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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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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검찰의 기울어진 잣대, 표적은 전교조



민노당 후원 교사 134명 기소 이어 파면·해임 방침…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후원한 교원은 단 한 명도 기소 안 돼
등록 2010-06-04 17:41 수정 2020-05-03 04:26
2006년 1월23일, 당시 서울 남성중학교 체육교사였던 두영택(49)씨는 ‘뉴라이트교사연합’을 창립했다. 2007년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승리연합’의 직능조직 본부장을 맡았다. 2008년 2월에는 현직 교사의 신분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한나라당 비례대표에 공천 신청을 했다. 2009년 6월, 그는 서울고등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하면서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그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경력에는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교육위 정책자문위원’이란 직책이 명시돼 있다.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인 2008년 4월 초 현직 교장 3명에게 총 112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대구 ㄱ고 교장 윤아무개씨가 500만원, 부산 ㅂ고 교장 권아무개씨가 310만원, 부산 ㅁ고 교장 박아무개씨가 310만원을 후원했다. 이같은 사실은 중앙선관위의 ‘고액기부자 명단’을 통해 확인됐다. 이들에게 후원금을 받은 이 의원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출신이다. 그는 국회의원 당선 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2005년 5월, 서울 ㄱ고등학교 국어교사 조아무개(34)씨는 민주노동당에 1만원의 후원금을 냈다. 이제 막 5년차가 된 교사로서 민주노동당이 내놓은 무상급식·무상교육 정책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마음으로 월 1만원씩의 후원을 계속하기로 했다. 주변에서 “교사도 비당원으로서 소액 후원은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중앙선관위도 정상적으로 세액공제용 영수증을 발급했기에 큰 고민 없이 후원을 했다. ‘1만원 후원’은 2008년 7월까지 이어졌다.

세 가지 사례 중 어느 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징계를 받아야 할까? 현행 국가공무원법 65조는 ‘공무원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할 수 없고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을 지지·반대하기 위한 투표 권유, 기부금 모집 등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힌트를 주자면, 위 사례 중 한 가지만 징계 대상이 됐고, 나머지 경우에는 오히려 ‘영전’을 했다.

징계 우선, 입증은 나중에?
지난 5월2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진후 위원장(앞줄 가운데)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양성윤 위원장을(앞줄 오른쪽)이 서울 영등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교과부와 행안부의 징계 방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지난 5월2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진후 위원장(앞줄 가운데)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양성윤 위원장을(앞줄 오른쪽)이 서울 영등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교과부와 행안부의 징계 방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현직 교사로서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한 두영택씨는 지난해 6월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가 됐다. 당시에도 그는 서울고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에게 310만원을 건넨 부산 ㅂ고의 권아무개 교장은 학교의 이사장이 됐다. 교장 3명에게 1120만원의 후원금을 받은 이군현 의원은 지난 5월4일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로 선임됐다.

반면 민주노동당에 월 1만원을 후원한 조아무개 교사는 해임 위기에 놓였다. 지난 5월23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는 그를 포함해 공립학교 교사 134명을 파면·해임하겠다고 밝혔다. 134명은 지난 5월6일 서울중앙지검이 민주노동당 가입과 정치자금 기부 등의 혐의로 기소한 교사 183명 가운데 현직 공립학교 교사만 추린 수다. 검찰의 기소가 끝나자마자 재판도 시작되기 전에 교과부가 해당 교사들에 대한 중징계 방침을 밝힌 셈이다.

조 교사에 대한 징계 결정은 발빨랐다. 교과부는 검찰 기소 13일 만인 5월19일 전국 시도 교육청 감사담당관 회의를 열였다. 교과부는 이 자리에서 현직 공립학교 교사 134명 전원에 대한 ‘배제징계’(파면·해임)를 결정했다. 여기엔 ‘사전 계획’이 있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5월26일 공개한 ‘민노당 가입 등 관련 교사 조치 방안’이란 제목의 교과부 내부 문건은 회의 전에 작성됐음에도 이미 회의 결과와 이후 일정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교과부가 문건에 밝힌 징계 수위는 △기소 처분된 교사 134명 배제징계(파면·해임) △기소유예 처분된 교사 4명 중징계 등이다. 또한 이후 일정으로 △5월19일 시도 감사담당관 회의를 통해 징계 방향 확정 △5월24일 시도 교육청에 공문 통보 △6월 초 부교육감 회의를 통해 진행 상황 점검 등을 명시했다. 문건에는 징계 대상자 중 노조 전임·휴직자 16명을 제외한 118명을 ‘지체 없이’ 직위 해제하라는 지시도 포함돼 있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교과부가 징계 근거와 절차, 양정 기준 등 모든 내용을 사전에 정해놓은 뒤, 시도 교육청 감사담당관 회의를 열어 이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교과부가 지방선거 직전인 6월1일에 해당 교사들을 직위해제하라는 공문을 각 시·도 교육청에 보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시·도교육청 감사담당관 회의 때 6월 초쯤으로 (직위해제 시점을) 맞추자는 얘기가 나왔을 뿐 구체적인 시기는 정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전교조 관련 사건 일지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전교조 관련 사건 일지

