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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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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십니까? 국민소득 좀 나아지셨습니까?

성장의 감옥 ‘GDP’에 짓눌린 국민…
삶의 질·평등에 초점 맞춘 ‘행복 GDP’ 개발 관심
등록 2009-11-05 09:01 수정 2020-05-02 19:25

1023조9370억원(2008년 연간, 2008년 물가 기준), 499조5170억원(2009년 상반기, 2009년 물가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다. 대한민국 안에서 1년 혹은 상반기 동안 생산된 상품(재화와 서비스)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한 금액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간 1천조원이 넘는 부가가치를 생산해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라면, 자동차 등 판매·교환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재화와 이발, 학교 강의 등 모든 서비스의 시장가치가 포함된다. 1천조원을 생산해 1천조원을 소득으로 벌고, 또 1천조원을 소비지출하면서 살았다는 의미다. 결국 더 많이 상품을 생산해낼수록 생활수준이 그만큼 더 높아지게 된다.

전통적인 GDP 측정의 한계를 극복하고 삶의 질을 제대로 포착하는 대안 GDP 지표를 만들자. 10월27일 부산 벡스코 회의장에서 제3차 ‘OECD 세계포럼’이 열리고 있다.

전통적인 GDP 측정의 한계를 극복하고 삶의 질을 제대로 포착하는 대안 GDP 지표를 만들자. 10월27일 부산 벡스코 회의장에서 제3차 ‘OECD 세계포럼’이 열리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 그리고 언론은 우리 경제가 얼마나 성장·감소했는지, 또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항상 실질 GDP 전망치를 국민에게 전달한다. 이 지표가 우리 경제의 현실과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10월26일 ‘3분기 국내총생산(속보)’ 자료에서 “3분기 우리 경제가 전기 대비 2.9% 성장했고, 지난해 3분기에 견줘 0.6% 성장했다”고 공표했다. 라면이 한 봉지라도 더 생산됐고, 이발 서비스의 경우 이발사가 더 많아졌거나 이발 횟수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한은은 또 4분기에 전기 대비 0.5%만 성장해도 올해 연간 성장률은 전년 대비 플러스가 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 간단한 GDP 지표 하나를 통해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삶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경제 전체적으로 상품이 더 많이 생산돼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고 있을까? 과연 GDP는 삶의 질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말해주는 지표인가?

1970년대부터 GDP 지표 비판 제기

경제학 교과서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힌 폴 새뮤얼슨의 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국민총생산(GNP)은 발견특허도 없고, 과학기술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20세기 위대한 발명 중 하나다. 이 총량적인 측정지표가 없었다면 거시경제학(그리고 경제)은 조직되지 않은 데이터들의 홍수 속에 표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뒤에 GNP에 대한 조롱이 함께 서술돼 있다. “GNP라는 경제성과 측정은 무한대의 끝없는 생산을 추구하도록 만들고, 삶에 불필요한 상품까지 생산하도록 만든다. GNP(Product)는 사실 GNP(Pollution·오염)를 대표하는 수치다.”

이처럼 GNP 혹은 GDP 국민계정 추계에 대한 비판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GDP(혹은 GNP)를 넘어서’라는 말이 1970년대부터 경제학계에 널리 퍼졌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GDP 중심의 경제분석’에 대해 공격을 가해왔다. 폐쇄경제에서 GDP는 민간소비, 투자, 정부 지출 등 3가지 항목으로 구성되는데, 미사일 구입도 정부 지출에 포함되고 화력발전에 따른 대기오염 역시 전력 소비에 포함돼 GDP를 증가시키게 된다. 1천조원에 이르는 2008년 한국의 GDP 규모에도 이런 부분이 모두 금액으로 합산돼 있다. 로버트 케네디 미국 상원의원은 1968년 대선에서 “GDP는 우리 자녀들의 건강, 교육의 질, 그들이 놀이로부터 얻는 즐거움 등을 반영하지 않는다. 시의 아름다움이나 결혼생활의 건강함, 우리의 용기나 지혜, 국가에 대한 헌신도 반영하지 않는다. 요컨대 GDP에는 우리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GDP 지표는 각국마다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 활용되는 가장 중요한 지표다. 경제전문가나 정책결정자들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GDP 지표를 통해 경제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판단하고 여러 가지 의사결정을 내린다. 따라서 GDP 지표가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제대로 측정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면, 또 여러 측면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측정되고 있다면 어떤 사회경제적 결과가 초래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비경제적 측면 함께 고려해야”

