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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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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의 중심으로 컴백한 ‘도곡동 땅’

이 대통령 실소유 논란으로 검찰 수사까지 이어졌던 사안…
안원구 국장 사태로 재연된 파장 어디까지 미칠까
등록 2009-12-10 18:00 수정 2020-05-03 04:25
이명박 대통령이 차명 보유 의혹을 받은 서울 도곡동 땅에는 현재 포스코건설이 지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차명 보유 의혹을 받은 서울 도곡동 땅에는 현재 포스코건설이 지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서울 강남에 있는 1300평에 약간 못 미치는 넓이의 땅이 1년9개월 만에 다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잡아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형과 처남의 이름으로 차명 소유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산 ‘도곡동 땅’이 주인공이다. 서로 땅을 차지하려고 소송을 불사하는 이 나라에서 정작 땅주인으로 지목받는 이가 극구 자신의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기이한 풍경임이 틀림없었다.

안 국장이 봤다는 땅 관련 자료의 진실은

논란에 다시 불을 댕긴 건 안원구 국세청 국장. 그는 지난 11월 “2007~2008년 포스코건설 세무조사 과정에서 도곡동 땅의 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이란 자료를 봤다”고 폭로했다. 그가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재직하던 때다. 자료는 돈의 드나듦과 거래를 적어놓은 전표 형태로 존재했다는 주장이다. 아직까지는 안 국장 혼자만의 주장으로 남아 있지만, 해당 자료가 실존하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 정국에 미칠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문제의 땅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1282평(4240㎡) 넓이 4필지다. 이 가운데 가장 작은 306㎡짜리 169-4번지 땅은 1977년 이명박 대통령이 사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현대건설이 사들인 뒤 1985년 이 대통령의 처남인 김재정씨에게 팔았다. 매형이 사장으로 있는 건설회사의 땅을 처남이 사들이면서부터 의혹은 시작됐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시절 검증청문회에서 “당시 이 거래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재정씨는 169-4번지 땅을 자신만의 명의로 사들인 시점에,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은씨와 공동 명의로 163-4, 164-1, 164-2번지 등 3필지(합계 3934㎡)의 땅도 전아무개씨에게서 사들였다. 이 4필지를 사는 데 총 15억여원이 들었다. 현대건설 사장의 친형과 처남은 이후로도 현대자동차에 자동차 시트를 납품하는 대부기공(현재 다스)을 공동 소유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동업 관계를 유지해 의혹을 부채질했다.

이 대통령이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최초로 제기된 건 그가 민주자유당 의원 시절이던 1993년이다. 당시 등 일부 언론이 국회의원 재산신고 뒤 이 의원이 도곡동 땅을 형과 처남 명의로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기사를 작성한 한 기자는 “기사가 나간 뒤 이명박 의원이 협박 전화를 해와 (대화 내용을 녹음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고가인 소형 녹음기를 세운상가에 가서 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즈음 이명박 의원은 토지 소유와 관련해 의문의 행적을 여러 차례 남겨 나중에 입길에 올랐다. 그는 작은형인 이상득 의원과 함께 갖고 있던 서울 은평구의 땅을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를 의무화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 사흘 전에 제3자에게 팔았다. 그런데 그 땅을 얼마 뒤 이상득 의원의 아들이 다시 사들였다. 이 역시 비상식적인 땅 소유권 흐름이다.

도곡동 땅 관련 일지

도곡동 땅 관련 일지

석연찮은 거래 시점·돈관리가 의혹 키워

이 대통령은 또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8일째 되는 날인 1993년 6월19일 서울 서초동에 갖고 있던 1554㎡ 크기의 대지 2필지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파는 등 부동산 재산을 줄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흔적을 남겼다. 이때는 공직자들이 재산신고를 해야 하는 기준 시점을 불과 22일 앞둔 때였다.

시간은 다시 흘러, 김재정씨와 이상은씨는 매입 10년 뒤인 1995년 도곡동 땅을 포스코개발(현재 포스코건설)에 263억원을 받고 다시 팔아치웠다. 10년 만에 248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성공적인 투기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포스코건설은 이 땅을 사고도 4년 동안 아무런 개발도 하지 않았다. 단지 간단한 홍보관 하나를 짓고 버텼다. 이마저도 특별한 용도가 있어 지었다기보다는, 당시 기업이 땅을 산 뒤 2년 안에 애초 목적대로 개발하지 않으면 거액의 세금을 무는 비업무용 토지 중과세 제도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1998년 포항제철에 대한 경영관리 실태 감사에 나섰고 그해 12월 내놓은 감사결과 보고서에서 “이 땅은 일반주거지역이어서 건폐율과 용적률의 제한이 심하고, 땅의 7분의 1은 도시계획시설 도로에, 10분의 1은 도시계획 도로에 편입돼 사업 타당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포스코가 도곡동 땅을 왜 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포스코는 왜 그랬을까? 당시 감사원 보고서에 일단의 실마리가 포함돼 있다. 보고서는 김만제 전 포항제철 회장이 감사 때 “도곡동 땅의 실질 소유자가 이명박씨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힌다. 지난 대선 한나라당 경선 때는 박근혜 후보 캠프의 상임고문을 맡던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가 골프를 치는 자리에서 들은 얘기라며 “김만제 전 포항제철 회장이 ‘이명박 후보가 국회의원 때인 1993년, 94년께 세 번이나 찾아와 (도곡동 땅을) 사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그 뒤 김 전 회장은 그와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을 부인했다. 이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도곡동 땅은 나와는 관계가 없다”며 차명 보유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후보를 상대로 제기된 고소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2007년 8월 이 땅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이상은씨가 갖고 있던 도곡동 땅의 지분은 이씨가 아닌 제3자의 차명 재산으로 보인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이 제3자의 재산으로 판단한 근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 이상은씨가 도곡동 땅을 판 돈의 대부분을 금리가 낮은 채권간접투자상품에 10년 이상 묻어놓고 집안 살림살이에는 거의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 2002년 7월부터 5년 동안 매달 1천만∼3천만원씩 97차례에 걸쳐 모두 15억여원을 현금으로만 꺼내 썼는데, 15번은 이상은씨가 외국에 나갔을 때 인출됐고 자금관리인 이아무개씨는 이상은씨의 돈을 꺼내면서도 이씨와 통화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셋째, 자금관리인 이씨가 돈을 꺼내 금융상품에 가입하기도 했지만, 막상 이상은씨는 인출한 돈의 운용 내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그해 12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명박 후보가 도곡동 땅의 실제 소유주라는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지난해 초 실시된 특검도 마찬가지의 결론을 내리며 도곡동 땅 의혹은 수면 아래로 다시 잠수했다.

검찰·특검 수사에도 지워지지 않은 물음표

도곡동 땅 4필지는 2002년 2월28일 포스코건설의 아파트 사업이 완료되면서 164-6번지로 한꺼번에 통합됐다. 최근 안원구 국장이 도곡동 땅 의혹을 새롭게 제기한 뒤에도 검찰이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소환을 미루는 등 관련 수사를 미적대면서 국론은 다시 분열의 길을 걷고 있다. ‘도곡동 땅 문제’는 정치적 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지뢰가 돼 여전히 도곡동에 묻혀 있는 셈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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