한나라당 관련된 수사는 시작조차 안 해

문제는 징계를 결정한 속도만 빠를 뿐, 위법 내용이나 징계 시효 등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과부는 문건에서 “당원 가입·활동에 관한 징계 시효 완성 주장은 혐의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다”며 ‘징계 우선, 후 입증’이란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교과부가 배제징계를 하겠다고 밝힌 134명 가운데 98명은 징계 시효인 2년이 지났거나 혐의 사실이 아예 없어 원천적으로 징계가 불가능하다”며 “교과부가 입증해야 할 징계 혐의를 징계 대상자에게 (무죄임을) 입증하라는 것이고 이를 해명하지 않으면 무조건 죽이겠다는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편파성 논란이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 학부모 단체는 교과부가 징계 방침을 밝힌 다음날인 5월24일 “한나라당과 관련된 정치활동을 한 교원·공무원도 수사하라”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수사 의뢰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전교조 교사들을 특정 정당 가입 혐의로 기소하고 파면·해임하면서 한나라당과 관련해 수없이 제기한 정치활동 혐의와 정치자금 후원에 대해서는 단 한 명도 기소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편파 수사”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수사를 촉구한 대상은 이군현·나경원·전여옥·김학송 등 한나라당 의원과 이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낸 교장, 두영택 당시 남성고 교사 등이다.

우선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의 경우 그의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법인 홍신학원과 관련해 의혹이 제기됐다. 홍신학원 이사이기도 한 나 의원이 2004년 무렵부터 홍신학원에 속한 서울 화곡고등학교, 화곡중학교, 화곡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등의 교사·직원들로부터 해마다 정치자금 후원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지난 3월 전교조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화곡고등학교 교사들의 연말정산 세액공제 신청 현황에 나타나는 정치후원금 지출 현황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학교 쪽은 비공개 결정을 통보했다. 화곡고등학교 차진영 행정실장은 “연말정산 서류는 교사들의 개인정보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이 현직 교장들에게 후원금을 받은 사실과 두영택 교사가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2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문제제기를 하며 검찰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당시 이 의원은 선관위 고액기부자 명단 등 증거 자료까지 제시했지만 검찰 수사에는 진전이 없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권영국 변호사는 “정부가 한쪽에는 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반해 한나라당과 관련된 쪽에는 문제제기를 해도 제대로 된 수사조차 시작하지 않는다”며 “교과부의 징계와 검찰의 기소가 편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5월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전교조 교사의 파면·해임 방침에 항의하는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5월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전교조 교사의 파면·해임 방침에 항의하는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국제사회도 우려하는 차별적 법 적용

편파성 여부를 떠나 공무원의 정치활동 금지 조항 자체에 대한 국제사회의 문제제기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월17일, 한국을 방문한 프랑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정치적 중립의 원칙에 기초하더라도 교사 등 공무원에게 근무시간 외에 정치 의사를 표현할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며 “이는 교사들이 특정 노조의 일원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도 5월27일 연례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대량 징계 사태’에 대해 공식적으로 우려의 뜻을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의 교과부가 민주노동당에 후원했다는 이유로 전교조 교사 134명을 파면·해임하기로 결정한 것에 우려를 표한다”며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법이 과도해 정치 참여 및 결사의 자유,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같은 법이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전교조 같은 단체를 표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해임될 위기에 처한 조 교사는 “이번 일로 마치 전교조가 민노당에 깊숙히 개입하고 있는 것처럼 비칠까 걱정된다”며 “파면·해임 대상이 된 교사의 대부분이 나처럼 순수하게 소액 후원을 한 교사들이란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걱정이다. 그는 “6월이면 그동안 아이들과 준비한 연극 수행평가도 해야 하고 기말고사도 치러야 하는데, 만일 직위해체 처분이 내려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5월27일 ‘전교조 교사 대량 징계’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사이, 6·2 동시지방선거 부재자투표가 진행됐다. 진실이 규명될 시간도 없이, 선거는 코 앞으로 다가왔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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