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빅브러더’가 임박했다. 조만간 ‘불법’ 꼬리표를 떼게 생겼다. ‘빅브러더’의 존재를 추인하는 작업이 국회에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시민의 인권을 옥죌 여러 법안이 소리소문 없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여야가 4대강 사업, 세종시 계획 수정, 미디어법 재논의 등을 놓고 설전을 벌이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지난 12월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두 가지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형사사법 절차 전자화 촉진법’과 ‘약식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이다. 이들 법안은 다음날인 8일 국회 본회의에 다른 99개 법안과 함께 상정됐으나 처리되지는 않았다. 한나라당이 이날 오전 국토해양위에서 4대강 관련 예산을 날치기 처리하면서 민주당이 오후 본회의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무한 융합 ‘진짜 빅브러더’의 출현두 법안은 이른바 ‘형사사법망 통합체계’ 구축의 근거법이다( 766호 표지이야기 ‘경찰은 지난여름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참조). 다시 말해 경찰과 검찰, 법원에 이르는 복잡한 형사사법 절차를 종이 문서 대신 전자 문서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기관의 전자 문서 형식을 통합하는 동시에 전산 서버들도 연계하게 된다. 종이 문서를 없앤다니 언뜻 발전적인 행정체계 개편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서로 분리된 검경의 정보 시스템을 연계할 경우 ‘1+1=2’가 아니라 ‘2+α’의 효과가 생긴다는 점을 인권단체들은 우려한다. 새 시스템은 경찰의 범죄정보관리시스템(심스)과 검찰사무전산시스템을 연계하는데, 각종 조서를 비롯한 경찰의 기본 서식은 지금까지 ‘아래 한글’ 문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뒤 첨부되는 형식이어서 현재 시스템상에서는 단일 검색으로 조서 안의 내용까지 검색할 수 없다. 법이 통과되고 새 시스템이 구축되면, 검찰과 경찰은 물론 법무부 전산 시스템까지 동일한 ‘HTML’ 형식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한 번의 검색으로 모든 정보를 찾아내 이를 엮는 게 가능해진다. 여기에 관세청과 각 지자체,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특별사법경찰권을 가진 기관의 시스템과도 연계하도록 돼 있다. 게다가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까지도 이 시스템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압수수색을 하거나 협조 공문을 보내는 등 번거로운 절차 없이도 정보 공유가 가능해진다. 모든 국가기관이 갖고 있는 국민 개인정보의 ‘무한 융합’이 이뤄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 시스템이 ‘진짜 빅브러더’라 불리는 이유다.
법무부와 검찰 등은 우선 이 시스템을 정식 기소 사건에 앞서 무면허·음주 운전 등 약식 사건 처리에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사업은 1천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시스템을 구축하고 또 이를 유지·관리하기 위해 매년 100억원 안팎의 예산이 소요된다.
법사위 심의에서 대법원 지적도 반영 안 돼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 큰 반대는 없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정보 집중과 보안상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으나 소수의 목소리였다. 정작 법안 반대의 목소리는 12월8일 본회의장에서 울려퍼졌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 법안에 대한 반대 토론에 나서 “개인의 인격권, 프라이버시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각종 정보를 수사기관이 수집·저장·공동 활용함으로써 국가적 통제와 감시가 만연한 위험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며 이 법안의 부결을 촉구했다. 이 의원은 “신속·공정·투명한 형사사법 절차 실현이 굳이 전자화를 해야 달성되는지 의문스럽다”며 “투명한 업무 처리는 상호 감시와 견제에 의해 달성할 수 있는데 형사사법 절차 전자화 촉진 법안이나 형사사법 통합정보체계 구축사업은 감시와 견제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2월7일 법사위는 두 법안과 함께 민감한 인권 관련 논란을 빚은 또 하나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다. 중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면서 유사 사건 발생 때 활용한다는 취지의 법안이다.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는 대상 범죄 12개 가운데 한 개(형법상 체포와 감금의 죄)가 삭제되고, 영장 없이 시료를 채취할 때는 이를 거부할 수 있음을 알리고 서면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추가됐으나,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대법원마저 검찰과 경찰이 따로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보관·관리함으로써 인권침해와 예산낭비가 우려된다는 의견을 냈지만, 끝내 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788호 초점 ‘범죄인 유전자 데이터베이스화의 위험’ 참조). 국회가 입법 과정에서 국가 권력기관 간 권한 다툼을 조정할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또 유전자 정보의 특성상 범죄인 본인의 것을 통해 그와 유사한 가족의 유전자 정보까지 파악 가능하게 되는 문제도 있고, 소년범에게까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게 함으로써 재사회화를 막는 낙인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법사위 심의 때 이런 의견은 반영되지 못했다.
