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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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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뭘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린 칸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박원순 변호사 대담
“과거 A급이던 국가인권위가 지금은 한국의 국제적 위신 손상시켜”
등록 2009-12-02 15:10 수정 2020-05-03 04:25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세계적 인권운동 단체인 국제앰네스티를 이끄는 아이린 칸(53) 사무총장이 최근 3박4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해 용산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경기 마석 가구공단의 이주노동자들, 문화방송 관계자 등 ‘인권의 최전선’에 선 이들을 만나고 돌아갔다. 방한 마지막 날인 11월24일 오전,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방한 결산을 갈음하는 대담을 나눴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첫 만남인데도 오랜 동료처럼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는 한국의 인권 상황 진단부터 시민단체의 운영 노하우까지 종횡으로 오고 갔다.

아이린 칸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오른쪽) 박원순 변호사(왼쪽)

아이린 칸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오른쪽) 박원순 변호사(왼쪽)

아이린 칸(이하 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명함을 보며) 직책이 ‘사회 디자이너’라니 좋다. 사회 디자이너를 처음 만나본다. 명함에 새도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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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이하 박) 나는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 사회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새는 넓적부리도요다. 작지만 멀리 나는 새다. 희망제작소에서는 멸종위기종에 속한 동식물들과 짝꿍을 맺는 사업을 하고 있다. 짝꿍을 맺은 뒤 자신이 짝꿍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다.

재밌는 사업이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가.

처음이다. 전임자인 피에르 사네 사무총장이 1998년에 방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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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어떤 느낌인가.

경제적으로 발전했다. 큰 빌딩이 눈에 띈다. 군사독재 시절에 비해 인권도 향상됐다. 하지만 아직도 정부가 어떻게 시민을 통제할까를 생각하는 듯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민의 자유가 근본이 된다. 민주정부라면 서로 다른 관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이에 맞서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시민사회를 적으로 대하듯 행동

그동안의 인권 향상에 비춰볼 때 현 정부는 그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언제든지 쉽게 부서질 수 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고, 경찰도 이전 정권 때와 아주 달라졌다. 이런 인권 역주행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더 엄격한 분위기가 된 것 같다. 어제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만났는데, 시민단체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압력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 집회·시위에 대한 제한도 가해지고 있다고 들었다. 이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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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2000년 이후 정치권에서 가능하면 멀리 떨어진 채 대안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국정원이 나를 주시하고, 내 활동에 대해 묻고 다닌다. 나와 관련된 단체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국가정보원법에서 규정하는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민간 사찰 활동이다. 이는 위법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발언했더니, 한 달 뒤 국정원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형사기소도 아니고 민사다.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본다. 이 정부는 시민사회를 적으로 보는 것 같다. 촛불시위가 시민사회를 배척할 명분이라도 되는 듯 행동한다.

나는 외국인(방글라데시 국적)이므로 영국에서 노동허가를 받아 생활하고 있는데, 총리를 비판해도 노동허가 갱신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는 기자나 PD 등 언론인이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언하면 괴롭힘을 당하거나 심지어 형사처벌까지 받는다. 정부가 시민사회와 대화할 통로가 있어야 한다. 발전된 민주사회는 이런 시민의 요구에 반응을 한다. 시민사회와 소통을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소통 부재의 감옥에 갇혔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관용이야말로 민주주의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그렇다. 영국을 예로 들면,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 침공 직후 총리가 직접 지역을 돌며 시민과 만나 의견을 들었다. 그 무렵 런던에서 1천만 명이 반전 집회를 하기도 했다. 블레어 총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각종 기구를 만들어 의견을 청취했고, 웹사이트까지 만들어 의견을 모아냈다. 오바마 대통령도 네트워크를 구축해 의견을 듣고 있다.

한국이 인권 문제에서 어떤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나.

발전 도상에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뭔지 이해해가는 과정에 있다. 민주주의의 형태는 갖췄다. 민주적 기구도 세워졌다. 민주주의가 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반대 의견에 관용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소수자에게 그들의 의견을 표출할 공간을 허락하는 것, 반대 의견에도 귀기울이는 것이 민주주의다.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에게 일정한 공간을 내주는 것이 핵심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면담을 거부한다고 들었다.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시간이 없다고 하기에 총리에게 면담 요청을 했다. 총리도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 1998년에 왔던 전임자는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다. 시민사회와 정부의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대통령이 면담 요청을 거부해 실망스럽다.

권위주의 정권일수록 앰네스티를 싫어한다.

한국 정부가 뭘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물어봐야겠다. (웃음) 그래도 법무부 장관을 면담했다고 들었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장관도 검찰총장도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장관과는 무슨 얘기를 했나.

경찰이나 공무원이 법 집행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을 경우 좀처럼 처벌을 하지 않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법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만약 경찰이 공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한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그에 대해 장관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동안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처벌은 한 건도 없었다.

큰 문제다. 일반 시민에게는 준법을 강조하면서 정작 경찰은 합법의 경계를 넘어 과도한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용산 문제다.

방한 공식 일정의 첫날인 11월22일 용산에 가서 희생자 유가족을 만났다.

법치는 권력자와 경찰이 법을 지킬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 시민에게만 법을 지키라고 한다.

