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전 컨소시엄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를 계기로 정부는 2030년까지 세계 신규 원전 시장이 430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 아래 그중 80기를 수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많은 위험과 불확실한 전제 위에 덧칠된 주관적인 희망이라는 점에서 냉정한 검토가 필요한 대목이다.
두바이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전력 수요도 줄어든다. 원전 사업에 대한 회의도 덩달아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1월30일, 두바이의 인공섬 ‘팜 주메이라’ 건설 현장에 건축자재가 방치돼 있다. 블룸버그 연합
우선 UAE 원전 건설이 갖고 있는 불확실성을 보자. 한전 컨소시엄은 2017년까지 원전 1기, 2020년까지 나머지 3기를 준공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국내 원자력계가 국내에서 누려온 여건과 UAE의 현지 여건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세계적으로 부지 선정에서 준공까지 원전의 공기는 1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사례는 이보다 훨씬 짧은 편이다. 국내 원전은 박정희 정부 시절 조성된 4개 부지 위에 덧붙이는 식으로 건설되었다. ‘전원개발특례법’처럼 송전·변전·발전 시설을 위해 개인 소유 토지를 임의 점유하거나 강제 수용하는 것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모든 행정부처의 규제를 무시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가 뒷받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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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런 혜택을 UAE에서도 누릴 수 있을까? 프랑스가 핀란드에서 진행 중인 올킬루토 원전사업이 그 답을 보여준다. 프랑스전력공사(EDF) 등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프랑스 내 원전사업을 일사천리로 진행해왔다. 그러나 그런 혜택이 없는 핀란드에서는 애초 계획보다 3년 가까이 공사 일정을 지체하고 있다.
더욱이 UAE의 경우는 최근 두바이 경제위기로 이미 전력 수급 계획을 하향 조정한 상태다. 공사비 지불 문제 등 사업의 최종 향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애초 UAE가 원전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한 배경에는 실내 스키리조트로 대표되는 두바이의 에너지 다소비형 부동산 개발과 관광산업에서 비롯된 급속한 전력 수요 증가 추세가 있었다. 지난 2006년 기준으로 UAE의 연간 1인당 전력 수요는 약 1만6천kWh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UAE가 대외적으로 공표해온 2020년 발전설비 전망치는 40GW다. 그러나 지난해 말, 두바이 경제위기로 인해 UAE 전력당국은 애초의 2020년 전력 수요 전망치를 30% 하향 조정하고, 발전설비 전망 역시 33GW로 조정했다. UAE 전력 수요의 또 다른 견인차인 인구 증가 추세도 둔화될 것이 분명하다. 공식 집계 인구 약 600만 명 가운데 파키스탄 및 인도 건설 노동자가 300만 명을 차지한다. 건설경기 거품이 무너질 경우 전력 수요는 더 급격히 둔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 아부다비 현지에서는 미래 전력 수요 전망과 원전 사업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었고, 급기야 UAE 정부는 “이번 원전사업은 UAE 국내용뿐만 아니라 잉여 전력을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접 국가에 판매할 용도로 추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UAE에서 광활한 사우디 영토로 전력을 수출하려면 양쪽의 송배전 시설을 대규모로 확충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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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로 인해 두바이는 이미 각종 건설사업에서 공기 지연과 공사비 지불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7일, 두바이 도시철도 공사를 맡아온 일본 미쓰비시-오바야시 컨소시엄은 두바이 교통당국이 지금까지 공사비 약 76억달러의 지불을 지연함에 따라 공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도시철도 공사보다 두 배의 공사 기간이 필요한 원전사업에 앞으로 두바이발 경제위기가 미칠 영향은 결국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문제다.
이번 원자력 사업은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의 동의로 체결된 ‘미국-UAE 원자력 협정’에 기반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의 정치 여건이 바뀌면 그로 인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 결정되어 추진하던 북한 경수로 건설사업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공화당으로 넘어가면서 중단됐다. 한국은 이미 1조원 이상(남북협력기금 부채 기준 11억3700만달러)의 공사비를 지출한 상태였다.
지난해 9월 미국 의회를 통과한 UAE-미국 간 원자력 협정은 의회 심의 과정에서 일정이 3개월이나 지연될 정도로 공화당 의원들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반대가 많았다. 중동의 핵확산 위험을 우려한 것이다. 북한 경수로 사업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UAE 원전사업에는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의 원전설비 사업체가 다양한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의 미 행정부와 의회가 공화당 쪽으로 전환될 경우 언제든지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는 세계원자력협회의 자료를 인용해 2030년까지 전세계 대형 원전만 430기에 이르고 시장 규모가 1200조원에 달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세계원자력협회는 2030년 세계원전건설설비를 602~1339GW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 원자력기구(NEA) 등이 제시하는 전망치(402~680GW)의 두 배다. 전망이라기보다는 국제원자력계의 희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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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기후변화 정책이 본격화되면 원자력 시장은 오히려 위축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기후변화 정책의 본격화는 어떤 형식으로든 세계경제 성장의 둔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이는 전력 수요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IEA는 2009년 세계 전력 소비량이 전년에 비해 1.6% 하락했다는 추정치를 내놨다. 대수롭지 않은 수치 같지만 세계 전력 소비량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결과다. 1970년대 오일쇼크나 90년대 아시아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줄어들지 않던 세계 전기 소비량이 미국발 신용경색의 충격으로 줄어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UAE 원전 수주는 많은 면에서 과거 북한 경수로 사업과 닮은꼴이다. 두바이 경제위기로 인한 미래 전력 수요 전망은 물론 공사 지연이나 비용 증가 위험, UAE의 전력 수급 구조 등 객관적인 여건을 따지기보다는 정치적 드라이브에 의한 의사 결정이 이뤄졌다. 원자로 설계는 웨스팅하우스에 종속돼 있고 미국 정치 여건 변화에 따라 사업이 중단될 위험도 있다. 중동 핵확산 논쟁의 거점인 이란과 대치하고 있는 UAE는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하다.
북한 경수로 사업이 진행될 때 한나라당을 위시한 보수파는 “북한 퍼주기”로 비난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와 한전은 “한국 원전의 경쟁력 대외 과시, 통일을 위한 불가피한 사업”이라는 논리로 반박했다. 프랑스의 입찰가보다 무려 160억달러나 낮은 가격에 UAE 원전 수주를 따낸 이번 일에 대해서는 10년 전과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시민단체 및 진보적 언론은 “헐값 수주”라고 비판하고 정부는 “민족 쾌거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경제적·정치적 위험이 있고 그 위험의 대부분을 한국이 부담하는 반면, 사업의 최종 결과와 무관하게 고가의 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미국 쪽 업체들은 부담 없이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업은 한전이 주도하고 한국 쪽의 투자도 상당한 만큼 국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 정치적 입장이나 민족 감정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이 사업에 대해 국회나 감사기관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석광훈 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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