그럼, GDP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함을 수정하고 사람들의 삶의 질과 진정한 경제 발전, 사회 진보를 포착할 수 있는 ‘대안 GDP’ 지표는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난 10월27∼30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발전 측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제로 내건 제3차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세계포럼’이 열렸다. 각국에서 온 통계·사회경제 분야 전문가들은 경제적 삶과 행복, 발전의 지표로 통용되는 GDP의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대체지표 개발을 둘러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지난 9월 중순에 나온 일명 ‘스티글리츠 보고서.’

지난 9월 중순에 나온 일명 ‘스티글리츠 보고서.’

특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 포럼에서 이른바 ‘스티글리츠 보고서’의 내용을 발표했다. ‘행복 GDP’라고 불리는 이 보고서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그는 “GDP가 보여주는 숫자 너머를 봐야 한다. 기존의 GDP는 경제적 후생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지표가 될 수 없다”면서 “경제적 성과 측정이 기존의 생산 중심에서 현재 세대와 후세대를 위한 삶의 질과 웰빙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 등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어떻게 느끼고, 환경적으로는 지속 가능한지 등 비경제적 측면을 함께 고려하는 대안적 GDP를 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또 “모든 사람들이 매일같이 일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면 GDP는 증가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다고 볼 수는 없다”며 “기업들이 오염물질을 배출하면서 재화를 더 많이 생산하면 GDP는 증가하겠지만 사람들의 후생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물론 GDP가 국민의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유한 나라일수록 영양 상태가 좋아 평균수명도 길고 교육 수준도 높고 주택도 안전하고 훌륭한 의료 서비스도 누릴 것이다. 복리 효과에서 말하는 ‘70의 법칙’은 매년 GDP가 7% 성장하면 10년이면 GDP가 두 배가 되어 삶의 질도 두 배가 된다고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커스는 2000년 “21세기에는 빈곤국가들도 빠르고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2100년이면 전세계 모든 국가가 소득이 거의 비슷해질 정도로 성장하고 똑같이 부유해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과연 그럴까? 스티글리츠는 경제적 풍요 뒤편의 지속 가능성과 삶의 질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GDP를 기반으로 측정한 미국 경제는 2006~2007년에 경제가 잘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미국에서 기업 이익 중 40% 정도는 금융 버블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처럼 GDP 산출량 집계 측정이 잘못된 데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된 측면도 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은 지속될 수 없는 법이다.

잘못된 측정으로 금융위기 불러

특히 경제적 성과를 전통적인 GDP 기준으로 보는 측정 방법은 현실을 왜곡하고 정부의 정책결정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스티글리츠는 “GDP 측정에 문제가 있으면 이 지표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잘못된 정책들을 초래하게 된다”며 “우리는 이제 기존 GDP 측정 방법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GDP 개념을 수정하고 좀더 적절하게 경제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다른 지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기존의 생산 측면만을 강조하는 GDP 추계 방식은 사람들이 정작 필요로 하는 지속 가능성과 삶의 질 등의 정보는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경제사회적 발전과 성과에 대한 잘못된 지표를 제공하고 있다.

