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에 김재철 ‘낙하산’ 사장을 성공적으로 투입한 뒤 연착륙을 시도하던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폭격기’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표현을 빌리자면, 폭격기 부기장 격인 김 이사장 스스로 폭격기의 ‘조인트를 깐’ 셈이다.
에 털어놓은 김 이사장의 폭탄 발언은 ‘거침없는 자백’의 성격을 띠었으나 그 내용도 표현도 모두 저열했다. “큰집”(청와대)이 김 사장을 불러다 ‘조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지난 3월8일 문화방송의 계열사·자회사 사장과 임원 인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 인사가 바로 김 사장이 “좌파 청소부”로서 “좌빨 80%를 척결”한 결과로 나타났다고 김 이사장은 밝혔다. 정권이 특정 의도를 갖고 공영방송 인사를 마음대로 휘둘렀다는 뜻이다.
결국 김 이사장의 발언은 자신의 목을 치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김 이사장은 발언이 공개된 지 사흘째인 3월19일 사퇴를 선언했다. 이에 앞서 김재철 사장은 김 이사장의 발언으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김 이사장을 형사고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이사장은 왜 이런 자충수를 뒀을까? 미디어계의 분석을 종합하면, 여권 내부의 방송권력을 둘러싼 권력투쟁과 종합편성 채널사업자 선정을 앞둔 보수 언론 사이의 투쟁이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우룡 이사장이 김재철 사장 선임으로 ‘방송 장악 코스’가 마무리되면서 용도폐기될 처지에 놓이는 한편 발언권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오버’했다는 관측이다. 김 사장은 선임되자마자 김 이사장이 앞서 앉힌 윤혁·황희만 두 본부장을 거부하겠다며 노조와 양자합의했고, 이로 인해 김 이사장과 김 사장의 갈등설이 불거진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이사장이 동아일보사가 발행하는 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얘기하다 이실직고까지 하게 됐다는 시각이다. 아직 취임식도 못한 김 사장이 고려대 선배이자 문화방송 입사 선배인 김 이사장에게 형사고소라는 무기까지 들이댄 현실도 이런 분석에 무게를 싣는다.
보수 언론 사이의 갈등설은 김 이사장 발언을 실은 매체가 라는 점에 주목한다. 종합편성 채널사업자 선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동아일보 쪽이 청와대를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는 시각이다. 김 이사장 발언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종편사업자 선정을) 금년 안에 결론을 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조선과 중앙이 쓴 김 이사장 발언을 동아는 쓰지 않은 점으로 미뤄 ‘경고의 극대화, 확산의 최소화’ 전략을 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쨌든 김 이사장의 발언에서 비롯된 이번 파문이 그의 사퇴로 수그러들기는 힘들 전망이다. ‘조인트를 깐’ 주체가 김 이사장이 아니라 청와대로 지목된 탓이다. 김 이사장 발언에 다소 과장은 섞인 듯하지만, 그가 없는 사실을 지어냈다고 보기도 어렵다. 전규찬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은 “2년 동안 이뤄진 방송 장악의 마지막 카드로 김재철 사장을 파견했는데, 역설적으로 그게 지금까지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시나리오와 음모를 드러낸 꼴이 됐다”고 평가했다.
지상파 3사 노조 연대투쟁으로 이어질까이 사건이 지상파 3사 노조의 연대투쟁으로 이어질지도 관심거리다. 문화방송 노조는 김재철 사장을 상대로 한 투쟁을 선언했고, 한국방송 새 노조는 회사 쪽의 탈퇴 회유에 발끈하고 나선 상태다. SBS 노조는 ‘대주주 전횡 저지 및 자본으로부터 방송 독립을 위한 사항을 포함한 2009년도 임단협 승리’를 내걸고 3월25일부터 닷새 동안의 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간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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