국제인권협약에 비춰 국내법 고쳐야

법이 일부에게만 적용되고 다른 사람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면 법의 가치가 훼손된다. 국가는 법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정부 고위층일수록 법을 더욱 철저히 지켜야 한다. 법의 수호자가 법을 어기면 시민이 법을 지키겠나. 공무원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법무장관도 불법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원칙을 시민에게만 적용하는 것 같다. 이때 법이란 국제법도 포함한다. 한국 정부는 국내법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은 각종 국제인권협약에 가입한 나라다. 국제법에 견줘 차이가 있다면 국내법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야간집회 금지규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그 법은 빨리 바뀌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방문했나.

대담이 끝나면 만나러 갈 참이다.(이날 오전 9시 칸 사무총장이 인권위원장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 표시에 “인권위의 독립성을 유지할 의지가 있다”고 답변했다.)

개인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에 핵심적으로 참여했다. 현재 인권위원장은 아예 인권에 무지해 모든 인권단체가 강력 반발했지만,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고 임명됐다. 이후 인권위의 행보가 달라졌다. 북한 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북한 인권을 다루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만 너무 강조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이용하는 것 같다.

과거엔 한국 인권위원회가 국제사회에서 A급이었다. 그런데 최근 인권위원회의 상황은 한국의 국제적 위신에 손상을 가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러려면 한국 내부 인권 상황에 더 적극적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인권위원회가 균형을 갖췄다고 볼 것이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제일 어려운 게 활동자금 모금이더라. 앰네스티는 어떤가.

앰네스티는 운이 좋은 편이다. 활동자금을 대부분 개인회원 회비로 충당한다. 정부로부터 인권교육 자금은 받지만 캠페인 비용은 받지 않는다. 280만 명의 회원이 회비를 낸다. 그 밖에 앰네스티 초를 팔아서도 돈을 모은다. 돈을 더 모아 아프리카·아시아 등지에 사무소를 더 내고 싶다.

한국 회원도 많나.

많이 늘었다. 현재 1만2천 명 정도 된다. 10년 전에는 약 1천 명에 불과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요즘 국제앰네스트의 화두는 무엇인가.

우선 수단·콩고·팔레스타인 등지의 무력갈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보고서를 내고 있다. 새로운 분야도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빈민의 권리, 이주민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9·11 이후 시민사회의 공간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에 관한 문제도 화두다. 반대 의견에 대한 관용이 줄었다.

인권 분야에 그동안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보나.

많이 달라졌다. 정부가 더 이상 인권을 무시하고 거부할 수 없다. 30~40년 전만 해도 그 나라의 인권 상황에 대해 말하면 “남의 일에 참견 말라”고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의 말과 행동에는 차이가 있다. 일반 시민의 경우 자신의 권리를 알게 됐다. 지난해 한국의 촛불집회가 좋은 예다. 사람들이 서울 중심가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큰 변화고 긍정적인 변화다. 희망적으로 본다.

국제기준 만들어 다국적기업 책임 묻도록

경제·사회적 권리는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세계 다국적기업에 대해 인권·소비자 관점 등에서 지표를 정하고 평가 보고서를 내는 사업을 하고 싶다.

인권은 국가와 시민 간의 관계에 기반한다. 하지만 기업은 초국적으로 활동한다. 글로벌 업체가 어느 작은 나라에서 어린이 노동력을 동원한다면 그 나라는 이에 항의조차 못할 것이다. 국제적 기준을 마련해 개별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날 오후 2시, 아이린 칸 사무총장은 한국에서의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방한 기간 중 방문한 인권침해 현장에 관한 우려와 권고를 내놓았다. 용산 참사와 관련해 정부가 유가족과의 대화에 나서길 요구했다.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강제퇴거 가이드라인’을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한국의 경제 번영에 기여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통스런 단속’ 방식에 대안을 모색하길 권고했다. 사형제의 경우 1997년 이후 사실상 사형제가 폐지된 국가가 된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사형제 완전 폐지국이 되어 아시아의 모범으로서 중국과 일본에 메시지를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린 칸 사무총장은
식모 아들·전쟁의 비참함 보고 인권에 투신


1956년 방글라데시 다카의 한 가정집에서 두 아이가 태어났다. 집주인의 손녀와 식모의 아들이었다.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여자아이는 10대 시절 방글라데시를 떠나 북아일랜드로 갔다. 영국 빅토리아대학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반면 방글라데시에 남아 전쟁과 빈곤, 차별과 폭력을 온전히 겪어야 했던 남자아이는 극빈층이 됐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와 자신의 삶이 달라진 이유를 고민했다. 결론은 빈곤과 인권 문제에 닿았다. 북아일랜드로 떠나기 전까지 여자아이는 전쟁도 겪어야 했다. 파키스탄에 대항하는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이었다. 어린 시절 각인된 전쟁의 참상도 그를 인권 문제에 눈뜨게 했다.
그 여자아이가 국제앰네스티의 수장, 아이린 칸 사무총장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79년 국제법률가협회에서 인권변호사로 일했고 1980년부터 20년간 유엔난민기구(UNHCR) 소속으로 본부와 현장을 오가며 난민을 위해 일했다. 1995년에는 유엔난민기구의 최연소 지역사무국 대표가 됐다.
그는 국제앰네스티의 사무총장이 된 첫 번째 여성이자 첫 번째 아시아인, 그리고 첫 번째 무슬림이다. 2001년 8월 국제앰네스티의 일곱 번째 사무총장으로 임명됐다.
2009년 국제앰네스티의 화두는 ‘빈곤과 인권’이다. 빈곤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으로 인권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최근 저서 의 한국어판을 펴냈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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