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이에 가는 게 아니고, 방콕에 가는 것도 아니고, 실롬에 가는 거야.”
사람들이 타이에 대해서 물으면 약간 짜증을 섞어서 이렇게 답하곤 했다. 어찌어찌 그곳에 머문 기간을 다 합해 보니 4달 정도는 실롬에서 살았겠다. 대개는 사톤에 있는 호텔에 머물며 실롬에 나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춤추고 놀았다. ‘감히’ 방콕을 안다거나 행여 타이 전문가라 말하진 못해도, 실롬을 ‘우리 동네’라 생각하며 살았다. 방콕의 실롬은 서울의 종로 같은 거리다.
검은 연기로 휩싸인 ‘휴일의 파라다이스’밤이면 밤마다 손등에 입장권 도장을 찍었던 클럽의 앞에서 수류탄이 폭발했다. 그곳에 가면 매일 지나던 거리의, 그것도 한 번씩은 밥을 먹던 식당 앞에도 폭탄이 터졌다. ‘까올리’(한국인)를 기억하고 “김밥”을 좋아한다고 말하던 옷가게 ‘언니’가 일하는 건물인 실롬 콤플렉스를 통해서 폭탄이 옮겨지는 것이 목격됐다. 이날의 사고로 1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다쳤다. 4월22일 인터넷 뉴스는 그렇게 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콕에 머무른 날이 지난 4월16일, 불과 열흘 남짓이 지나서 ‘우리 동네’는 전쟁터가 되었다.
“살라댕 스테이션” 혹은 “비티에스(BTS) 살라댕”. 택시기사에게 수없이 가자고 말하던 그곳에 바리케이드가 즐비했다. 택시를 타고 가던 거리는 타오르는 타이어 연기로 자욱했다. 날마다 외신이 전하는 사진엔 익숙한 거리에 낯익은 간판이 보였다. 그리운 풍경 가운데 낯선 사람들, 군인들이 총을 들고 룸피니 공원을 향하고 있었다. 방콕의 마지막 밤에 보았던 사람들, 빨간 셔츠보다 검은 얼굴이 더욱 기억에 남는 이들이 지쳐 쓰러져 잠자던 장소다.
신흥공업국의 메트로폴리스, 주소지가 없는 인구까지 합치면 1천만 명이 산다는 방콕에서, 그것도 서울로 치자면 명동이자 강남인 곳에서 총알이 날아다녔다. 쿠데타 군인에게 정권을 이양받은 선출되지 않은 정부의 군인이 ‘선거’를 요구하는 민간인을 향해서 총질을 하고 탱크로 밀어붙였다. 다리에 총알을 맞은 외국인 기자를 향해서 기어이 총격을 퍼붓고 있었다. 21세기에 아니 20세기를 포함해도, 이렇게 거대한 도시에서 이렇게 잔인한 진압이, 사실상의 내전이 일어난 적이 있었던가. <cnn> 리포터가 전하듯 외국인에게 휴일의 파라다이스이던 그곳이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중재도, 우려 표명도 없는 정부
비행기로 5시간, 서울에서 제주까지 가는 비행기삯의 서너 배를 들이면 가는 그곳은 머나먼 방콕이 아니다. 2005~2008년 타이에 입국한 외국인 가운데 한국인은 말레이시아인, 일본인에 이어 3위. 2008년 일본인 114만여 명, 한국인 88만여 명이 타이에 입국했으니, 전체 인구를 고려하면 인구당 타이를 여행한 사람은 한국이 오히려 많았다. ‘도쿄에서 방콕까지 20cm.’ 심장병에 걸린 일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살아 있는 타이 아이의 심장을 이식하는 현실을 고발한 영화 에 나오는 대사다. 신생국가 동티모르 대통령도 중재하려 애썼고, 머나먼 미국 정부도 우려를 표하고, 유엔도 대화를 요청했지만, 한국 정부는 중재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의 시민사회 어디서도, 타이 군은 비무장 민간인이 대다수인 레드 셔츠를 향해서 총을 겨누지 말라는 성명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서울에서 방콕까지 20cm, 그보다 멀지는 않을 터인데 말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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