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가 정부에 건의한 ‘사면·복권 청원 대상 기업인 명단’ 전체가이 확인됐다. 이 단독 입수한 ‘사면·복권 청원 대상 기업인 명단’(표 참조)을 보면, 경제 5단체가 성탄절을 맞아 청와대에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을 청원한 기업인은 모두 7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 2009년 12월1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 경제계 인사 71명의 사면을 최근 청와대에 건의했다”고 밝힌 뒤 7명이 새롭게 추가됐다는 이야기다.
2008년 광복절 이후 유죄 확정자만 31명
특히 명단에는 이미 언론에 알려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이학수 현 삼성그룹 고문 이외에도 삼성전자의 김인주 전 사장과 최광해 부사장 등 삼성 관계자가 대거 포함돼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김 전 사장과 최 부사장은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로 2009년 8월14일 서울고법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재계는 이들과 함께 역시 당시 사건 관계자인 삼성SDS의 김홍기 전 사장, 박주원 전 경영지원실장도 청원 대상에 끼워넣었다. 이건희 전 회장을 비롯한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 관련자 모두를 사면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 X파일’ 사건으로 기소됐다 최근 무죄를 선고받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불법 경영권 승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삼성은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 등 투명경영을 위한 많은 약속을 했지만 지켜진 것이 거의 없다”며 “삼성이 대국민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사면까지 거론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재계는 삼성화재 황태선 전 사장과 김승언 전 전무의 사면도 함께 청원했다. 황 전 사장은 고객에게 지급할 미지급 보험금 10억원을 횡령해 비자금으로 조성한 혐의로 2009년 6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김 전 전무는 삼성 특검의 삼성화재 압수수색 과정에서 해당 횡령 사건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역시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계는 또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전윤수 성원건설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등 그동안 각종 경제범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경제인 거의 대부분을 사면 청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김재복 행담도개발 대표이사와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 윤창열 전 굿모닝시티 대표 등 그동안 물의를 빚은 각종 게이트의 핵심 당사자가 대거 사면 청원 대상에 포함된 사실도 눈길을 끈다. 김 대표이사는 2008년 투자자들을 속여 회사채를 발행한 혐의 등으로 징역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고, 문 회장은 정치권에 3억5천만원을 제공하고 회사자금 13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005년 징역3년, 집행유예 5년형이 확정됐다. 윤창열 전 대표는 2001년 굿모닝시티 분양 과정에서 법인자금 횡령과 사기 혐의가 인정돼 2005년 징역10년을 선고받았다.
대한상의 등 경제 5단체는 이 78명의 사면 청원 대상 기업인을 크게 ‘2008년 광복절 특별사면 미반영 기업인’ 46명과 ‘신규 청원 대상 기업인’ 31명으로 분류했다. 전자는 2008년 광복절 특별사면 때 이미 청원했지만 반영되지 않은 경우다. 당시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74명이 사면·복권됐다. 신규 청원 대상은 2008년 광복절 이후 형이 확정된 경제인이라고 재계는 밝혔다.
대한상의 고위 관계자는 “사기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제인이 아닐 경우, 그리고 형이 확정된 인사 가운데 경제 살리기에 기여할 수 있는 인사를 중심으로 사면을 청원했다”며 “대상자를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과정에서 ‘누구는 넣고 누구는 뺀다’는 불만이 제기돼 애초 언급된 71명 이외에 몇몇 경제인을 새롭게 추가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재계가 내세우는 명분과 실제 사면 청원 대상자 사이에는 적잖은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과 거의 관계없는 인사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다. 추징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재산을 빼돌린 혐의로 2008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이 확정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대우그룹이 이미 해체된 상황이어서 사면된다 해도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김 전 회장은 20조원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06년 징역 8년6개월이 확정된 뒤 2008년 1월 특별사면을 받았다. 하지만 추징을 피하려고 1천억원대 재산을 은닉한 사실이 드러나 다시 기소됐다. 만약 김 전 회장이 이번 사면 대상에 포함된다면 그는 사면만 무려 네 차례 받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도 적절한 대상인지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2006년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에 추징금 1575억원을 선고받은 최 전 회장은 추징금을 거의 납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2008년 광복절에 형집행면제 특별사면 조처로 풀려났다. 최 전 회장은 사면 직후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재기의 뜻을 밝혔지만 신동아그룹은 이미 해체된 상태다. 납부하지 않은 추징금은 이자까지 더해져 이미 2천억원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최 전 회장에 대해 이번에는 특별복권을 요구하고 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정 전 회장은 2009년 5월 징역 3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2003년 9월부터 2005년 4월까지 경매 중이던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 일부를 자신의 며느리가 당시 이사장으로 있던 강릉영동대학 학생숙소로 임대하는 허위 계약을 맺어 임대보증금 72억원을 횡령한 뒤 이 가운데 27억원을 은닉한 혐의였다. 정 전 회장은 재판 도중 신병 치료를 이유로 출국한 뒤 귀국을 거부하며 일본과 카자흐스탄 등지를 떠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적절 분류 인사 또 사면 요구”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이 재계가 사면·복권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경제 살리기에 과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한 뒤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등 이미 지난 사면·복권 때 부적절한 인사로 분류돼 제외된 경제인에 대해 반복적으로 사면을 요구하는 행태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하 11도 속 헌재로 간 30만명 외침…“상식적 판단 믿습니다”
비상계엄 찬성 극우 세력만 보고 달려가는 국민의힘
현실의 응시자, 정아은 작가 별세…향년 49
“역시 석열이 형은 법보다 밥이야”…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계엄 모의’ 무속인 노상원 점집…소주 더미에 술 절은 쓰레기봉투
신세계 정용진, 트럼프 당선자 만나…“대화 내용은 공개 못해”
홍시·곶감 줄이고 식후 1~2시간 뒤 섭취 [건강한겨레]
박선원 “윤석열, 탄핵가결 전 국힘에 ‘2주 버텨달라’ 요청”
휴일 강추위…“어제보다 5~10도 낮아요” 낮 최고 2~7도
커피 애호가 몸엔 이 박테리아 8배 많아…카페인 때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