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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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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사실상 끝



‘3대 사업’ 중 금강산 관광,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 중단…
아직 유지되는 개성공단에서도 기업들 한숨 소리
등록 2010-05-14 13:56 수정 2020-05-03 04:26

지난 5월3일 오전 현대아산과 협력업체 5곳의 직원 24명이 강원도 고성군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착잡한 표정으로 빠져나왔다. 전날인 5월2일에는 현대아산 소속의 중국동포 직원 36명이 내려왔다. 금강산지구에는 현대아산 직원 12명과 골프장 사업자인 에머슨퍼시픽 직원 4명 등 16명만이 남게 됐다. 이는 북한이 지난 4월30일 금강산지구의 부동산 동결 및 몰수 조처를 취한 뒤 “금강산 관광지구에 16명만 남기고 나머지 관광 관련 인원은 5월3일 오전 10시까지 철수하라”고 통보한 데 따른 것이다.

2007년까지 10배 이상 늘었는데…

북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이 지난 4월 금강산 관광지구 온천장 건물에 ‘동결 스티커’를 부착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2년 만에 금강산 관광,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사업 등 대표적 남북경협 사업이 좌초됐다. 연합뉴스

북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이 지난 4월 금강산 관광지구 온천장 건물에 ‘동결 스티커’를 부착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2년 만에 금강산 관광,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사업 등 대표적 남북경협 사업이 좌초됐다. 연합뉴스

지난 2007년 34만8263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끈 금강산 관광이 사실상 문을 닫게 됐다.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격 사건 이후 중단된 금강산 관광은 지난해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면서 재개가 예상됐다. 하지만 이후 관광객 안전 문제에 대한 남북의 이견으로 갈등이 지속됐고, 결국 부동산 동결 등의 조처로 언제 재개될지 불투명한 상태가 됐다.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여기에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 사업 역시 좌초된 지 오래다. 철도의 경우 2005년 12월 기본 공사를 완료한 뒤 2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2007년 12월부터 화물차 운행을 해왔지만, 2008년 11월 운행이 중단됐다. 도로 역시 개성공단을 잇는 경의선(국도 1호선)과 금강산을 잇는 동해선(국도 7호선)이 각각 2004년과 2005년 완공됐지만, 동해선은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로 통행이 없는 상태다. 남북물류포럼 김영윤 대표는 “대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물류비 절감 등 경제적 효과 외에도 사람이 오가면서 사회·문화·예술 등 분야에서 교류 협력이 확대될 수 있는 상징적 사업이었다”며 “2008년 북쪽이 개성공단을, 남쪽은 금강산 관광을 통제하면서 운행이 중단된 뒤 선로 연장은 물론 운행 재개에 대한 논의조차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과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개성공단과 함께 ‘3대 경협 사업’으로 꼽힌다. 대표적 경협 사업 두 가지가 이명박 정부 출범 2년 만에 중단된 것이다.

다른 남북경협에서도 좌절은 이어지고 있다. 2008년 평양에 최초의 남북 합영회사인 ‘평양대마방직’을 세운 안동대마방직의 김정태 회장은 3년째 자신의 공장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신변안전을 이유로 계속 방북을 허가하지 않아 2008년 2월 이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 1월에도 방북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정부 쪽에서 ‘6월 선거 이후에 방북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천안함 사건으로 이마저도 어려워 보인다”며 “이런 상황에서 남북경협은 사실상 끝났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급감한 남북 간 교류 실정은 수치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방북 인원은 2003년 1만5280명에서 2007년 15만8170명으로 10배 넘게 늘어났고 이명박 정부 취임 첫해인 2008년에도 18만6443명으로 약간 늘었지만, 2009년 들어선 12만616명으로 줄었다. 차량 운행도 20003년 8783회에서 2007년 18만3503회, 2008년 20만9149회로 늘었다가 2009년 14만8336회로 줄었다. 물동량 역시 2005년 65만8996t에서 2007년 90만3545t으로 늘었지만, 2008년 44만1599t, 2009년 23만213t으로 급감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정부에서 여러 형태로 기업의 방북을 제한하고 직접적인 물자 교역을 하지 말라고 하는 상태”라며 “남북경협은 내용적으로는 끝났고 명목만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교류 추이

남북 교류 추이

북은 임금 인상 요구, 남은 ‘기업 일’이라며 외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개성공단마저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한 대표는 “천안함 사건 이후 입주기업들이 개성공단에 위기가 올까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원청업체의 주문이 줄어들까봐 이같은 위기의식을 함부로 꺼내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개성공단에 입주한 의류업체 한 곳은 주문량의 50%를 중국 등 다른 곳으로 돌리는 등 위기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입주기업 대표는 “지난해 북쪽이 개성공단을 통제할 때만 해도 기업들이 ‘어렵다’고는 해도 철수는 고려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최근 불어닥친 남북경협의 위기로 철수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쪽이 임금 인상을 요구해 어려움이 더하고 있다”며 “북쪽은 노동자를 담보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우리 정부는 기업들이 해결할 일이라며 외면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남북경협이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3대 경협 사업에서 구체적 진전이 없는 등 양적 측면에서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은 맞다”면서도 “북쪽이 2차 핵실험을 하는 등 국제사회의 제재를 불러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고, 앞으로도 비핵화라는 원칙을 갖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과의 통화에서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으로 ‘비핵·개방·3000’(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인당 국민소득 3천달러가 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을 들고 나오면서 남북관계 경색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며 “금강산에서 피격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금강산 관광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으로 활성화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천안함 사건으로 북한을 주적으로 명기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렇게 될 경우 남북경협은 사실상 끝난다고 할 수 있다”며 “한 번 깨진 신뢰를 되돌리려면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더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익표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는 “현재 기업들은 남북경협을 계속 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이 강화되면서 과거 남북이 쌓아놓은 경제협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가 민간차원의 남북경협에 대해서는 현행법(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방북을 허락하는 등 최소한의 신뢰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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