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1일 불이 난 유아무개씨의 집. 깨진 창문 너머로 축사가 보이고 그 뒤로 비닐에 덮인 소 무덤이 보인다. 유씨는 4월 들어 구제역으로 소를 잃고, 화재로 집을 잃고, 사랑하는 부인까지 잃었다.
한낮인데 동네가 깜깜했다. 후둑후둑 떨어지는 빗줄기에 봄꽃이 몸을 떨었다. 4월 하순 날씨로는 기상관측 이래 가장 추웠다는 4월28일, 인천 강화군 선원면 냉정리에는 비바람까지 몰아쳐 체감온도가 영하로 떨어졌다. 마을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축사는 텅 비었고 그 옆으로 소·돼지의 무덤만 거대했다. 수확을 앞둔 오이는 추운 날씨에 오그라들어 밭 또한 텅 비어 있었다. 구제역과 냉해가 이중으로 할퀴고 간 냉정리, 주민들은 냉혹한 4월에 신음하고 있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검은 하늘 아래, 더 검게 타버린 집 한 채가 싸늘하게 서 있다. 원래 1층은 창고, 2층은 가정집이었다. 지난 4월21일,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집을 전부 태웠다. 그날 오후, 이 집의 안주인인 석아무개(51)씨가 인근 농수로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2층 거실에 올라가니 깨진 창문 사이로 축사 너머 밭에 소 무덤이 보인다. 이 집에서 키우던 소 39마리를 갓 묻은 곳이다.
4월이 오기 전까지 가족은 단란했다. 유아무개(54)씨는 부인과 함께 이 집에서 소를 키우고, 인삼을 키우고, 자녀 둘을 키웠다. 처음에는 남의 집 축사 구석을 빌려 송아지 몇 마리를 키우던 것이 10년 만에 40여 마리로 불었다. 다 자란 아이들은 집을 떠나 도시로 갔고 남편은 하루 종일 밭일을 했다. 부인 석씨는 40여 마리의 소에 이름을 붙여주고 자식처럼 아끼며 아침저녁으로 돌봤다. 주민들은 “부부가 참 성실하게 일했다”고 기억했다.
4월9일, 이웃마을 한우 농가에서 제1종 가축전염병인 구제역이 발생했다. 유씨의 집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농가였다. 그때까지도 유씨 부부는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하지 못했다. 보통 구제역이 발생하면 소의 경우, 반경 500m 이내만 살처분한다. 게다가 유씨네 소들은 하나같이 건강했다. 하지만 다음날, 정부는 “구제역 발생 농가의 3km 이내에 있는 소·돼지를 살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강화군에서만 총 219개 농가, 2만9816마리의 가축이 살처분 대상이었다. 강화군에서 가축을 키우는 농가의 38%에 달한다.
4월13일, 유씨 부부는 건강한 소 39마리를 안락사시켜 땅에 묻었다. 그날부터 유씨는 매일 술을 마셨다. 주민들은 “원래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괴로우니까 먹었던 모양”이라고 했다. 부인은 그런 남편을 보며 더욱 괴로워했다.
축사 정리가 끝나던 4월20일, 유씨는 괴로운 마음에 밤새 술을 마시다가 다음날 새벽에야 집에 돌아왔다. 부인은 문을 잠근 채 열어주지 않았다. 창문을 깨고서야 집 안에 들어간 유씨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잠이 들었다. 새벽 4시, 거실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동네 주민들이 잠자던 부부를 방에서 끌어냈다. 집이 불타는 것을 본 부인은 “소도 없이, 집도 없이 이제 어떻게 사느냐”며 울다 기절했고 만취한 남편은 다시 곯아떨어졌다.
인근 병원으로 실려갔던 부인 석씨가 집에 돌아온 것은 정오가 지난 무렵이었다. 잠에서 깬 남편은 집이 불탄 사실을 알고 속이 상해 다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부부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부인은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갔다. 다음날, 석씨는 인근 삼동함천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키우던 소와 살던 집, 사랑하는 부인까지 순식간에 잃은 유씨는 장례를 치르는 3일간 울기만 했다. 장례를 진행한 성공회 냉정리교회 황세진 신부는 “많은 장례를 봤지만 이번처럼 가족들이 3일 내내 슬프게 우는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슬픔도 컸다. 한 주민은 “지금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했다. 장례식에는 흰옷을 입고 온 주민이 눈에 띄었다. 키우던 소·돼지가 살처분된 농민들의 ‘상주복’이었다.
강화군 축산농가 비상대책위원회 한재은 위원장은 “살처분 이후 농민들의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자살하는 사람이 더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건강한 소 240마리를 살처분한 김길현씨의 축사는 텅 비었다.