스티글리츠가 사례로 든 몇 가지를 보자. 미국에서 감옥에 지출하는 비용은 대학에 지출하는 비용보다 더 많은데, 감옥에 지출하는 비용은 GDP에 포함된다. 사회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도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는 것이다. 또 GDP가 증가해도 대부분은 최상위층의 소득 증가일 뿐 소득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을 수도 있다. 더 많은 전력과 자동차 생산은 더 많은 산성비와 대기오염을 불가피하게 수반한다. 병원의 진료 수입이 늘어도 GDP는 증가한다. 사람들이 많이 아플수록 GDP는 증가하는 아이러니다. 석유를 더 많이 땅에서 뽑아낼수록 GDP 수치는 더욱 높아진다. 자원 고갈로 지속 가능성이 나빠지고 있지만 경제의 총생산은 증가하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GDP가 15∼20% 높아졌지만 미국인들은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질문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측면에서 볼 때 2008년 미국 중간소득 계층은 2000년에 비해 오히려 4% 정도 소득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고용·보건·교육·환경 등을 포괄해 사회경제 발전을 포괄적으로 측정하고 포착할 수 있는 지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새로운 완벽한 측정 시스템을 구축하기란 어려운 과제다”라면서도 “내가 너무 낙관적인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인 경제사회 진보와 발전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지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스티글리츠 위원회가 대안적 GDP 지표를 하나의 지표로 만들어낼지, 여러 지표들을 합친 복합지표로 구축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경제사회의 진보에 기여할 필요

일부 경제학자들은 스티글리츠의 작업에 대해 “GDP가 모든 것을 보여주는 지표는 아니지만 많은 욕구를 성취하는 선결조건이 되는 건 분명하다”면서 “GDP 지표 외에 더 정확하고 믿을 만한 지표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손쉬운 방법이란 이유만으로 기존 GDP 추계에 계속 집착하는 경향도 강하다. 분명한 건 여전히 생산 측면의 GDP 계정 측정 방식에만 매달릴 경우 사람들은 경제 번영의 죄수가 되어 ‘GDP 성장’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란 점이다.

이번 포럼에서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앞으로 국제적 차원에서 협력과 토론을 통해 구축될 포괄적인 대안 GDP는 어떤 정책이 경제‘성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할 것”이라며 “경제적 성과와 사회 발전을 측정하는 영역에서도 진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GDP의 역사
1930년대 쿠즈네츠 첫 작성… 1940년대 복식부기 도입


