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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가라, 대책은 묻지 마라?



대기업과 임금 격차 해마다 벌어지고 노동시간 더 많아져… 올해 지원자금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
등록 2010-05-07 14:34 수정 2020-05-03 04:26
2월18일 대전의 한 대학교에서 졸업식을 마친 학생이 학사모를 쓴 채 취업 게시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2월18일 대전의 한 대학교에서 졸업식을 마친 학생이 학사모를 쓴 채 취업 게시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젊은이들은 큰 기업에 가고 싶어하고 지방 근무를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과 사람을 구하는 기업이 ‘미스매칭’ 된다. 우리나라는 84%가 대학을 가는데, 대학 졸업 수준에 맞는 일자리만 구하려고 하니까 일자리가 부족하다.”(2009년 10월29일 ‘청년취업, 젊은이들과의 대화’)

“(중소기업에 취업하라는 것이) 눈높이를 낮추라는 것이 아니라 맞추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경험으로 다른 기업에 갈 수 있다. 정부도 관광·의료·교육 등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서 많은 취업 기회를 제공하겠다.”(2009년 11월27일 ‘대통령과의 대화’)

이명박 대통령은 청년취업과 관련해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취업하고 벤처기업을 창업하라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이 대통령은 “중소기업에 가보면 (업무) 영역이 넓어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더 많다”며 “먼저 중소기업에 가서 열심히 일하며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가지고 또 다른 기업에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5~9명 규모 사업체, 대기업 월급의 63%

하지만 이 대통령이 취업을 권하는 중소기업의 사정은 대기업에 비해 나날이 열악해지는 형편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간한 ‘2010 중소기업 현황’을 보면, 해가 갈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는 벌어지는 반면 중소기업의 노동시간은 더 많아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를 보면, 1993년 10~29명 규모의 중소기업 노동자는 대기업에 비해 75%의 임금을 받았지만, 2007년에는 그 비율이 62%로 줄었다. 또 30~99명 규모 기업에서는 같은 기간 78%에서 69%로, 100~299명 규모에서는 80%에서 76%로 떨어졌다.

노동시간 역시 차이가 커졌다. 10~29인, 30~99인, 99~299인 규모의 중소기업 노동시간이 대기업에 비해 1993년에는 각각 100%, 99%, 99%였지만 2007년에는 109%, 106%, 103%로 늘어난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가 한달 50시간을 일하면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51.5~54.5시간 일한 것이다.

2007년부터 조사 방식에 변화가 생기는 바람에 그 이전과 이후의 임금 격차 및 노동시간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게 됐다. 다만 2008~2009년 기간을 비교해보면, 임금에서는 격차가 미세하게 완화된 반면 노동시간은 차이가 더 벌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2008년 5~9인 규모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62%였다가 2009년 63%로 약간 늘어났다. 반면 노동시간은 2008년 대기업의 110%였다가 2009년 112%까지 올라갔다. 결국 더 많은 노동시간을 들여야 대기업 임금과의 격차를 유지하는 상황인 셈이다. 다른 규모의 중소기업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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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조사에서도 이같은 양상은 마찬가지다. 지난 2월 설 연휴를 맞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종사자 100명 이상 기업 224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중소기업은 한달에 3.4일 쉬었지만 대기업은 3.9일 쉬어 0.5일 차이를 보였다. 이는 전년의 0.3일 격차보다 더 커진 것이다. 설 상여금 역시 대기업 171만4천원, 중소기업 102만9천원으로, 격차가 지난해(66만4천원)보다 2만여원 늘어난 68만5천원이었다.

인천의 한 공작기계업체 김아무개 대표는 “대통령이 아무리 청년들에게 중소기업에 취직하라고 말해도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임금격차가 커 인력을 뽑기가 쉽지 않다”며 “대기업은 대졸 초임 연봉 3500만원에 야근수당, 복리후생 등을 제공하지만 중소기업은 인력난 때문에 연봉을 2천여만원에서 2500만원으로 올려도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사컨설팅회사인 머서코리아의 성기영 대표는 “최근 들어 대기업도 본인이 원하면 경력을 다양하게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입사하면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던 장점마저 희미해졌다”며 “구직자는 고액 연봉뿐만 아니라 성장 가능성, 안정성 때문에 대기업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도 지난해보다 현격하게 줄었다. 특히 창업, 기술개발, 긴급 운영자금 등을 지원하는 정책자금은 소진됐거나 신청 금액이 예산을 초과한 상태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정책자금은 지난해 5조9천억원에서 올해 2조8천억원(소상공인지원금 제외)으로 3조원 이상 줄었다. 중소기업이 자금을 받기 위해 매달 1일 각 지역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줄을 서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정책자금을 신청해도 제대로 받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미 대부분의 정책자금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신청액이 1년 예산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창업기업 지원금(1조1천억원)의 경우 4월28일 현재 2774개 업체가 1조6021억원을 신청한 상태다. 신성장기반(1조1600억원), 사업전환(1475억원), 개발기술사업화(1580억원) 등의 정책자금도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긴급경영안정자금(2500억원)만이 신청 금액 2496억원보다 4억원의 여유가 있는 상태다. 하지만 긴급운영안정자금에 포함된 재해중소기업 지원자금(200억원)을 빼면 이 역시 예산 초과 상태다.

정책자금 증액해도 지난해의 55%

자금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중소기업 자금지원에 적극적이지 않다. 김동선 중소기업청장은 최근 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4500억원 정도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예산 당국과 협의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창업 및 설비투자 분야에서 중소기업 지원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4500억원이 추가돼도 2009년의 55% 수준이다. 이에 대해 서울 구로구의 한 벤처업체 대표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정책자금뿐만 아니라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의 자금 규모가 지난해보다 줄어 대출이 어렵다”며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원자재는 현금으로 사고 납품 결제는 늦게 받아 자금회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구직자의 중소기업 취업을 도모하려면 우선 중소기업의 장점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김세종 선임연구위원은 “매년 대기업과 공기업이 흡수할 수 있는 인력은 3만 명에 불과한데, 나머지는 중소기업 대신 ‘취업 재수’를 택하고 있다”며 “정부가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과 근로환경 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기업이 경력직 채용 때 중소기업 재직 경력을 우대하거나 대기업 협력업체 직원도 대기업 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중소기업 취업을 유인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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