333세대가 모여사는 냉정리 마을은 유씨와 이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마을 토박이가 많아 대부분 이웃 사정을 훤히 안다. 하지만 이 마을에 구제역이 퍼지면서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초기에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는 이웃 주민의 눈총을 받고 있다.
주민들은 “중국에서 구제역이 유입됐다”고 믿고 있었다.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농가 두 곳은 사태 직전 중국 남부지방에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여행을 다녀온 지역은 마침 구제역이 발생한 곳이었다. 냉정리에서 축산을 하는 한 주민은 “그 사람들이 중국에 갔다와서 그 지역에 퍼져 있던 구제역 O형이 강화에도 퍼졌으니 다 그 사람들 탓”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한 주민은 중국 여행을 다녀온 농가의 초등학생 아이에게 “동네가 이렇게 된 게 다 너네 집 탓”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는 한동안 학교에 등교하지 못했다.
농림수산식품부 담당자도 “구제역 초기 발생 농가가 구제역이 발생한 중국 남부지역에 여행을 갔다왔다는 사실을 파악해 그것을 바이러스 유입 경로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확한 구제역 발생 원인은 5~6개월 뒤에야 나올 예정이다. 이미 지난 2000년 경기도 파주 일대 구제역과 2002년 안성 일대 구제역도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들에 의해 바이러스가 유입된 것으로 결론났다. 주민들은 제대로 된 검역 시설을 갖추지 못한 정부를 탓하기보다 이웃을 탓하며 반목하고 있었다.
축사 뒤편에 소를 묻고 비닐을 씌워뒀다.
4월15일 새벽, 삼순이의 진통이 시작됐다. 김길현(50)씨는 정성스레 송아지를 받았다. 어미를 닮아 건강하고 예쁜 송아지였다. 출산 뒤, 옆에 있던 김씨의 부인이 송아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미 옆에 꼭 붙어 있어. 하늘나라 갈 때 엄마 옆에라도 꼭 붙어 있어야 한다.” 그날 오후, 김씨 농장의 소 240마리가 살처분됐다. 수의사가 삼순이와 갓 태어난 새끼의 몸에 주삿바늘을 꽂는 순간 김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소를 키워 먹고산 30년 세월이 눈앞에 흘렀다. 스무 살 때 송아지 네 마리를 사서 축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송아지값은 100만원대였다. 하천 둑방에서 풀을 베어다 소를 먹였다. 1980년대 중반, 소값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라 농산물 시장이 개방된다 했다. 소를 키우던 농민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송아지를 키워 어미소를 만들고 다시 새끼를 낳아 내다팔았던 김씨의 농장도 힘들어졌다. 송아지값 폭락으로 부채가 늘어갔다. 돌파구가 없었다.
그래도 김씨는 계속 소를 키웠다. ‘좋은 소’를 키우면 인정받으리라 생각했다. 1998년, ‘낙농가를 위한 정책’을 약속한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김씨는 낙농업으로 업종을 바꿨다. 1999년, 키우던 한우를 내다팔고 젖소를 사들였다. 1억2천만원을 들여 6마리의 젖을 동시에 짤 수 있는 기계도 갖췄다. 질 좋은 건초만 먹이며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젖소를 돌봤다. 그해, 정부는 낙농진흥법을 개정해 낙농지구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고 낙농진흥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으로 전국에 낙농농가가 늘어나자 문제가 발생했다. 우유가 과잉 공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2년 10월, 낙농진흥회는 ‘잉여원유 가격차등제도’를 시행했다. 농민들은 이를 ‘쿼터제’라 부른다. 목장마다 지난 3년 평균치로 생산 쿼터를 정해 그를 넘어서는 우유는 헐값에 매수하는 정책이다. 이제 막 낙농업에 뛰어든 지 3년이 된 김씨는 좌절했다. 2년간 우유 생산량이 적다가 이제야 1600kg씩 생산하게 됐는데 김씨 농장에 할당된 쿼터는 900kg이었다. 초과 생산된 600kg은 길바닥에 쏟아버려도 적자였다. 김씨는 헐값에 농장을 처분한 뒤 수억원의 빚을 떠안은 채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1년을 방황했다.