애덤 스미스가 1776년에 (국부론)를 펴낸 이후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가 경제통계를 수집하고 작성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국민소득계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1915년에야 윌포드 킹이 이란 책에서 국민소득회계를 시도했다. 그는 국민소득이 60년마다 3배로 증가했고 그동안 총소득에서 임금의 몫이 36%에서 47%로 상승했다는 것을 보였다. 영국에서도 1910년대에 세금 데이터와 인구센서스, 1907년의 생산센서스, 임금·고용 정보 등에 기초해 국민소득 추산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20년 미첼이 설립한 국민경제조사국에서 국민소득의 연도별 변동을 조사하는 프로젝트가 수행됐다. 이듬해 1909∼19년의 연도별 국민소득 추산이 제시됐다. 그러다가 1933년 국민소득추계는 경제학자 사이먼 스미스 쿠즈네츠(노벨경제학상 수상자)에게 넘겨졌다. 쿠즈네츠팀은 국민소득회계 매트릭스에 포함되는 내용을 더 확장해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다. 이른바 국내총생산(GDP) 계정이 최초로 작성된 것이다. 1938년에는 월별 GDP 수치도 작성됐다. 쿠즈네츠팀은 ‘생산 측면의 국민소득’과 ‘소득 측면의 국민소득’ 등 두 가지 추계를 함께 발표했다. 이때 부르킹스연구소의 클라크 워버턴도 국민총생산(GNP)을 추산하기 시작했다. GNP란 용어는 1934년 그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소수의 학자들에 의해 국민소득 통계가 이뤄졌다. 영국 경제자문회의 사무국장으로 있던 콜린 클라크는 1932년 GNP 개념을 사용해 작업하면서 총수요의 주요 구성 부분인 소비·투자·정부지출 금액을 추산해 국민소득 계정표 안에 넣었다. 당시 영국 재무성은 클라크한테 계산기조차 사주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 정부는 소득분포 추계가 민감한 자료라서 발표를 원하지 않았고, 기업가들도 이윤 수치가 드러날까봐 공표를 바라지 않았다. 국민소득 추계가 1929년에 이미 발표한 수치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오자 영국 정부는 이런 작업을 한 사실조차 부인할 정도였다.
1939년 10여 개국에서 국민소득 추산을 공식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1940년 경제학자 메이너드 케인스의 지원을 받은 리처드 스톤이 중앙경제정보국 제임스 미드의 팀에 참여해 1938년 총생산에 관한 한 묶음의 국민계정을 구축했다. 쿠즈네츠와 클라크의 작업에 근거해 서로 관련된 여러 계정을 포함하는 국민계정 매트릭스 체계가 점차 만들어졌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힉스는 1940년 국민소득 회계의 기본항등식(GNP=민간소비+투자지출+정부지출)을 도입했다.
특히 미드와 스톤이 이 개념에 기초해 국민계정을 경제 전체에 대한 복식부기 생산계정으로 표현하면서 획기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한 열에는 국민소득이 들어가고, 다른 한 열에는 총지출이 들어갔다. 모든 복식부기 계정이 그렇듯 정확히 계산된다면 두 열은 균형을 이루게 된다. 1941년부터 미국은 쿠즈네츠가 구축한 국민계정을 폐기하고 미드와 스톤이 만든 틀에 따른 국민소득추계 계정을 사용했다. 미드-스톤 체계는 정부 지출을 포함하는 소득 척도를 포괄하고 있어서 훨씬 광범위한 계정들이 발전할 수 있게 됐다. 1947년 스톤이 주도한 유엔의 GNP 계정추계 보고서가 나왔고, 이 틀에 근거해 여러 정부가 지표를 구축하면서 국제 비교가 가능해졌다. 이어 1950년에 거의 100여 개국에서 국민소득 추계가 이뤄졌고, 1953년 표준적인 글로벌 국민계정 체계가 만들어졌다.
한편, GDP는 국내에 있는 모든 생산요소를 결합해 만들어낸 최종생산물의 합인 ‘생산활동지표’인 반면, GNP는 한 나라가 소유한 생산요소를 국내외의 생산활동에 투여한 대가로 받은 소득을 합계해 산출하는 ‘소득지표’다. 처음에는 거시경제 분석의 초점이 소득 측면에 있었기 때문에 GNP를 경제성장의 중심지표로 삼았지만,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노동과 자본의 국가 간 이동이 확대되면서 GNP가 국내 경기와 국내 고용 사정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되자 1970년대 중반부터 각국이 점차 GDP로 전환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1995년부터 국민계정 체계를 GDP 편제로 변경해 발표하고 있다.

