유지돼왔다.) 이 때문에 대학들은 전임교수요원을 충원할 때 외국처럼 조교수급에서부터 채용하지 않고 전임강사급에서부터 채용한다. 교수 전체의 인건비가 훨씬 덜 들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특히 사립대가 문제 아닌가.= 사통위 방책은 국공립 대학에 우선 적용해 막대한 재정 지원을 병행한다고 한다. 그런 돈이 있다 하더라도 사립대학은 문제다. 만성적 재정난을 겪고 있는 사립대학들이 대처하는 길은 전업시간강사로 교원을 충원하는 것밖에 없다. 수많은 일반 시간강사마저 알량한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릴 것이다.
(2010년 한국 대학 전임강사의 연봉은 5천만원대다. 반면 개선안에 따른 전업시간강사가 받을 연봉은 2천만원대가 된다.)
- 개선안에서 말한 전업시간강사의 대상은 누구인가.= 주당 9시간 이상을 강의하는 박사급 1만1천 명이다. 현재 시간강사는 전체 7만2천여 명이다. 이 가운데 박사 학위 여부를 떠나 전업 강사(주당 9시간 이상 강의)만 2만3천 명, 마흔살이 넘은 박사 학위 소지 전업 강사가 5천 명, 이 5천 명 가운데 문사철(인문·사회) 전공자만 2천 명 정도 된다.
(이 수치들은 사통위가 시간강사 ‘구제’ 또는 ‘지원’ 대상을 2천 명 또는 5천 명 등으로 바꿔온 배경을 말한다.)
- 이런 개선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뭔가.= 지난 5월 소위 회의에 교과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전업시간강사를 고등교육법상 명기하는 안을 설명했다. 교과부가 당시 회의를 비공식으로 하고, 발제 자료도 모두 회수해갔다. 그때 소위 위원들은 전부 반대했다. 아주 위험한 발상이고 개악이니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회의록에도 기록돼 있다. 소위가 따로 보고서를 고건 위원장에게 제출하지 않았다. 사통위 계층분과위원회에서 회의록을 토대로 만들었을 것이다. 회의록은 고건 위원장도 보았을 것이다.
- 결국 교과부의 뜻대로 움직였다는 얘기인가.
=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고, 소위를 들러리 세웠다는 점이 문제다. 교과부가 6월 안에 발표한다는 개선책이 사통위의 개선안과 연관된 것인지는 모른다.
(사통위는 청와대 보고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5월 초 고형일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고 교육 전문가 6명이 참가하는 ‘대학 시간강사 대책 소위원회’를 구성해 대책을 검토해왔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소위는 물론, 소위가 논의 대상으로 참여시킨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도 “우리도 결국 들러리였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형세가 됐다. ‘통합’이란 단어가 무색해진 것이다.)
- 개선안대로 하더라도 사립대에 정책을 강제할 방법이 적어 보인다.= 예산 확보 방안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정부가 2300억원가량을 마련해야 한다. 1만1천 명을 새 교원으로 뽑되, 전임강사 임금의 절반 가량을 줄 경우 필요한 예산이다. 국립대는 그중 500억원이면 된다. 이 돈을 대학에 줄 경우 1만1천 명이 시간강사로서 받았을 임금 900억원이 남는데, 이를 일반 시간강사의 4대 보험 가입, 강의료 인상 등 처우 개선에 쓸 수 있다. 그래서 예산이라도 확보하라고 압박하기 위해 위원장직을 사퇴한 것이다. 교과부는 가용한 예산이 400억원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 그래도 당초 지적한 교육의 질과 교원 환경의 후퇴는 그대로일 텐데.= 이 구상이 최종 해법은 아니다. 당장 처지가 어려우니 거치는 중간 과정이다. 정부가 이를 지속할 예산도 없을 것이다. 10년 동안이면 2조3천억원이 필요한데, 가능할까. 앞으로 10년 안에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도 있다. 그때 고등교육법을 다시 개정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현재 시간강사는 1시간당 3만5천~6만원대의 강의료를 받으며, 전체 대학 강의 시간의 33.8%를 떠안고 있다. 강의 인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교양강좌 10개 가운데 7개를 맡는다. 대학 자본이 비용 절감에 목맨 탓이 큰데, 개선안은 아예 법적으로 물꼬를 터준 셈이다.
일단 사통위는 개선안이 ‘방향’이며 ‘검토안’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고건 위원장은 청와대 보고 뒤 이 대통령이 “국공립대부터 개선 방안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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