2004년 초, 정신을 차렸다. 뒤늦게 결혼해 얻은 세 딸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김씨는 다시 송아지 몇 마리를 구입했다. 씨 좋은 소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강원도까지 가서 소를 사왔다. 한 마리, 한 마리마다 이름을 지어줬다. 세 딸의 이름을 딴 단비·가을이·하늘이도 있었다. 시련은 다시 왔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자 소값이 폭락했다. 198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체결 때보다 더 심했다. 송아지 가격은 5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김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무항생제 친환경소’ 생산에 승부를 걸었다. 직접 키운 옥수수와 값비싼 수입 건초를 먹이고 항생제를 쓰지 않으며 소를 키운 결과 한국친환경유기인증센터로부터 ‘무항생제축산물인증’을 받았다. 무항생제 쇠고기는 일반 쇠고기보다 더 좋은 값을 받았다. 김씨는 무항생제 소를 키워 인천·경기 일대의 학교 급식을 위해 남품하는 꿈을 꿨다. 550만원의 컨설팅 비용을 들여 ‘축산물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을 받을 준비도 했다.
이 모든 꿈은 2010년 4월에 물거품이 됐다. 건강하게 키운 소 240마리와 어미 뱃속에 있는 송아지 90마리를 모두 떠나보냈다. 텅 빈 축사를 바라보며 김씨는 “이제 겨우 빚을 값나 했는데… 내게 남은 것이 무어냐”고 물었다. 소를 먹이기 위해 옥수수를 키웠던 땅 1322m²(400평)는 소의 무덤이 됐다. 죽은 소가 부패하면서 가스가 발생해 앞으로 3년간은 저 땅마저 쓸 수 없다. 현재 구제역 축산농가의 보상을 요구하느라 뛰어다니는 그는 “지금 보상 요구마저 하지 않고 집에 있는다면 폐인이 됐을 것”이라며 “모든 폭풍이 지나고나면 그때서야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빈 축사를 지나 옥수수를 심지 못해 텅 빈 밭 앞에는 감나무가 심어져 있다. 김씨는 “올해 날씨가 추워서 감나무조차 잎이 나지 않는다”며 “농사까지 모두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축산농가의 고통이 너무 크다 보니 우리는 쉬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충상(56)씨를 따라 그의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축 처진 오이들이 그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다. 4월 중순이 오이 수확 시기였지만 단 한 개도 수확하지 못했다. 계속되는 추위에 잎은 오그라들었고 열매는 맺히지 않았다. 간신히 맺힌 열매도 손가락 크기를 넘지 않았다.
유씨는 10년 전부터 오이 농사를 지었다. “예전엔 소도 하고 돼지도 하고 닥치는 대로 했는데 다 잘 안 됐다”고 했다. 일조량이 많아 강화 오이는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이 많이 난다. 강화 특산물로 인기가 좋다. 유씨는 오이 비닐하우스 3동과 벼농사를 지으며 지난 10년을 버텼다. 하지만 “오이 농사 10년 만에 이번 같은 냉해는 처음”이다. 비닐하우스 구석, 찢어진 틈에서 매서운 바람이 들이쳤다.
오이 수확은 포기했다. 더 큰 문제는 벼농사다. 볍씨를 심은 지 일주일이면 못자리엔 파릇파릇 싹이 올라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는 볍씨를 뿌린 지 2주가 넘도록 아무 기척이 없다. 5월이면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심을 모가 없다. 유씨는 “생계가 벼농사에 달렸는데 올해는 모내기를 제 때 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소나 돼지를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부지방의 냉해 피해지역은 보상을 받는다는데 냉정리 주민들은 어찌 되는 것인지 물을 곳도 없다.
4월 들어 강화 지역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4월15일에는 밤 기온이 -1.8도까지 떨어졌고 4월28일에는 한낮 최고기온이 8.3도에 불과했다. 지난해 4월만 해도 비가 온 날은 5일에 그쳤고 봄볕이 좋았다.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도, 낮 최고기온이 10도 아래로 내려간 날도 없었다.
추운 날씨 속에 주민들은 고립돼갔다. 구제역 발생 이후 동네에는 ‘모임을 삼가해달라’는 펼침막이 나붙었다. 밭에 나가도 냉해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구제역 때문에 이웃 간에 모일 수도 없다. 강화로 들어서는 길목마다 도로를 통제하고 방역을 하고 있다. 하늘에 대한 원망, 이웃에 대한 원망만 쌓으며 냉정리 주민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한평생 소를 키우고 밭을 간 농민이 신음하고 있다. 이는 도시에서 팔리는 한우 가격이, 오이값이 오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농민들 삶의 문제다. 냉정리에 희망이 찾아올까. 한 축산농민은 “다시 송아지를 사서 키우려면 2~3년이 걸리는데 그때까지만 어떻게 살게 해주면 좋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황세진 신부는 “극심한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주민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보상”이라며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농민의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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