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정책처가 11월20일 정부의 사상 첫 ‘성인지 예산서’를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성인지 예산서란 예산의 수립·집행·결산 등 재정 운용 과정에서 남녀 각각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것으로, 올해부터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할 때 첨부해야 하는 서류다. 이 제도는 예산과 정책이 실질적으로 양성평등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여성계와 심상정 전 민주노동당 의원을 비롯한 17대 국회의 노력으로 2006년 국가재정법 제정 때 도입됐고, 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처음 시행됐다.
그러나 첫 점수는 낙제점이었다. “2010년 성인지 예산서는 국가재정법이 규정한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사전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 의지를 담은 성인지 예산서로 보기 어렵다.”
청와대 등 22곳 제출조차 안 해
예산정책처의 분석 보고서를 자세히 보면, 성인지 예산서 제출 대상 기관 51곳 가운데 대통령실과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 국무총리실, 국민권익위원회 등 22곳이 아예 제출하지 않았다. 나머지 29개 기관이 제출한 성인지 예산서는 195개 사업, 7조3144억원 규모로, 내년 총지출(291조8천억원)의 2.5%에 해당하는 범위에 그쳤다. 그나마도 기초노령연금, 영·유아 보육료 지원 등 보건복지가족부가 5조843억원으로 성인지 예산서의 70%를 차지했다. 또 예산정책처가 성인지 예산서에 포함된 사업들을 ‘제3차 여성정책기본계획’에 따라 재분류한 결과, 실제 여성 권익 보호와 양성평등 정책 추진을 목적으로 한 사업은 67개, 2조1916억원에 그쳤다.
성인지 예산서의 질도 떨어졌다. 전체 사업의 총괄표조차 작성하지 않았을 정도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서 주관부서인 기획재정부가 각 기관에 흩어진 ‘여성지원 사업’을 단순 취합한 수준에 그쳐, 이 예산서만으로는 정부가 양성평등을 높이기 위해 어느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재원을 배분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성인지 예산서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는 각 기관이 ‘성인지 예산서 작성지침’을 지키지 않은 탓이 크다. 지침은 각 사업마다 성별 수혜 또는 격차가 나는 원인 분석, 대안, 성과지표와 목표치 등을 제시하도록 규정했지만, 각 기관이 제시한 예산안은 ‘여성기업 육성 53억원’(중소기업청), ’여성발명 진흥 15억원‘(특허청) 등 사업명과 예산을 나열한 데 그쳤다.
사업의 수혜자가 양성 모두인데도, 단순히 여성만을 위한 사업(‘여성 100% 수혜사업’)으로 간주한 경우도 두드러졌다. 보건복지가족부의 보육료 지원과 보육돌봄 서비스(2조876억원),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어업인 영·유아 양육비 지원(406억4800만원), 행정안전부의 정부청사 어린이집 운영(52억6400만원) 등 보육 관련 예산이 모조리 ‘여성 100% 수혜사업’으로 분류됐다. 여성부도 여성정책 협의, 성매매 예방 및 교육, 성희롱 예방체계 강화 등 성인지 예산 사업 28개(676억7200만원) 전부를 ‘여성 100% 수혜사업’으로 분류했다. 여성 지위 향상과 양성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여성부조차 성인지적 관점이 미흡한 것이다.
어린이집 운영이 여성 100% 수혜사업예산정책처는 “정부의 인식 수준을 높이고 성인지 예산제를 실효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 전담부서 설치 등 추진체계를 정비해야 하며, 예산서 작성 범위·주체 등을 명확히 하기 위해 국가재정법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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