이 법이 본회의를 통과해 여섯 달 뒤 시행에 들어가면, 앞으로 이 법이 규정하는 11개 범죄를 위반하는 이들은 물론 같은 혐의로 이미 구속됐거나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도 입안을 면봉으로 긁는 방식으로 유전자 시료를 제공해야 한다.
검찰청법 “검찰청 앞 얼씬 마라”이 밖에 아직 상임위에서 논의 중인 단계이기는 하나, 헌법적 기본권을 과도하게 규제할 것으로 우려되는 법안은 한둘이 아니다. 법사위에 올라 있는 ‘검찰청법’ 일부 개정안이 그 하나다. 판사 출신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검찰청사 근처에서 집회나 시위를 못하게 할 수 있는 신설 조항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누구든지 대검찰청, 각급 검찰청사 또는 그 부근에서 수사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그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나 사건 당사자, 소송 관계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를 모욕·비방·협박하거나, 그 밖에 법령에 위반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그런 행위를 한 사람에게는 법무부 장관이나 지검장·고검장 등이 행위를 멈추라는 명령을 할 수 있고, 이에 응하지 않을 때는 검찰직원이나 경찰이 현수막·벽보·전단·확성기 등을 없애거나 수거·견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검찰청사 부근의 집회·시위가 다른 관련 법률을 어기지 않더라도 합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새 정부 들어 용산 참사, 미디어법 등 사회 현안과 관련해 정부의 갈등 조정 기능이 떨어지면서 검찰청사 부근에서 집회나 기자회견 등이 잇따르는 데 대한 대비책으로 해석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검찰 수사가 국민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당사자에게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 입장에서는 호소도 해야 한다”며 “이를 막는 동시에 최소한의 비판도 용납하지 않고 무풍지대에서 살겠다는 것은 검찰이 국민에게서 벗어나겠다는 독립선언”이라고 비판했다.
형법이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등 기존의 법체계로도 의율이 가능한 사안에 대해 두 겹의 규제를 하겠다는 법은 또 있다.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 회의 방해 범죄의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안’이다. 이 법은 기존 형법 조항 가운데 폭행·공무집행방해·중상해·특수손괴 등의 행위를 국회 안에서 저지를 경우 더욱 세게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2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앞으로 반복될 여야 간의 극한 대치 상황에서 이 법이 폭력 사태를 막을 수 있을지, 그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이 법안은 국회 운영위에 계류 중이다.
개정된 ‘야간집회 금지’, 황당함의 극치
지난 9월 헌법재판소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야간집회 금지 조항(해가 뜨기 전이나 진 뒤 집회 금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대안으로 제출된 개정안은 황당함의 극치를 달린다. 조진형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21명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집회를 금지하자는 개정안을 지난 12월11월 내놨다. 해가 뜨기 전의 경우를 보면 현행 조항보다 더 후퇴한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 누리집(www.kasi.re.kr)을 보면, 올해 서울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뜬 때는 6월 중순 새벽 5시10분이었다. 현행 규정에서는 새벽 5시10분 이후 할 수 있는 집회를 개정안대로라면 아침 6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심지어 울릉도는 비슷한 시기 새벽 4시55분에 해가 떴다. 겨울에는 반대 상황이 벌어지겠으나, 집회의 자유가 1년 동안에 보장된 시간의 통합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헌재가 무슨 결정을 내렸는지, 이들 의원이 알고서 발의를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나아가 법 전문가들은 특정한 시각을 정해놓고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헌재의 결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본다. 헌재는 결정 당시 “세계 각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법이나 행정권으로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프랑스와 러시아 정도가 밤 11시 이후 금지하는 규정을 갖고 있으나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헌재의 결정 취지는 일반인의 생활이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점을 고려해 집회를 충분히 보장하라는 것인데, 밤 10시 이후 금지는 과하다”라며 “시간 제한 규정을 두지 말자는 게 민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커다란 쟁점에 가려져 있는 이들 법안이 앞으로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될지 감시의 눈길이 더욱 매서워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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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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