스티글리츠의 ‘대안 GDP’
가사노동·자원봉사 가치 인정


10월28일 부산 벡스코 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10월28일 부산 벡스코 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2008년 1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에게 사회발전을 더 잘 나타내줄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곧바로 사르코지 대통령 직속으로 ‘경제적 성과와 사회진보 측정을 위한 위윈회’가 발족했다. 위원장은 스티글리츠 교수, 고문은 센 교수, 간사는 장 폴 피투시 교수가 맡았다. 위원회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22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케네스 애로, 제임스 헤크먼 교수 같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더불어 앤서니 앳킨슨, 로버트 퍼트넘 등 경제학계의 권위자들이 대거 들어갔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국장 엔리코 조반니니와 유엔개발계획(UNDP) 집행이사 커멀 더비스 등 국제기관 대표자들도 참여했다.
이 위원회는 △고전적인 국내총생산(GDP) 이슈 △지속 가능성과 환경 △삶의 질 등 3개 분과로 구성돼 있다. 기존 GDP 통계를 넘어서 모든 국가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질 지표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위원회는 지난 9월14일 중간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명 ‘스티글리츠 보고서’(www.stiglitz-sen-fitoussi.fr/documents/rapport_anglais.pdf)다. 방대한 분량의 이 보고서는 새로운 대안적 GDP 측정과 관련해 5가지 주요 메시지와 권고사항을 포괄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첫째, 생산이 아니라 ‘소득과 소비’를 강조하고 있다. GDP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생산량’의 총합이다. 생산 측면의 GDP는 상품의 품질 증가에 따른 실질소득·소비의 증가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경제적 ‘생산’보다는 소득과 소비수준을 정확히 측정해 구체적인 사람들의 ‘행복’ 수준을 파악하는 것으로 경제측정 지표를 전환하자는 것이다. 또 평가 기준을 생산요소의 투입 측면에서 벗어나 실제로 사람들이 얼마나 만족을 느끼고 소비하는지 그 성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상품을 얼마나 생산해냈는지뿐 아니라 ‘여가시간의 가치’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한다.
둘째, ‘가계’를 강조하는 관점이다. 사실 실질 가계소득은 많은 OECD 국가들에서 1인당 국민소득보다 더 낮은 비율로 성장하고 있다. 가계 소득·소비에서는 정부의 교육·보건 지출과 가계의 금융기관 대출금 이자 지급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GDP 추계에서 국방비 등 방어적 지출과 교도소 운영비용, 출퇴근 비용 등도 ‘생산’ 항목으로 측정에 포함되고 있지만, 이것들은 그 자체로 직접적인 효용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므로 국민소득 추계에서 배제하자고 제안한다.
셋째, 소득과 소비뿐 아니라 ‘자산’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질적·자연적·인적·사회적 자본의 양이 미래에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 또 이런 자산에 거품이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환경자원의 지속 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특히 상품 생산량뿐 아니라 ‘부채’를 고려해 국가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경제 전체의 부채와 자산 변화를 계산해야 한다.
넷째, 소득·소비·자산의 분배에서 평균이 아니라 ‘중위값’(어떤 주어진 값들을 크기 순서로 정렬했을 때 가장 중앙에 위치하는 값)을 중요하게 고려할 것을 권고한다. ‘1인당 국민소득’ 같은 평균적 지표는 경제적 성과를 종종 왜곡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특히 소득분배가 갈수록 악화되면서 단순 평균수치로는 실제 삶의 질 변화를 충실하게 포착하기 어렵다. 대다수 사람들의 소득이 변하지 않거나 다수의 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일부 고소득층의 소득이 크게 증가하면 1인당 평균소득은 증가할 수 있다. 이때 중위값을 사용하면 중간 수준의 소득을 얻고 있는 이들의 소득 변동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다. 평균적 시각에서 탈피해 경제 내의 소득계층과 그룹별로 소득의 흐름을 파악하고 어떤 품목으로 고통받고 있는지를 충실히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가계생산 등 ‘비시장적 활동’을 국민소득 통계에 적극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사노동이나 자원봉사 같은 비시장적 활동도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일수록 가계생산 활동은 비중이 큰데, 이를 핵심 국가계정의 위성계정으로 만들어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이 보고서는 물질적 생활 기준뿐 아니라 보건, 교육, 정치적 참여, 노동조건, 사회적 관계망, 환경, 사회경제적 불안정 등을 모두 포괄해 새로운 사회발전 지표를 작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위원회는 이번 보고서에 담긴 권고사항을 기초로 대안적 GDP 지표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다. OECD와 UNDP 등 국제기구와 각국의 통계청과 협조해 작업을 진행하면서 구체적인 지표추계 방식 매트릭스를 만들어나간다는 구상이다.

글·사진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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