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1주년(1월20일)은 미국을 대표하는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생일을 기리는 ‘킹 목사 기념일’(1월15일)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사실 두 사람의 사진이 나란히 등장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역사 공부를 오로지 텔레비전에만 의지하는 사람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킹 목사와 함께 흑인 민권운동을 했다고 착각할 정도다.
킹의 꿈은 평화와 관용
흑인이 많이 사는 뉴욕의 할렘이나 브루클린 등지에선 두 사람의 얼굴이 박힌 티셔츠를 입은 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티셔츠 판매상은 두 사람의 초상권을 침해했을 뿐 아니라,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키는 해악까지 범했다. 킹 목사와 오바마 대통령은 피부색이 같다는 점을 빼곤 공통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킹 목사 기념일’에 맞춰 각 방송사들은 “취임을 전후해 70%를 넘어섰던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1년 남짓 만에 50%까지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앞다퉈 내놨다. 미국 유수의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군수업체의 지분을 조금씩이라도 소유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들 방송사 대부분은 오바마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다.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취임 1주년에 샴페인을 터뜨리며 환호한 건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던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군산복합체라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킹 목사의 ‘내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란 연설은 방송에서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된다. 심지어 미국의 ‘조·중·동’이라 할 극우 라디오 진행자조차 킹 목사의 ‘꿈’에 대해 말하곤 한다. 하지만 킹 목사가 남긴 수많은 반전 연설은 좀처럼 방송되지 않는다. 그가 말한 ‘꿈’이 평화와 관용이라는 점을 알기나 하는 걸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극우 라디오 진행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을 ‘사회주의자’로 몰아세운다. 의료보험 개혁 작업 때문인데, 정작 오바마 행정부가 마련한 법안의 대부분은 보험업계의 로비스트가 작성한 거나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 기다려온 ‘전 국민 의료보장’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반면 극우 매체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전쟁을 지지하는 발언을 할 때마다 이를 요란하게 칭송한다. 그러곤 테러 방지를 위해 보안규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은 전통적으로 백인에 비해 전쟁에 반대하는 성향이 강했다. 전쟁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극소수 백인들이야 전쟁을 지지할 논리적 이유가 있다. 하지만 경제적 이유 등으로 군문을 두드려야 하는 가난한 백인들이 전쟁을 반길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전쟁을 지지하는 건 애국심을 들먹이며 여론을 부추기는 언론 탓이 크다. 반면 전쟁이 이득이 될 리 없는 흑인들은 철저히 침묵을 지킨다. 혹여 일자리라도 잃을세라 반전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자제한다. 하지만 일단 투표소에서 홀로 기표용지를 마주하면, 흑인들은 대부분 ‘반전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노벨상과 함께 전해진 아프간 병력 증파킹 목사는 196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수많은 이들에게 ‘위엄을 잃지 말고 불의와 맞서라’는 영감을 심어준 게 수상 이유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혀 다른 이유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는 노벨위원회에 국방비를 삭감해 교육·의료·복지 예산으로 돌리겠다는 따위의 약속도 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되레 자신의 과업은 킹 목사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무슨 말인가? 미국 우파들의 환호 아래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과업을 ‘악과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선언하며 전쟁을 정당화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질 무렵, 미 국방부가 아프가니스탄에 3만여 병력을 증파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킹 목사의 ‘꿈’ 연설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친숙하다. 하지만 ‘꿈’ 연설이 킹 목사가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아니다.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보다 그가 흉탄에 목숨을 잃은 날을 기억하는 게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킹 목사는 1967년 4월4일 뉴욕 맨해튼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연설을 남겼다. 베트남전쟁의 불의를 폭로하고, 미국민이 내는 세금이 왜 중산층과 흑인을 위한 교육·의료·복지 예산에 쓰이지 못하는지를 낱낱이 파헤친 용감하고 격정적인 연설이었다. 전쟁 로비스트들로선 그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꼭 1년 뒤 그날, 킹 목사는 테네시주 멤피스의 로레인모텔 발코니에서 저격당했다.
킹 목사 암살사건을 치밀하게 추적해온 인권변호사 윌리엄 페퍼는 그가 암살범의 표적이 된 직접적 원인을 “간디 스타일의 인권운동가에서 적극적인 반전운동가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페퍼는 1968년 4월4일 킹 목사가 암살당하던 날 멤피스에는 미군의 악명 높은 특수부대인 ‘알파 184팀’ 소속 저격수가 배치돼 있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미 군수업계에선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당의 시카고 전당대회를 불과 몇 달 앞둔 상황에서 킹 목사의 반전 메시지가 흑인 공동체를 넘어 민주당 주류로까지 확산되면 치명적인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고 지적했다.
킹 목사는 생전에 반전 연설을 하는 게 자신에게 위해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전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정치적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지역구인 시카고에서 반전시위대와 마주쳤을 때 “모든 전쟁을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페퍼의 주장처럼 전쟁으로 이익을 챙기는 집단이 킹 목사 문제를 ‘해결’했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아주 건강히 잘 지낼 것으로 보인다.
제2·제3의 오바마를 찾아나설 것인가“노예제가 온존해 있던 시절, 노예주들은 자기가 거느리는 노예를 두 부류로 나눠 관리했다.” 지난해 2월15일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X’의 44주기 추모식에서 페퍼는 이렇게 말했다. “첫째 부류는 집안에서 일하는 노예다. 이들은 노예주의 집에 불이 나면 그 불을 끄려고 동분서주하기 마련이다. 둘째 부류는 들에서 일하는 노예다. 아직 자존심과 위엄을 잃지 않은 부류다. 이들은 노예주의 집에 불이 나면 멀찍이서 그저 바라만 본다.”
페퍼의 발언은 오늘날 미국의 평범한 시민을 분류할 때도 써먹을 수 있을 듯싶다. 미국은 정치 신인 오바마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민주당에 상하 양원의 주도권을 쥐어줬다. 그럼에도 이라크와 아프간에선 전쟁이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실망감과 배반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모욕감을 털어내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제2·제3의 오바마를 찾아나설 것인가, 아니면 저 옛날 킹 목사가 영감을 준 것처럼 자기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해낼 것인가? 식상해도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노예는 누군가 자신을 해방시켜주기를 마냥 기다리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뉴욕(미국)=매튜 라이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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